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특집] 세력화를 중심으로 본 뉴라이트 해부
신석진(진보정책연구원 원장)
1. 뉴라이트는 무한자가증식 중
수많은 학자와 운동가, 정치인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뉴라이트와 의롭게 맞서 싸웠다. 덕분에 뉴라이트의 초기 공세에 수세로 일관하다 이후 대등한 관계 또는 공세적 위치에 서게 됐다. 현재 우리 국민 다수는 뉴라이트를 경계하거나 경멸하고 있다.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이 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대한 반대여론이 68.8%에 이른 것이 단적인 사례다. (『쿠키뉴스』 한길리서치, 2024년 8월21일)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뉴라이트로 지목된 정부인사들로 하여금 스스로 뉴라이트 출신임을 부인하도록 만들었다. 보수언론도 그들의 정체를 감춰주는 데 급급할 뿐 더 이상 그들을 주목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아예 ‘박근혜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대통령 취임 이후 소멸했다’고 진단했다.(『조선일보』 2024년 8월16일) 소멸되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니, 이 이슈로 더 문제삼지 말라는 메시지로 봐야한다. 그들이 대놓고 세력을 키우는데 장애를 만든 것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뉴라이트의 이념과 세력이 절대적 소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뿌려놓은 재앙적인 세계관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세포처럼 무한자가증식 중이다. 특정한 조건에서 뉴라이트라는 암세포는 권력집단이 준 먹이를 먹고 일시적으로 빠르게 온 사회에 전이될 수 있다. 친일·독재미화 교과서, 독립운동 비하, 각종 매체에서의 거짓선동도 모자라 국익훼손 외교협정과 반노동 입법과정을 통해 합법성과 강제성을 갖춰나가고 있다.
또 공개적으로 외형을 키우지는 못하지만 숨어서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한다. 정부고위인사 중 확인된 이들만 16명이 뉴라이트 출신이고 확인되지 않은 이들까지 계산하면 여전히 뉴라이트는 권력집단의 중심부에 있다. 게다가 ‘공산전체주의’ 발언 등 2023년 8.15 경축사에서부터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노골적인 뉴라이트식 ‘이념전쟁’ 도발은 뉴라이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실감케한다.
2. 뉴라이트 재해부 필요성
일이 이렇게 된 이유는 기존의 뉴라이트와 맞서 싸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각자는 최선을 다했고 많은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뉴라이트에 맞서 싸울 지휘부의 모호성 또는 이념적 제한성이 이 사태를 키웠다. 뉴라이트의 이념은 극단적 시장자유주의와 한미일가치동맹의 확산이다. 이념확산의 방법은 반운동권 모략선동과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혐오와 조롱, 그리고 반북대결의식고취와 흡수통일론이다. 이 다섯가지 주제 중에서 뉴라이트와 맞서 싸운 전장터의 99% 화력은 한미일동맹의 전제조건으로 기능한 친일역사관에 집중했다. 그것이 대중의 분노를 촉발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대체로 속수무책이었고 심지어 일부는 수용적 태도도 보였다.
참여정부인사들은 진보정치와 신자유주의의 기묘한 정책결합으로 뉴라이트의 공세에 효과적 대응을 못했고 586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민주진보개혁진영 내부의 균열을 용인했다. 규제완화, 감세,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서 의미있는 차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진보세력의 뉴라이트의 비판은 친일·독재미화 역사관에 집중되었다. 뉴라이트가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벌이는 것은 미국주도 한미일안보협력(군사동맹)의 완성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한일 역사문제 청산이기 때문이다. 북한·중국·러시아의 전체주의에 맞서 ‘자유’의 가치로 지난 역사도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완성을 위한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주도한 극단적 시장자유주의와 반운동권모략선동,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반북대결의식고취는 우리 사회의 주류적 사상과 문화에 편입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시선으로 뉴라이트의 본질을 해부해야할 첫 번째 이유다.
