[논단]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 진보정치는 사라졌는가?
전지윤(사회운동 활동가, 시민언론 민들레 편집위원)
지난 4월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크게 패배했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변화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기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상당수의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기쁨보다는 우울한 분위기였다. 진보정당들에게 총선 결과는 결코 좋지 않았고, 오히려 심각한 추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지난 10년 동안 유일 원내 진보정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정의당은,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10% 가까운 지지로 6석을 지켰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1석도 얻지 못했다. 비례 투표에서 3%의 벽을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4번이나 연임하며 진보정치의 대표적 지도자로 성장해 온 심상정 의원마저 낙선했다.
정의당과 선거 연합을 했던 녹색당도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했고, 선명한 좌파적 가치를 내건 노동당은 이번에도 매우 낮은 득표율에 그치고 말았다. 이것은 독자적 진보정치의 발전을 응원해온 모든 이들에게 매우 안타깝고 서글픈 결과였다. 진보적 가치를 지키며 오랫동안 곳곳에서 헌신하던 사람들의 좌절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 왼쪽의 공백을 차지한 것은 조국혁신당이 됐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의 경쟁 관계나 대립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더 빠르고 강하게 윤석열 정부와 싸우겠다’고 약속하면서 순식간에 큰 지지를 얻었다. 물론 진보당은 민주당이 주도한 비례연합정당에 들어가고 울산에서 후보 단일화를 하며 3석을 얻었다.
진보당의 뿌리인 통합진보당이 2014년에 박근혜 정부에 의해서 강제 해산된 이후에 진행된 10년 동안의 지독한 탄압과 고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은 사실 의미있는 순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진보정당 지지자들이나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이런 진보당의 성과를 함께 기뻐하거나 축하해주는 분위기는 찾기 어려웠다.
먼저 한겨레와 경향에 글을 쓰는 진보적 지식인들부터 진보당의 선거 결과에 매우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향신문 칼럼에서 김건우 참여연대 간사는 “진보정당이 사라진 시대다. … 당명으로만 본다면 새진보연합이나 진보당도 원내 진보정당이다. 어쩌면 ‘진보’의 의미가 그만큼 희미하거나 무의미한 시대”라고 썼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은 한겨레 칼럼에서 진보당의 선택을 ‘독자적 진보정당 운동’의 “최종적 포기”라고 깎아내렸다. 더 나아가 박권일 작가는 진보당을 “진보를 참칭하면서, 보수 기득권이 주도한 위성정당이라는 ‘시스템 해킹’에 적극 가담”한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한 “기생적 진보정당”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졌다. 총선 이후에 열린 민주노총의 81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만 남기고 진보당은 제외시키자는 수정동의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수정동의안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석 대의원 922명 중에서 189명만 찬성해서 부결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 진행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에서도 ‘기후악당인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만든 진보당을 제척하자’는 안건이 발의됐다. 이 안건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진보당을 각종 연대 활동이나 연대 기구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진보당은 ‘종북’ 낙인에 찍혀서 배척당하다가 거의 10년만에 국회로 들어갈 수 있게 됐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이제는 ‘진보정당도 아니다’라는 새로운 낙인이 찍혀서 그것을 이유로 또다시 배척당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진보당에 대한 이런 공격들은 대부분 과도하며 납득하기 어렵다.
진보정당도 아니고 노동운동에서 몰아내자?
먼저 어떤 정치세력을 ‘진보정당’으로 판단하려면 그 조직적 기반, 정치적 입장, 실천적 행동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조직적 기반이 노동조합이나 사회운동 단체들에 있고, 제시하는 공약과 정책 등이 진보적 내용을 담고 있고, 주된 활동이 노동운동이나 피억압 민중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에 있다면 진보정당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진보당이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평가는 설득력이 없다. 진보당은 한국 진보정당 25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함께했고, 지금도 가장 당원이 많고 민주노총에 큰 기반을 가진 정당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정당 중에서 가장 많은 지역구에 출마했고 현재 국회의원 3명, 기초자치단체장 1명, 광역의원 4명, 기초의원 18명이 있는 정당이다.
이처럼 무시할 수 없는 역사와 뿌리가 있고, 집요하고 악랄한 종북몰이를 뚫고서 가까스로 의회로 복귀한 진보당을 투명인간 취급하고 ‘진보정당도 아니다’라며 깎아내리는 것은 어떻게 보든 지나치다. 더구나 진보당과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진보정당이나 사회단체들도 장점과 함께 여러 한계를 가지고 있고 크고 작은 오류를 범해 왔다.
