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특집1] 공동자원체제(commons)와 현대 사회운동의 접합 그리고 한계에 관한 하나의 시각
장훈교 (모든이의 민주주의 대표)
2010년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커먼즈’(commons)로 불리는 낯선 개념이 비록 소수 사례지만, 한국 사회운동 내부로 진입한다. 외국에서는 반지구화운동을 계기로 19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부터 커먼즈 담론이 등장하고, 커먼즈에 관한 신제도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200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0년대에는 운동 진영과 관련 학자 공동체에서 ‘커먼즈 르네상스’(commons renaissance) 혹은 ‘커먼즈 전회’(commons turn)라고 불러도 좋을 커먼즈에 관한 새로운 관심이 분출한다. 한국 사회운동과 ‘커먼즈’의 접합도 이런 전지구적 흐름의 일부이다. 지난 10여 년간 커먼즈 담론을 수용하거나 탐색하는 운동과 연구자가 늘었다. 하지만, 커먼즈는 여전히 한국 사회운동 질서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이는 한국 커먼즈 담론과 운동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상황일지 모른다.
커먼즈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는 그 가운데 ‘커먼즈’를 우리말로 번역하자고 제안하는 연구자이자, ‘커먼즈’를 현재 커먼즈로 통칭하고 있는 대상 모두를 포괄하는 보편 개념으로 사용하는 데 반대하는 연구자이다. 이후부터 사용하는 ‘공동자원체제’는 이런 고민 속에 일부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재 선택한 방법론적 개념이다. 따라서 이 글은 공동자원체제에 관한 교과서적 기술이 아니라, 내 연구에 기초한 하나의 시각일 뿐이다. 참고로 여기에서 펼친 논의는 내가 2022년 발간한 『공동자원체제 Commons: 2018-22 연구노트』에 근거한다. 또한 지면의 성격을 고려해, 편집자의 양해를 받아 세세한 출처 표기는 생략한다.
공동자원체제 개념은 일반적으로 복수의 개인이 특정 자원을 함께 이용하는 이질적인 여러 상황을 포함하는 일종의 우산 개념이다. 합의된 기준은 없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중첩적으로 인용하는 상황 범주는 있다. ① 디지털 데이터처럼 공동으로 특정 자원을 생산하여 이용하는 상황 ② 공동어장처럼 자신들이 만들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자원을 관리하며 공동으로 이용하는 상황 ③ 광장처럼 특정 집단이 아니라 한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자원 상황 ④ 대기나 인류 유산처럼 특정 국가나 사회를 넘어 인류 전체가 이용하고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자원 상황 ⑤ 물처럼 모든 인간의 삶에 공통으로 필요한 자원 상황 ⑥ 한 개인이나 집단의 독점이 허용되지 않는 자원 상황 혹은 그런 이유로 다른 이와 함께 그 이용을 조정해야만 하는 자원 상황 등이다. 물론 더 많은 자원 상황이 존재할 수도 있다.
공동 이용 자원 상황이 공동자원체제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자원 상황에 주목하는가에 따라 공동자원체제에 관한 이해가 달라질 수 있다. 현대 사회운동은 공동자원체제의 이름 아래, 이 모든 유형을 활용하면서, 다양한 자원 상황에 자신의 대안을 제시해 왔다. 그래서 공동자원체제는 우주, 기후부터 동네의 빈터와 놀이터에 이르기까지, 평화와 문화부터 데이터와 인공지능까지 그 적용 폭이 광범위하다. 이는 공동자원체제를 매개로 이루어진 사회운동의 대안 상상이 풍요롭다는 방증(傍證)이지만, 공동자원체제가 무엇인지를 둘러싼 사회운동 내부의 혹은 운동 간에 개념적 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서로 다른 상황이 모두 공동자원체제 안에 묶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사회운동은 모호성을 견지하면서, 상상을 열어두는 방향을 더 선호한다.
연구자의 처지에서 보면, 모든 공동 이용 자원 상황을 포괄하는 공동자원체제의 개념화가 가능할지는 논쟁적이다. 나는 이런 한계를 인정하면서, 잠정적으로 ‘공동자원체제’를 ① 복수의 개인들이 공동의 책무 관계 아래 함께 이용하는 자원과 ②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실천, ③ 이를 규정하거나 지탱하는 일련의 자치 규칙, ④ 이를 둘러싼 사회적 인정의 체제로 이해한다. 여기서 ‘체제’란 자원, 실천, 규칙, 인정이 결합하여 작동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방식은 전체사회나 인류 전체의 접근, 우리의 필요 성격이 아니라, 경계를 지닌 특정 집단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공동 이용 자원 상황을 염두에 둔 개념화이다. 따라서 모든 상황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때로는 더 많은 이해를 위해 더 제한적인 개념화가 필요한 때도 있다.