현존하는 진보정당 당원들 중에는 과거 민주노동당과 해산된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것은 진보정당 당원들이야말로 뉴라이트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은 피해자라는 의미와 같다. 예컨대 초창기 뉴라이트의 3대 공격대상은 전교조, mbc, 민주노동당이었는데 이 중 전교조와 mbc는 큰 상처를 입고도 현재까지 제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의 시간을 버텼고 MBC는 민영화 시도를 무마시켰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계속되는 안팎의 종북공세와 탄압에도 버티다 통합진보당으로 전환(합당)한 이후 강제해산되었다. 진보정당 당원들은 뉴라이트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시선과 예민한 감각으로 뉴라이트를 분석해야할 두 번째 이유다.
3. 윤석열 대통령이 뉴라이트를 모른다고 말한 이유
2024년 8월, 윤석열 대통령은 “난 솔직히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공개발언이니 사실로 믿기로 하고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없지는 않다. 20년 세월이 지나 뉴라이트의 내용과 형태가 많이 바뀌었고 갈래도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스로 뉴라이트라고 내세우는 사람도 있고 뉴라이트라고 했다가 지금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뉴라이트와 조직적으로는 관련 없는 사람인데 그 이념을 추종하다 뉴라이트로 지목된 사람도 있다. 진보적 이념에 맞서서 우파의 진지를 구축하려는 일정한 사상체계를 갖추려는 시도도 있고, 유행에 따라서 또는 권력에 빌붙어 뉴라이트 주변을 부나방처럼 떠돌아다니는 기회주의 세력도 있다. 음흉하게 뒤에서 돈과 세력을 대며 상황을 지켜보는 후견인 그룹들도 있다. 정권을 빼앗겼을 때는 뉴라이트였다가 정권을 잡은 뒤에는 뉴라이트가 아닌 박쥐 같은 이들도 있다. 이러니 대통령이 정말로 뉴라이트가 뭔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반드시 알아야할 두가지가 있다. 첫째, 권력을 떠받들어주는 4개의 기둥이 있다면 한 개는 검찰출신, 최소 한 개는 뉴라이트라는 사실이다. 그들과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의탁하거나 하면서 동반자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은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대통령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통치이념의 상당한 영역 안에 이미 뉴라이트적 세계관이 깊이 침투해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갈 수 있는 철학이 이념“(2023년 8월 국민의힘 연찬회)이라며 강조하는 그 ‘이념’은 철저히 뉴라이트적이고 그 증거는 빼곡하다. 자신의 세력을 감당하고 있는 인물군과 자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이념 이 두가지는 대통령으로서 반드시 알아야할 불편한 진실이다.
4. 뉴라이트 변천사
뉴라이트는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시류에 따라 다양한 변천을 했다. 태동기(1998~2003), 급성장기(2003~2007), 권력화단계(2008~2012), 각개약진단계(2012~2016), 재결집기(2017~2022), 그리고 재권력화단계(2023~현재)로 나누어 살펴본다.
1) 태동기
태동기(1999~2003)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설립되고 2004년 17대 총선 전까지다. 이 시기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국정원, CIA 등 정보기관 외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이미 손을 뗀 과거 지하활동경력에 대해 국정원에 발목잡힌 일부 386들이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한 수단으로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겠다’며 어설픈 북중 접경지역 공작활동 계획에 힘을 쏟고, 대중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자유주의’ 가치를 내세우던 것이 전부였다. 이 시기 뉴라이트운동은 뉴라이트로 호명되지 않았다. 시대정신, 북한민주화운동 등으로 활동했다. 중국과 북한 국경선에 자기 사람을 보내 탈북자들을 인솔하여 중국대사관 담을 넘게 하는등 과감한 행동전을 펼쳤다. 국정원 또는 그 이상의 공안기관의 도움 또는 방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이 ‘운동’이 내세운 목표의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부각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과거 주체사상파 핵심운동권 출신이라는 특이성과 북한정권이 이른바 고난의 행군 등 체제적 위기를 겪고 있다는 인식의 광범위한 확산 때문이었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노무현정부는 이들을 청와대나 당내요직(열린우리당)에 앉히기도 했다. 정치권에 진출한 386 내부에서도 이들에 대한 수용적 태도가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에는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 ‘운동’은 처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북한민주화가 체제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목표인 ‘북한민주화’는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오히려 뉴라이트운동이 전개되는 동안 군사적으로는 핵무장으로 더 강력해졌으며 대외관계에서는 미중패권경쟁과 러시아와 나토 등 서방세계와 대결이라는 균열을 틈 타 과거 냉전시대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12.12 쿠데타와 80년 광주의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선 민주화운동이 7년 만에 민주헌법쟁취로 주류질서에 참여한 경험과 비교하면 20년 동안 이들이 한 일은 중국 접경지역에서의 탈북브로커 양성과 미검증된 탈북자들의 체험 수기 배포 정도의 일이다. 최근에는 그나마도 축소·변질되어 탈북자 단체들이 외부자금 지원을 받고 위험천만한 대북선전물 풍선을 날리는 일로 수렴되었다. 이 운동을 벌인 사람들의 발언권이나 시민사회적 영향력은 현재 거의 0에 가깝다.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 인물인 김영환(강철서신 저자), 조혁(반미청년회 전 대표), 허현준(세월호유가족 단식투쟁에서 맞불폭식을 사주하여 유죄확정된 박근혜정권 청와대 전 행정관), 곽대중(전 전남대 총학생회장, 현 개혁신당 대표보좌역) 등의 최근 행적을 봐도 알 수 있다.