예컨대 21대 국회에서 대표적 청년진보 정치인들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족벌언론에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글을 기고하는 오류를 범한 일이 있었다. 지난 대선 때 일부 좌파 단체는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문제점과 오류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서 그들을 ‘진보도 아니고 진보진영에서 몰아내자’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물론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괴롭히고 역고소를 하는 등 일부 소규모 좌파단체들의 선을 넘는 행태 때문에 민주노총에서 연대 단절을 결정한 사례는 있지만, 정치적 노선과 판단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은 없다. 그것은 함께 연대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토론과 비판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번에 진보당은 독자적인 진보정치 노선과 정책, 강령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스스로 정당을 해산하고 민주당으로 완전히 흡수될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단지 선거라는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민주당과 일시적 연합을 한 것이다. 진보좌파에게 그것은 투쟁에서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나 의회에서 전술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수구적 우파에 맞서 자유주의 정당이나 후보에게 비판적 투표를 하거나 후보 단일화, 선거 연합을 하는 것은 좌파의 역사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진보좌파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던 1세기 전 러시아 볼셰비키의 실천에서도 발견된다. 이것은 <볼셰비키는 어떻게 의회를 활용했는가>, <공산주의에서 좌익 소아병>, <레닌의 합법 정당론>, <레닌의 선거와 의회 전술> 등을 조금만 살펴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유주의 정당과 협정을 맺고, 공동 명부를 작성하고, 선거 연합을 한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타협 일반의 허용 가능성을 거부하는 것, 그것은 진지하게 고려하기조차 어려운 어리석은 짓이다 …. 볼셰비즘의 온 역사가 유연한 대응, 협조, 부르주아지 정당을 포함한 다른 정당들과의 타협의 사례로 가득 차 있음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물론 100년 전 러시아와 지금 한국 상황은 다르고, 볼셰비키나 레닌의 실천과 주장을 무조건 신주단지처럼 여기고 신봉하는 것은 갑갑한 태도일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의 구체적 상황에 대한 판단과 평가이고, 그것에 맞는 구체적 전술을 찾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전술이 ‘불가피한 타협’인지 ‘배신적 굴복’인지 판가름할 수가 있다.1
모든 전술과 타협은 구체적 상황과 조건에서 평가해야
그러면 과연 지난 총선 국면에서 구체적 상황과 조건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자. 지난 총선은 윤석열 심판을 위해 거대야당에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커다란 압력 속에서 진행됐다. 여전히 선거제도는 결선 투표 없는 소선거구제였고, 투표의 비례성은 약했고, 그래서 (진보정당 찍으면 국민의힘에게만 도움된다는) 사표 심리는 더욱 강해진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의 봉쇄와 윤석열의 거부권 속에서 위성정당 방지법은 추진되지도 못했고, 국민의힘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민주당은 다행히 병립형 선거제도로 회귀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에 국민의힘에 맞서기 위해 ‘비례연합 준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진보정당 중에서 가장 큰 정의당조차 지지세가 축소하면서 3%의 벽을 넘어설지 불확실한 위기의 상황이었다. 더구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당 투표에서는 진보정당을 찍는 ‘교차투표’도 크게 줄었다. 지역구에서 당선 가능성이 확실해 보이는 후보들조차 찾기 어려웠다. 결국 진보정당들이 아예 의회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진보정당이 국회의 안에 있냐 밖에 있냐는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차이를 낳기에 이것은 결코 그냥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난 10년간 선거에서 몇몇 지역적 예외 말고는 협력한 적이 거의 없던 정의당과 진보당이 선거 연합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보정당들이 ‘각자도생하느냐’와 ‘민주당과 선거연합 하느냐’의 양자택일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향점이 비슷한 여러 진보정당들이 각종 선거에서 각자의 후보를 내면서도 비례투표에서 힘을 모으는 ‘진보 선거연합’은 진작부터 필요했다. 그러면 사표 심리도 피하며 좀 더 큰 진보정당이 더 작은 진보정당을 도와서 3%의 벽도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진보 선거연합은 관심과 열의의 부족 속에서 성공하지 못해 왔다. 크게 다를 수 없는 정책과 공약을 가진 진보정당들이 선거 때마다 서로의 차이점을 찾아내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각자도생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들의 지역기반은 계속 더 줄었고, 사회운동과 연계는 더 약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진보 선거연합이 추진됐다. 그러나 정의당은 자신들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주장하고, 진보당은 민주노총을 플랫폼으로 한 연합정당을 주장했다. 촉박한 시간 속에 장단점이 뚜렷한 방안을 서로 고집하다가 진보 선거연합은 결국 무산됐다. 10년간의 갈등과 분열, 불신이 낳은 결과였다.
