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4-1. [발간사] ‘항쟁’ 중에도 공부합시다

진보정책연구원 2025. 7. 24. 14:48

[발간사] ‘항쟁’ 중에도 공부합시다

 

 

이번 연구지 기획은 11월 중순에 완성했다. 당연히 비상계엄이니 탄핵이니 알지 못했을 때다. 밤도 긴 추운 겨울, 선거도 없는 해, 진보정치에 열성인 사람들은 공부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봤다. 그래서 ‘공부합시다’, 하는 내용으로 기획을 했다. 그러다 이 난리가 터졌다. 우리 중 누군가는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을 마주했다. 잠깐 고민 끝에 기획특집 제목을 살짝 바꿨다. “항쟁 중에도 공부합시다”라고. 그래서 당초 기획했던 공부특집1~5는 모두 그대로 싣게 됐다. 모두 독자들이 좋아하는 학자, 전문가들의 외부 기고다. 

 

광주항쟁 당시 도청 안에 있던 학생들과 시민군은 그 힘든 시간 속에서도 잠깐씩 짬을 내서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내적 충만감을 추구하는 것일수도 있고 개인적 취미생활일 수 있겠지만,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 공부는 역사와 민중에 대한 책임감의 발로다. 

 

탄핵안 처리가 가결되었지만 응원봉 항쟁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정세가 또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이런 시절에 섣부른 정세 예측은 화를 부른다.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모두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해도 될 준비까지 해야하니 힘든 일이다. 그런 와중에 공부도 하자고 하니 곱절로 힘들다. 시류에 민감한 사람들이 독서량이 많은 편인데 그래서인지 12.3 이후에는 책도 안팔리고 넷플릭스 청취율도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한다. 그보다 뉴스가 훨씬 더 긴박하고 재미도 있고 또 반드시 봐야할 절박함이 있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그럴수록 공부해야한다. 지식과 지혜가 정치적 힘의 원천이고 학습이야말로 진보정치를 성장시킬 동력이다. 눈 앞의 싸움은 민주시민 모두의 과제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는 진보정치의 몫이다. 원고 5개는 모두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공부를 해보자는 제안 글에 가깝다. 

 

우리가 제안 드리는 이번 공부의 방향은 ‘새로운 것’이다. 철학에서 ‘새로운 것’을 커먼즈(commons)로 제시했다. <모든이의 민주주의> 장훈교 박사를 통해 ‘제한된 자원의 공동이용을 통해 성장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현할 가능성’과 ‘타자에 대한 공동의 책무 아래 우리를 돌보는 새로운 시민성 형성 가능성’에 대해 배운다.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우리의 오래된 역사탐구대상인 중국이다. 반세기 넘게 철저하게 지워진 현대 중국의 발전사를 제대로 읽지 않고서는 변화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래도록 중국의 변화를 탐구해온 성공회대 이남주교수로부터 좋은 글을 받았다. 경제의 ‘새로운 것’에 대해서는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이강국 교수로부터 배움을 요청했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와 새로운 진보의 경제학>이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미국보다 더 보수적인 한국 경제학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아줬다. 노동의 ‘새로운 것’은 인공지능시대에 노동운동의 활로를 모색하는 글을 실었다. 민주노총 부설 연구원인 민주연구원의 김성혁 원장이 노동운동현장과 이론적 고민을 담아 <인공지능과 노동>이라는 제하의 글을 보내줬다. 

 

세모진 강사진들과 연구지 필진들에게 연말에 독자들이 읽거나 보기를 원하는 책과 컨텐츠를 추천받아 실었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소장, 조규석 의학박사, 김창현 대표, 전지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실행위원 등 당대의 논객들이 추천하는 양질의 컨텐츠를 확인해 보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새것이라고 제안드렸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장훈교 박사 본인도 글에서 상세하게 언급했지만 커먼즈 개념은 그 분야를 대표하는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가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만큼 해외에서는 대중적인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운동의 중심적 영역 안에 들어와있지 않은 모든 것을 새로운 것으로 이해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사도 그렇고 주류경제학이 아닌 다른 시각의 경제학 모두 새로운 것이다. 

 

항쟁 국면에 시국과 완전히 무관한 글들만 공부하자고 하는 것이 민망한 일이기도 해서 연구원 원장으로서 한 개의 글을 썼다. 윤석열 쿠데타가 지난 74년동안 벌어진 전세계 쿠데타 490건과 얼마나 다른 쿠데타인지를 밝혀보려는 생각으로 조나단 파월과 클레이 톤 타인의 평생의 업적인 쿠데타 데이터세트를 내려 받아 분석했다. 가볍게 읽어도 좋을 글이다. 

 

천천히 모두 읽는데 1시간이 채 안걸린다. 이 항쟁의 겨울에 독자들의 사색과 실천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4.12.15. 

신석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