2) 세력화와 급성장기
세력화와 급성장기(2004~2007)는 2004년 총선을 겪은 뒤부터 이명박 대통령 당선때까지다. 그 시기에는 평화와 통일의 훈풍이 불고 있었다. 2005년까지 금강산관광객수만 100만을 넘었다. 그 외 남북교류협력 건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종교 및 학계 인사, 문화예술인들까지 앞다투어 평양을 왕래했다. 2004년 하반기에 통일부가 전국의 대학생 통일의식조사를 했는데 주변 4강 중 통일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미국을 꼽았고(49.1%), 일본이 그다음(35.7%)으로 나타났다.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중국(38.3%)을 지목했다. ‘북한 주민과 결혼상대로 맞이할 수 있다’는 42.9%, ‘동네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무려 75%나 되었다.(통일부, 2004)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 이질감을 느낄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당시 대학생들은 민족단결 또는 북한과 민족적 유대감이 높았고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자주적인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뉴라이트 세력들은 ‘다 죽은 주사파를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살려줬다’고 해석하며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동관, 2007, 자유지성강연회)
게다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계열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국회 과반수 의석(152석)을 확보했다. 동교동계가 주축이었던 과거의 민주당과 비교하여 열린우리당을 통해 80년대 학생운동, 재야운동 출신 정치인들이 오히려 국회에 더 많이 진입하자 보수세력 내에서는 ‘보수는 앞으로 영원히 집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전경련 부설 연구소 소장 공병호가 쓴 ‘10년후 한국’에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진보집권이 지속되면 민중주의, 노동조합 강화 등 진보의 약진으로 한국경제가 곧 망할 것이라는 한심한 내용이다. 전경련과 보수세력의 열띤 응원 속에 2004년 6월 출간 이후 그 해에만 무려 50만부가 팔렸다.
보수세력의 위기의식이 한껏 고조되던 2004년 10월 무렵 서울 강남의 한 호텔커피숍에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 시절 서울대 학생운동 출신 조선일보 전 주필 류근일, 오랜 빈민운동경력의 김진홍목사, 고 노회찬 전 의원과 한때 노동운동을 함께한 신지호 서강대겸임교수 등 10여명이 매일 모임을 갖고 새로운 우파세력 결집을 준비했다. 이들은 ‘좌파들에 의해 나라가 망해가는데 우파에게는 대안이 없다’며 개탄하였다. (『월간조선』 2005.11.) 이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 류근일은 70년대 운동권 세력중 반좌파인사를, 신지호는 80년대 운동권 세력 중 반좌파인사를, 김진홍은 기독교 내 우파인사를 결집시키기로 하였다. 그 다음달인 11월 23일 마침내 자유주의연대를 발족시켰다. 지금 우리가 기억할만한 뉴라이트 세력의 가장 주목할만한 출발점은 이날이다.