이 상황에서 3% 봉쇄 조항을 뚫고서 필사적으로 의회에 들어가려는 진보정당들의 각자도생적 선택지들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정의당은 녹색당과 일시적으로 선거연합 정당을 만들어서 기후 의제를 강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노동당은 의회 진출보다는 좌파적 원칙을 더 선명하게 주장하고 선전하는 기회로 총선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진보당은, 민주당이 제안한 ‘비례연합 준위성정당’에 들어가서라도 3% 봉쇄 조항을 넘으려는 타협안을 택했다. 이것은 진보당이 지난 10년 동안의 ‘종북’ 낙인과 왕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진보당은 또다시 지난 10년처럼 의회 진출을 포기하느냐, 비례연합정당이라도 들어가서 생존을 모색하느냐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불가피한 타협? 배신적 굴복? – 제기되는 4가지 물음
이것을 ‘용납할 수 없는 배신적 타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네 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변해야만 한다. 첫째, 한국사회에서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아무 차이가 없는 집단’이라는 ‘기계적 양비론’이 과연 타당하냐는 물음이다. 이처럼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그 놈이 그 놈이다’,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다’는 태도는 언뜻보면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이 그렇게 단순하거나 평평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재벌-족벌언론-검찰의 기득권 카르텔과 더 긴밀히 연결된 정치세력은 국민의힘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져 온 군부일당독재의 역사 속에서 한국사회의 지배계급 핵심과 다수파에 기반을 둔 세력이다. 더구나 요즘은 뉴라이트 극우일베와 융합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주로 야당의 처지였고 지배계급에서도 소수파이자 비주류였고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에도 일부 기반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구조를 삭제한 기계적 양비론은 현실에서 더 큰 역사적 가해자와 강자를 편드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역사가인 하워드 진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말한 이유이다.
둘째, 이번 4월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 심판’에 대한 대중적 열망을 무시하는 게 과연 타당하고 효과적인 전술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선거와 의회 공간을 활용할 생각이 없는 진보좌파가 아니라면 매번 선거마다 당시의 구체적인 정세와 대중의 정서를 분석하고, 가장 적절한 구호나 전술을 채택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볼 때 지난 총선에서 진보좌파는 이태원 참사나 채상병 사건의 주범과 이 사건들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립’일 수가 없었다. 먼저 강조해야 할 것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심판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총선에서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패배하는 것은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도 좋은 일이었다.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소수파가 되고 윤석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데 더 좋은 조건이 마련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진보좌파는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똑같다'라는 공허하고 추상적인 말만 할 수가 없었다.
셋째,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이 진보진영에서 그동안 언제나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신으로 평가받아 왔느냐’는 물음이다. 그렇지가 않다. 형태가 좀 다르긴 해도 이것은 2014년에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된 이후에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이던 정의당도 채택해 왔던 전술이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민주당과 정의당은 수시로 후보 단일화와 공동 유세를 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정의당은 연대 대상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고 그런 주장도 거의 나온 적이 없다. 윤석열 집권으로 민주당이 다시 야당이 되면서 ‘야권 연대’는 다시 등장했다. 정의당은 이미 녹색당과 선거 연합을 결정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뒤늦게 제안한 비례연합정당을 거절했지만, 지역구에서 후보 단일화는 가능하다고 열어두었다. 즉, 민주당과 선거연합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었다.
당장, 최근에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로 퇴진하면서 교육감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은 보수 후보에 맞서서 진보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여기에 함께하는 진보정당을 진보진영이나 노동운동에서 징계하거나 축출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리 봐도 타당할 수가 없다.