‘수구우파,수구좌파,혁신우파,혁신좌파로 정치이념지형을 4분하여 수구우파혁신 및 수구좌파 퇴출을 기치로 내거는 운동을 전개해 혁신우파 대 수구좌파의 구도를 창출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보수세력 다수가 손을 들어줬다. (신지호,2005,『시대정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보수기독교 교단, 전경련이 온 힘을 다해 후원했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이들에게 구애 메시지를 보냈다. 한나라당의 젊은 의원모임들은 경쟁적으로 뉴라이트 멤버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대중 정치인들의 요란한 보여주기식 행사와 달리 더 진지하게 뉴라이트와 결합을 시도한 정치인도 있었다. 박세일 전 여의도연구소장(한나라당, 현 국민의힘 부설 정책연구소)이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뉴라이트의 문제의식에 대해 성원을 보냈고 본인의 ‘선진화전략’과 ‘자유주의공동체 구상’과 뉴라이트의 이념이 일치한다고 봤다. 보수진영은 당시 이런 박세일사단을 뉴라이트로 분류하기도 했다. (『월간조선』 2005.11.) 한나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많은 신진인사들을 국회에 입성케하여 이른바 박세일사단을 만들었다. 대표적 인물이 이주호 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박형준 현 부산시장이다. 이주호는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인 반면 박형준은 386 운동권 출신으로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를 도와 1990년 민중당 창당을 주도한 경력을 갖고 있었다.
태동기 뉴라이트 세력은 국내 종북세력 척결과 북한체제 붕괴를 목적으로 한 전직 운동권출신인사들의 음모적인 써클 수준의 단체였다면 이 시기 새로 공식 출범한 뉴라이트는 이념과 학문적 영역에 집중하는 극우 지식인들과 시민사회까지 세력화를 기도한 명망가들의 대규모 결집이었다. 이들은 뉴라이트네트워크(신지호 교수 등)와 뉴라이트전국연합(김진홍목사)로 크게 구별되고 전자는 역사학자 등 지식인들을 모아 교과서포럼 등에 참여했고 후자는 정치권과 사회각계에서 극우 정치인, 활동가들을 양성하여 기독교, 노동조합, 대학가에서 뉴라이트 확산에 주력했다.
뉴라이트네트워크가 ‘머리’중심의 운동이라면 전국연합 측은 ‘손발’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이동관, 2007, 자유지성강연회) 두갈래의 뉴라이트는 이념전쟁과 정치투쟁 기구로서 역할했고 양자는 적절하게 상호 견제하며 동반성장하였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공산당 지도자 그람시의 진지전을 모방해 광범위한 시민사회 내에서 좌파들의 전유물이된 시민사회의 대항마로 성장시키는 역할에 집중했다. 노동조합, 교사, 학생, 시민운동, 종교, 학계까지 손을 대지 않은 영역이 없는 것도 이런 기획의 산물이다.
3) 권력화단계, MB정권 사실상 뉴라이트 정권
권력화단계(2008~2016)는 2008년 이명박 정권 시절에 이뤄졌다. 이명박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뉴라이트 정권을 창출했다.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한나라당 정책연구소(여의도연구소) 소장에 앉혀 비핵개방3000, 선진화 등 정부·여당 주요 정책기조를 잡게 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대표, 박영아 자유주의교육연합 정책위원장 3인에게 국회의원 뱃지를 달아줬다. 앞서 언급한 박세일사단의 이주호 의원에게 교육부장관직을 맡겼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출신인 이석연 변호사와 제성호 중앙대 교수를 각각 법제처장과 대한민국 인권대사에 앉혔다. 사공일 교과서포럼 고문은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 위원장이 됐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 임기 내내 극단적인 이념편향적 태도를 주도했다. 이영훈 교수 등이 줄기차게 주장한 ‘1948년 건국설’도 이때 처음 나왔다. 2008년 7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야당의 반발로 2개월 만에 철회했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과 현대사학회는 일부 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였다. 2008년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긍정적 재평가를 담은 <대안교과서>를 펴낸 데 이어, 2011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에 ‘역사교육과정 수정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강제병합 이후 일제에 의한 근대제도의 이식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역사교육과정에 명기하자는 내용을 포함하여 17가지나 요구했고 국사편찬위원회는 이 중 10개를 수용했다.
이 시기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인권위원회’처럼 기능했다. 2006년 첫해 민가협 의장이 수상 했던 ‘대한민국 인권상’은 2009년부터 3년 연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등 뉴라이트 계열 북한인권단체에 돌아갔다. 2011년에는 아예 뉴라이트재단 이사를 지낸 홍진표 시대정신 편집인이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차관급)이 됐다. 전통적인 인권운동단체들도 체제 대결적 시각을 장착하여 북한인권에 대해 상시적으로 언급하면서 구색을 맞추기 바빴고 인권운동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던 것도 이 시점부터다.
4) 각개약진 단계, 박근혜정권 뉴라이트를 선택적으로 활용
박근혜정권으로 교체된 후 뉴라이트는 잠시 권력에서 멀어졌다. 최대조직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후보가 경선할 때 부터 이명박을 밀었고, 대선을 앞두고는 공개 지지선언을 한 뒤 이후 하나둘씩 정치권에 입문하여 친이명박계로 분류되어 친박인사들로부터 정적으로 인식된 탓이 크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에서 국회입성에 실패하였거나 입각하지 못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화이트리스트 작성으로 유명한 허현준 선임행정관과 이명박정권 시절 공천을 받았으나 국회입성에 실패한 최홍재 선임행정관이 대표적 인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교과서포럼을 중심으로 박정희 재평가 등 역사논쟁을 일으키도록 뉴라이트세력을 선택적으로 활용하였다. 교과서포럼 대표이자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에 필자로 참여한 박효종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하고, 조부 이명세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에 분노한 나머지 뉴라이트의 교과서포럼에 가담하여 극우로 전향한 이인호 교수에게 KBS 이사장 직을 내줬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뉴라이트세력은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자제한다. 보수세력 내부에서 인기가 예전같지 못하여 주목받지 못한 것도 있고 이미 정치인 또는 행정가로 둔갑하여 다른 기준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부 인사들은 뉴라이트라는 정체성 보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살길을 찾는 생존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태동기 대표적 인물인 신지호가 선거법 위반으로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당하여 공직에 참여할 기회를 잃어버렸고 김영환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구금을 당하며 북한민주화운동의 중국조직이 와해되고 활동이 크게 위축된 탓도 크다. 뉴라이트 세력은 이 시기에 정치적 조직적 구심점을 잃고 대체로 각개약진하면서 후일을 도모하려는 경향이 컸다.
5) 재결집단계, ‘뉴라이트 머리’ <한국자유회의>를 중심으로
재결집단계(2017~2022)는 촛불항쟁으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과 뉴라이트 세력을 포함한 측근인사들이 피검되거나, 보수 집권 기간 내내 자신들이 안주했던 권력이 무너지면서 커진 위기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권력이 쇠퇴하고 보수적 전망이 어두워질 때 뉴라이트는 다시 주목받는다. 뉴라이트가 창립되던 때인 2004년 겨울의 정세와 재결집한 2017년 1월 정세는 그런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10년의 공이 하루아침에 무너져내리자 이들 중 일부는 태극기 부대로 가서 올드라이트 보다 더 올드해지는 길을 택했고 일부는 다시 뉴라이트로 재결집했다. 뉴라이트의 ‘머리’를 담당했던 일부 지식인들은 촛불항쟁이 마지막 절정에 달했던 2017년 1월 23일 『한국자유회의』라는 단체를 급조해 이영훈 김영호 김태효 조갑제 노재봉 등 130명이 8개항으로 구성된 선언문을 발표했다. 길지는 않지만 중언부언하여 읽기 힘든 선언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4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필자의 해석이다.