넷째, 국제적인 진보좌파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총선의 경험을 살펴보자. 마크롱 정부가 난데없이 제기한 7월 조기 총선에서 급진좌파인 ‘불굴의 프랑스’와 공산당부터 중도적인 사회당, 생태주의당까지 모두 함께 ‘신민중전선’으로 단결했다. 극우 세력인 ‘국민연합’에 맞서기 위해서라는 이유였다.
한국으로 따지면 민주당과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이 손을 잡은 것과 비슷했다. 2차 결선 투표에서는 심지어 중도우파인 마크롱 집권당 후보들과도 후보 단일화를 했다. 그러면서 신민중전선의 좌파들은 “두 가지 위험 사이에서 우리는 먼저 가장 크고 즉각적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주요 4대 노조(CGT, CFDT, FSU, 솔리다리티)와 ‘반자본주의 신당’같은 급진좌파 조직들도 상당수가 이것을 지지하고 함께 했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과 비슷한 사회당과 손잡은 프랑스 좌파들에 대해서 ‘사회당 2중대’라고 비난하고 ‘진보좌파도 아니다’, ‘노동운동에서 제명해야 한다’고 평가하거나 주장하기는 어려웠다.
진보당의 총선 전술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과제들
물론 이번에 진보당이 민주당과의 선거 연합 전술을 채택하면서 비례연합정당에 들어간 과정에는 아쉬움도 있었고 여러 부작용도 낳았다. 먼저, 이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민주당과 정의당의 '야권 연대와 후보 단일화'와 마찬가지로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보는 민주당의 압박 때문에 족벌언론들이 '반미', '좌파', '종북'이라고 낙인찍은 일부 진보당의 후보들은 사퇴해야만 했다. 더구나 이번 선거 연합은 총선을 앞두고 너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공동의 공약을 합의하면서 진보적 정책들(예컨대 차별금지법 제정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약속받는 과정도 찾기 어려웠다.
이것은 지난해 9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통과한 정치방침에도 어긋났다. 거기에는 “친자본 보수 양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보수 양당 지지를 위한 조직적 결정은 물론이고, 전·현직 간부의 지위를 이용해 친자본 보수 양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못박혀 있었다. 상황의 변화에 따른 유연한 해석과 전술적 적용이 어려운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진보당도 '진보정당들의 선거 연합과 후보 단일화'에 분명한 강조점이 있었기에, 이 방침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보 선거연합’이 무산되면서 진보당은 다른 선택을 하게 됐고, 지난해 통과한 정치방침은 결국 이번에 진보당의 발목을 잡았다. 그것은 울산동구에서 이루어진 진보 후보 단일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울산동구에서는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이 합의해서 이미 노동당 이장우 후보를 진보 단일후보로 결정해 놓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총선을 눈 앞에 두고 진보당은 급작스럽게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했고, 이에 따라 이장우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이것은 당연히 다른 진보정당들의 반발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속에서 불신과 갈등이 커지고 연대가 약화되는 상황을 진보당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충분한 논의와 설득이 안 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전술 변화 때문에 진보당 내부에서도 일부 당원들은 반발했고, 특히 비례후보들의 연달은 사퇴 과정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진보당은 성찰적 평가와 해명, 사과 등을 통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책임과 과제가 남았다. 애초부터 진보당은 구체적 상황의 변화에 따른 여러 선택의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총선에 대해 접근하고 안팎에 설명할 필요가 있었고, 아무리 상황의 변화에 따른 급박한 전술의 변화였다고 해도 충분한 논의와 설득에 더 신경썼어야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전술적 타협을 통해서라도 의회에 들어가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약속, 일시적 선거연합일 뿐이고 독자적 활동과 주장은 계속될 것이라는 다짐, 완전한 연동형 비례제와 결선 투표제 등을 도입해서 민주당에서 독립적인 진보정치의 길을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실천으로 입증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당이 10대 공약으로 제시한 무상교육. 무상교통, 전국민 4대보험,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주4일제, 지역 공공은행 등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노력과 능력을 보여주며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안에서 다시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연대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은 진보당만이 아니다.