| 한국자유회의 선언문 요약(2017.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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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생각은 이듬해인 2018년 3월 김영호(현 통일부장관) 등이 집필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된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국정이념으로 천명한, ‘촛불은 국민명령’이라는 주권자민주주의는 주권자 절대주의고, 근로인민을 주권자로 보는 인민주권론적 전체주의 독재의 개념을 내포한 것이며, 북한헌법 63조에서 규정한 ‘집단적 개체’ 개념에 근거한 전체주의적 인민민주주의와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김영호, 조성환 외, 2018, 한국자유주의와 그 적들)
여기에 참여한 대표적 인물은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대통령실 안보실1차장) △강규형 전 KBS이사 (현 EBS 이사, 뉴라이트 계열 한국현대사학회 대협위원장, 전 국사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현 통일부장관, 전 뉴라이트씽크넷 운영위원장) △박인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뉴라이트네트워크 산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국 대표(전 북한인민군 대위)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전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 전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 (좌파문화인 색출작업에 앞장선 단체)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반일종족주의 공저자)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전 월간조선 편집장, 뉴라이트 태동기 후견인) △조전혁 전 인천대 교수(뉴라이트 네트워크 산하 자유주의교육연합 상임대표) 등이다. 130명의 이력을 전수조사한 결과, 모두 뉴라이트 단체 출신이거나 뉴라이트교과서 집필진, 뉴라이트 후견인 들의 대결집이었다. 한국자유회의는 뉴라이트의 ‘머리’들의 결집이었다.
6) 재권력화 단계, 윤석열 정권은 뉴라이트 이념 국정과제에 전면적 반영
윤석열은 주지하듯 영입인사로서 국민의힘 내부에 자기세력이 거의 없었다. 정권을 잡았지만 검찰 특수부 라인을 모두 동원해도 정권핵심인사의 10%도 채울 수 없었고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경선때 함께 했던 이명박계 인사들을 중용하면서 뉴라이트 인사들을 하나둘씩 받아들였다.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장제원의원(전 뉴라이트 부산연합 대표)을 세웠고 그는 일약 ‘윤핵관’으로 지위가 급상승했다. 경선캠프에서 함께했던 한오섭(전 뉴라이트전국연합 기획실장)에게는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2022)과 정무수석비서관(2023)직을 맡겼다. 김태효(뉴라이트 재결집한 한국자유회의)에게는 대통령실 안보1차장에 앉히고 보은인사 성격의 초등학교 동창출신인 김성한 안보실장 대신 대외정책 실세로 군림하도록 했다. 정권 핵심부에 또아리를 튼 이들은 외곽의 뉴라이트 인사들을 불러모았다.
뉴라이트 전력이 확인된 이들의 명단을 보면 통일부장관 김영호, 국무총리직속 경찰제도발전위원장 박인환, 진실화해위원장 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차기환,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정승윤, 국가기록관리위원장 강규형,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 김주성, 동북아역사문화재단이사장 박지향,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독립기념관 이사 박이택, 대통령 소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이배용,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김종석 등이다. 이들이 기관장을 맡으며 해당 기관의 위원, 심사위원 등 수십 수백명의 뉴라이트 인사들을 공직자로 불러들인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뉴라이트 전력이 직접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뉴라이트인 인사들도 많다. 과거 뉴라이트 운동의 후견인 중 한명이었던 여의도연구소 박세일 소장 사단으로 정치에 입문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이런 경우다. 그의 뉴라이트적 역사인식은 2022년 중도사퇴한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출마할 당시 공개한 정책공약집에 그대로 드러난다. “상해 임시정부는 건국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국민의 대표성을 충족하지 않은 채 구성된 임시기구임을 분명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하며 '임시정부'는 건국이 아니라고 했다.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던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박장관은 보훈부 내부를 뉴라이트 입맛대로 개조하기 위해 산하에 각종 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 뉴라이트 교과서 저자인 김용직 성신여대교수 등 수십명의 뉴라이트 인사들로 각각 과반을 채우는 기행을 저질렀다. 이런 사람이 뉴라이트가 아니라면 뉴라이트의 꼭두각시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8월 고용노동부장관에 임명된 김문수도 유사하다. 김문수는 지난 2006년 4월 도지사 후보시절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각은 ‘뉴라이트’로 바뀌었다”고 했다. 당선자 신분이던 6월에는 ‘뉴라이트는 세상의 빛’이라며 뉴라이트에 추파를 던져왔다. 이후 8년간 경기도지사를 역임했고 총선에 여러번 나왔기 때문에 정파단체로 지목된 뉴라이트와 일정한 거리를 뒀음은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와 함께 한 노동운동 출신, 민중당 출신 인사들 상당수가 뉴라이트에 가담하고 있는 점, 그가 경사노위위원장 시절 뉴라이트 노동단체인 국민노조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었다는 기록, ‘일제강점기 우리 국적은 일본이라는게 상식’이라거나 노골적 반노동조합 언행들을 보면 그를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단정짓기도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본인은 그럼 어떤가. 수많은 기괴한 언행 중에서 세차례의 8.15 경축사는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8.15 경축사야 말로 현안이나 세부정책 대신 거대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취임 3개월째인 2022년 8.15경축사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위험스러운 내용은 없었다.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일본을 비롯한 대외관계를 펼치겠다’며 가치동맹과 한일관계개선의지를 강하게 피력하였지만 김대중-오부치선언을 준용하겠다는 약속도 함께 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3년 8.15경축사는 완전히 달랐다. 그 내용 중 문제가 되었던 대목을 아래에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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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15 경축사는 광복절의 의미가 무색할만큼 온통 ‘자유’와 ‘북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고 정작 일본은 동맹국으로 묘사했다. 자유는 50번, 북한은 43번, 통일(사실은 흡수통일)은 36번을 언급했다.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통일을 이뤄야 진정한 광복이라는 논리다. ‘근대성확립’을 ‘광복’이라는 단어로 대체했을 뿐 <한국자유회의 선언문>의 내용과 맥락이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적어도 2023년 8월 전후부터 뉴라이트세계관에 깊이 일체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반국가세력에 대한 황당무계한 정의에 대해 진보민주진영에 대한 극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 논란이 됐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뉴라이트의 ‘머리’ 역할은 <한국자유회의> 인사들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일군사안보협력(군사동맹)의 추구, 그것의 선행조건으로서의 한일역사논쟁 해소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모습, 진보진영을 공산전체주의 추종세력이자 반국가세력이라는 등의 극단적 적대감과 척살의지, 재정악화에도 비상식적으로 결행된 부자감세정책과 규제완화, 반노동·친재벌 정책 등 과거 뉴라이트전국연합이 했던 선전선동은 이제 정권 차원에서 행정력을 통해 제도화되고 있다. 친일교과서 논란, 건국절 논란, 핵무기를 폐기하면 북한을 1인당 GDP 3000달러 사회로 만들어주겠다는 황당무계한 대북제안 논란 등 안팎으로 소란이나 피우던 이명박, 박근혜정권 때와는 차원이 다른 전개방식이다. 이같은 상황은 윤석열 대통령은 이제 ‘머리’를 뉴라이트에게서 빌리고 정권 기관과 행정각부를 그들의 ‘손과 발’로 제공한 것 아닌가 의심을 자아낸다.
7) 미래권력 창출 준비 단계, 한동훈 대표는 뉴라이트 세력을 전진배치
보수진영의 ‘미래권력’인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어떤가. 한동훈 대표 역시 윤석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당내 기반 없이 출발했다. 조선일보는 일찌감치 한동훈에 대해 지지성원을 아끼지 않았고 보수언론들은 그에 맞춰 한동훈 대망론에 입각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세력도 움직인다. 뉴라이트다.