진보진영의 여러 정파와 활동가들도 선거 전술에 대한 이견을 서로 간의 신뢰와 네트워크를 파괴할 정도로 발전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은 불신과 상처를 키우며 서로 신뢰하고 협력할 기회를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하며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평가하고 비판하면서도 연대의 길을 남겨놓는 게 바람직하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 종북몰이와 이간질에 이용된 노선 갈등
지금 총선 전술을 둘러싼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분열과 갈등이 특별히 더 우려스러운 이유는 윤석열 정부의 '종북몰이'와 이간질에도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와 족벌언론들은 이미 총선 기간에 ‘진보당은 종북주사파이고 민주당과 이재명은 그들의 숙주’라는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총선 패배를 뒤집기 위해서도 이런 공격은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최근에도 윤석열은 "반국가세력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면서 "전국민의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가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불길한 소문들과도 관련있다.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가진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최근 '역사적 경험을 보면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암약 운운은 곧 간첩단 사건을 터트린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간첩단은 민주당 일부와 진보당, 시민단체 등을 엮어서 준비중일 가능성 높다. 유력한 시나리오를 추정해 보자면 이렇다: 탄핵 위기에 직면해 어떤 식으로든 북한과 군사적 대치와 충돌 유발 -> '통합진보당 후신인 진보당이 국회에 들어와서 정보를 빼내서 북한에 넘겼다'고 의혹 제기 -> '진보당을 국회 데려온 민주당도 여기에 책임있고 협조했다'고 엮어내기 -> 간첩단 사건 터트리며 공안정국 조성 -> 이런 상황을 핑계로 계엄 선포 준비.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낙연과 새로운미래같은 기회주의적 중도세력, 이준석과 개혁신당같은 신우파들, 진중권같은 사이비 '진보 지식인'들은 종북몰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족벌언론들이 앞장서며 대대적 종북몰이 여론재판이 벌어지면 개혁언론들(한겨레와 경향 등)도 슬금슬금 그 뒤를 따라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민주당도 침묵하고 방조하면서 끌려갈 수 있다.
이것은 모두 2010년 '천안함 공안 정국'이나 2013년 '내란음모 조작 공안정국' 국면 때 우리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에서 유추되는 전망들이다. 지금 돌아보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마녀사냥이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소위 ‘RO’ 조직원들에게 "총기"와 "국내 주요시설에 대한 타격"까지 준비시켰다는 게 공안당국의 주장이었다.
이것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과 댓글 조작'으로 궁지로 몰리던 박근혜 정부의 국면전환용 마녀사냥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함께 공안 탄압에 맞서며 통합진보당을 방어하기 보다는 ‘선 긋고 거리 두는’ 태도가 더 많았다. 그 절정은 정의당이 국회에서 새누리당, 민주당과 함께 '이석기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내부의 극심한 불신, 갈등, 분열이 있었다. 불신과 갈등은 2012년 총선에서 씨앗이 잉태되기 시작됐다. 내부 경선 과정에서 심각한 불협화음이 불거졌고, 총선 결과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갈등과 분열은 총선 직후에 본격적으로 폭발했다.(더 자세한 과정과 평가는 필자의 책 <연속성과 교차성>의 해당 부분을 참고하라.)
결국, 통합진보당에서 정의당이 분리해 나오는 분당이 벌어졌고, 두 당은 서로 거의 적대적인 관계가 됐다. 그해 연말 대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당시 보수우파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의 눈 앞에서 독재자 박정희를 비판하며 "다까끼 마사오"라고 통쾌하게 일갈했지만, 다른 진보정당이나 진보진영에서 호응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1년 후에 박근혜 정부는 위기에 대한 희생양이자 정치적 보복으로 내란음모 조작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 방어의 움직임은 별로 찾을 수 없었다. 통합진보당은 강제 해산 당했고, 그것은 전체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 깊은 상처와 큰 후유증을 남겼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보자면 역사의 반복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이번에도 총선을 거치면서 진보정당들은 서로 갈등하며 더욱 분열하게 됐고, 노동운동에서는 ‘진보당을 연대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진보당은 최근 원내 정당들 중에서는 최초로 ‘윤석열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했지만, 진보진영 내부에서 이것에 호응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윤석열 정부와 극우, 공안세력은 이 틈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핵심은 진보정치의 독자적 지지기반 함께 만들기
사실 지금 이 모든 논의의 바탕에는 진보정당들의 지지기반 축소가 존재한다. 만약 민주당의 왼쪽에서 독자적 진보정치를 지지하는 의미있는 정치적 기반이 존재했다면, 많은 어려움과 내키지 않는 선택들이 사라질 수 있었다. 진보당은 굳이 비례연합정당에 들어가는 타협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의당도 원내정당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고, 녹색당이나 노동당도 숨쉴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지난해 하반기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는 정의당은 물론 진보당, 녹색당을 다 합쳐도 득표율은 3.5%에 그쳤다. 진보정당 25년의 역사에서 한 때 민주노동당이 10% 넘는 지지를 얻었지만, 지금은 어떤 진보정당도 독자적으로 3% 봉쇄 조항을 못 넘고 있다. ‘민주노총 지지 후보’가 되더라도 선거에서 득표에 별 효과가 없는 일도 반복돼 왔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든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정의당은 녹색당과 선거 연합을 추진했고, 진보당은 진보 선거연합을 기대하다가 그것이 실패하자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받아들였고, 정의당의 일부는 심지어 진보정치를 포기하고 이준석, 이낙연 등과 손잡고 ‘제3지대 신당’으로 가버렸다.