한동훈의 실질적 정치입문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으면서다. 비대위원에 민경우, 김경률 등 과거 운동권 인사들을 영입했는데 민경우는 과거 운동권에 몸담았을 때 뉴라이트비판에 앞장섰던 과거를 재포장하기 위해서인지,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 동의한다’고 선제적으로 밝혔다.(월간조선, 2022.6) 이들이 함운경, 주대환 등과 2023년 8월15일에 설립한 단체가 <민주화운동동지회>고 이 단체의 핵심구호가 ‘운동권 청산’이었다. 한동훈 대표는 2024년 1월 이들을 전격 영입한 비대위 구성 이후 "운동권 출신 386세대 정치인이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국민과 민생은 도외시하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면서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하였다. 이 메시지는 총선까지 이어지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운동권 청소부’를 자처한 함운경 씨를 서울 마포갑에 전격 공천시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경우, 함운경 등이 뉴라이트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은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뉴라이트 초창기 인사들과 과거부터 친분이 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력이 유사하고 오래도록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특정한 때에 같은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같은 목소리를 낸다면 ‘원팀’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한편으로 2024년 6월부터 당대표 경선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캠프 총괄상황실장을 신지호 전 뉴라이트네트워크 대표에게 맡겼고 대표 취임 이후 전략기획부총장에 임명했다. 윤석열의 뉴라이트(김태효 등)와 한동훈의 뉴라이트(신지호) 사이에 상호 교류가 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고 개혁신당에 가 있는 뉴라이트(곽대중) 역시 어떤 교감 속에서 진행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이들이 과거와 같이 조직활동을 공유하고 있다고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오랜 지하운동권 경험과 86세대 특유의 조직확장능력 등을 감안해보면 한 두 사람의 핵심적 인물이 주어진 지위 이상의 역할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보수진영의 미래권력인 한동훈 대표 주변에 뉴라이트 인사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이고 한 대표 본인도 이들과 코드를 맞춰가는 중이라는 것이다. 어느 시점이 되면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의미다.
5. 뉴라이트는 역사의 반동
근대 이후 역사발전의 흐름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바탕을 둔 자유,평화,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 심화발전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역사발전에는 거대한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사회변혁 등 급격한 변화에 부적응하거나 방해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전자는 보수, 후자는 반동으로 부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뉴라이트는 역사의 반동이 분명하다.
이승만은 일제통치 기반이었던 친일세력을 대거 등용해 권력기반으로 삼고 해방의 역사에 반동을 꾀했다. 박정희는 4.19혁명 이후 혼란사회를 극복하겠다는 명분으로 5.16쿠데타라는 반동을 일으켰다. 87년 6월항쟁 이후에는 잦은 후퇴 속에서도 미진하게나마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세 번째 반동이 일어났고 이번 반동은 앞서 반동과 달리 진지전을 펼치며 사상문화적 영토를 확장하는 등 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 같은 권력기관의 폭력으로 보수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세번째 반동의 핵심적 세력이 뉴라이트고 이들을 권력의 중심부에 끌어들인 세력은 조선일보, 전경련 등 구 보수세력과 이명박,박근혜,그리고 윤석열, 한동훈 같은 해당시기 현실 권력이다. 이들의 최대관심은 친일이 아니다. 친일로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그 이상의 것들을 추구한다. 김대중,노무현, 문재인 정권 15년간 수많은 과거청산 노력이 실패를 경험한 것만 봐도 역사를 매개로 한 친일과 독재의 과거청산 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뉴라이트는 보수정권을 잃었을 때 시민사회를 통해 ‘진지전’을 펼치다가 정권을 잡고 나서는 ‘기동전’을 펼치며 기존 사회문화경제체제를 ‘전복’하려고 시도한다. 뜻밖에도 그람시의 공산주의 전략이론을 차용한 것은 이들이 80년대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익숙한 이론에서 아이디어를 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 공문을 근거로한 상식을 뛰어넘은 황당한 역사왜곡 등에 당황한 진보민주세력은 역사논쟁 수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온 국민이 우려하는 이들의 친일역사관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보수영구집권을 위한 사상문화적 기초를 다져가며 진보민주진영 전체를 상대로한 고립과 타격을 목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뉴라이트를 극복하려면 정권을 바꾸고 진보민주진영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그때에도 뉴라이트 세력은 시민사회와 학계를 중심으로 ‘진지전’을 펼칠 것이고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며 조선일보와 일베, 전경련, 일본 문부성, 심지어 미 국무부의 지원까지 받으며 교묘하게 움직일 것이다. 실제로 20년 전부터 그들은 그렇게 해왔고 그것은 이미 숨길 수가 없게 됐다.
결국 뉴라이트와 싸움에서 궁극적 승리를 얻는 방법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87년 이후 여러갈래로 나뉘어진 진보적 이념을 재정립하고 그것을 확산시켜 다수 국민의 강력한 지지를 얻는 것이다. 압도적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뉴라이트 같은 역사발전의 반동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으로 마지막 승부를 봐야한다. 이 또한 진보정당의 장기과제로 삼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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