결국 핵심은 진보정치의 지지기반이 왜 확대 재생산이 아니라 축소 재생산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평가와 어떻게 그것을 다시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기득권 우파뿐 아니라 민주당의 한계까지 넘어선 독자적 진보정당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개혁과 진보적 변혁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민주당-공화당 양당체제의 미국보다는, 보수당과 경쟁하던 자유당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제3당이던 노동당이 차지한 20세기 초의 영국이 더 바람직한 방향인 것도 맞다. 문제는 양당체제를 벗어나 제3의 진보정당을 대안으로 세우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점이다. 여기서 많은 진보좌파들이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다를 게 없다’고 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을 비웃고 민주당과 선을 긋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현재 이 나라의 민주당은 권리당원만 200만이 넘는거대한 대중정당이다. 진보정당들에 비해서 50배도 넘는 규모이다. 조직된 노동자들 속에도 민주당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 2022년 민주노총 확대간부(산별노조·연맹 대의원) 설문조사 결과 2017년 대선 때 민주당에 투표한 사람은 42.6%에 달했다.
조합원과 한국노총으로 가면 이 비율은 훨씬 커진다. 이것은 민주당을 통한 개혁과 진보에 기대를 거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실천으로 입증하면서 진보정당의 지지기반으로 옮겨올 수 있도록 시의적절하면서 효과적인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는 구체적 쟁점과 투쟁, 선거 등에서 민주당과 한시적 동맹을 맺는 것도 포함될 수밖에 없다.
20세기 초의 영국에서도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 속에서 노동당은 처음에 기반이 매우 작았다. 자유당의 기반이 노동당의 기반으로 변화하는 과정에는 수십 년이 걸렸고 중간에 노동당이 자유당과 섞이고 선거 연합을 하는 일들이 반복됐다. 단순히 자유당을 반대하고 비난하며 ‘노동당이 정답이니 여기로 오라’고 선언하는 방식과 과정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미국에서 제3의 정치세력이 실패를 거듭한 이유는 단지 양당에 흡수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민주당은 공화당과 다를 게 없고 대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소규모 제3의 진보세력이 난립해서 독자 출마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의미 있는 대안적 존재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진보정당의 목표가 ‘우리는 민주당과는 다르다’는 차별성과 선명성을 과시하면서 자기 만족을 얻는 것이라면 미국과 같은 상황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목표가 실제로 민주당의 거대한 지지기반을 흔들고, 그들을 진보정치의 지지기반으로 만들어 실제로 양당체제를 무너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면 여기에 머물 수 없다.
그리고 이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도 먼저 필요한 것은 여러 진보정당이나 진보세력들의 협력과 연대다. 갈등과 분열 속에 전체적 힘이 함께 줄어들던 과거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선의의 경쟁 속에서 토론하고 비판하면서도, 탄압에는 함께 맞서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변혁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할 동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각주]
1 한국사회의 진보좌파들 중에서는 진보정당도 부족하고 대안이 아니며 근본적 변혁을 위한 혁명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이런 입장은 다시 진보정당 자체를 부정하고 반대하는 입장과 존중하고 연대하는 입장으로 나뉜다. 또 선거나 의회에 대한 전술적 개입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입장, 선거나 의회에 대한 개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무조건 가장 급진적 공약을 제시하고 독자적 후보를 출마시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입장들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글은 진보정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연대의 대상으로 존중하면서 선거나 의회에 대한 전술적 개입을 고민하는 입장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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