이 잠정 정의가 자원의 ‘이용’(利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공동자원체제는 공동재산체제와 다르다. 공동소유는 공동 이용의 한 경우일 뿐, 공동 이용 자원 상황 전체에 나타나는 보편 전제가 아니다. 많은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는 소유와 이용을 분리하여, 소유와 무관하게 이용을 보장한다. 자원에 대한 권리는 이용권, 처분권, 관리권, 배제권, 양도권, 수익권 등으로 분할된 ‘다발’ 혹은 ‘묶음’으로 존재했고,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허가받은 이용자는 이용권과 수익권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하면 공동자원체제는 소유가 없는 체제가 아니라, 소유가 공동 이용 자원 상황 안에 묶여 있는 체제이다. 이용 중심으로 구성된 공동자원체제에 대한 정의(定義)는 이를 반영한다. 현대 사회운동이 공동자원체제에 품고 있는 기대의 일부는 바로 이와 같은 ‘이용’ 중심의 자원 상황 그리고 사적 소유의 공동제약에서 나온다. 공동자원체제가 현대 공유경제(sharing economy)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진영에서 검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공동자원체제가 어떤 상황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일반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① 해당 자원의 이용 없이 특정 수준의 삶이나 어떤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② 나 말고도 다른 이가 그 자원에 물리-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있을 때, ③ 자원 이용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정치적 권위가 존재하여 ④ 이용 방식을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는 공동의 규칙을 정립한다면, 공동자원체제가 나타난다. 전근대 공동자원체제의 대부분이 노동과 삶의 필수 요소인 토지, 연안, 숲, 초원과 관련되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권위를 지닌 촌락 질서가 존재하는 곳에서 나타난 이유다. 그리고 많은 곳에서 자원의 소유와 이용이 분리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자원 없이는 누구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자원 이용의 자격 통제는 권위의 핵심 수단이다. 자원 이용을 보장받은 개인은 대개 공동자원체제의 관리에 요구되는 책무 또한 분배받는다. 책무 없는 공동자원체제는 없다. 선물로 주어진 자연은 주어진 그대로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선물의 상속 책무는 대표적이다. 책무 수행 여부 감독과 관련 처벌 체계는 견고한 공동자원체제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정치적 권위는 공동자원체제의 중핵이다. 이 권위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작동하는가가 공동자원체제의 많은 속성을 규정한다. 공동자원체제가 견고하게 지속하려면, 이 정치적 권위가 안과 밖 양쪽 모두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당연하지만 집단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이용 방식에 대한 도전을 정치적 권위가 다룰 수 있을 때 공동자원체제는 견고하다. 많은 공동자원체제에 일종의 갈등 조정 장치가 존재하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이용 자격이나 관련 규칙 자체가 당시의 상식과 윤리를 반영하고 있다면 더욱 견고해질 수 있다. 공동자원체제에서 함께 생계를 보장하는 도덕경제의 윤리나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열려 있는 인민적 공공성과 관습적 정의(正義)의 규칙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이다. 이 규칙 덕분에 약자 또한 보호받을 수 있었다. 현대 사회운동이 공동자원체제에 주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공동보장의 윤리와 그 제도화에 있다. 하지만 공동자원체제가 인민의 필요를 언제나 유의미하게 충족하는 건 아니었다. 때로, 공동자원체제는 빈곤의 덫이기도 했다.
외부적으로는 특정 공동자원체제의 자원 통제를 또 다른 외부 집단이나 개인이 인정할 때, 공동자원체제는 견고하다. 그렇지 않으면 공동자원체제는 끊임없는 분쟁, 더 나아가 폭력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어장 경계를 두고 벌어지는 분쟁은 한국에서도 흔했다. 어떤 의미에서 공동자원체제는 폭력 이후의 질서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공동자원체제는 자신의 자원 통제를 정당화하는 특유의 논리나 실천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시간적 선점(先占)과 해당 자원체계의 발전이나 관리에 대한 기여가 그 중심에 있다. 먼저 왔더라도, 아무것도 해당 자원체계 발전이나 관리에 기여하지 않은 집단은 상대적으로 외부의 도전에 취약하다. 역으로 말하면, 견고하게 지속되는 공동자원체제에는 내부의 갈등과 외부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역량, 윤리, 조건이 존재한다. 하지만 모든 공동자원체제가 이를 갖춘 것은 아니다.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가 견고성과 지속성을 보장하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무너진 사례가 더 많다. 때론 외부에서, 때론 내부에서 무너졌다.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공동자원체제가 자원과 물리적으로 분리 불가능한 정치적 권위의 ‘자치’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 자치를 현대의 수평적 상호합의 혹은 민주주의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많은 경우 그 정치적 권위는 피와 땅을 동일시하며,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원에 대한 접근을 분배하고 정당화하는 남성 중심 친족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대부분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자원체제의 공동성은 특정한 지배 양식과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공동성’을 향한 현대적 열망을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에 그대로 투사해버리면, 공동자원체제의 접근권, 의사결정과 권리 상속 등에 내재한 이러한 권력관계를 무시하기 쉽다. 또한, 대부분의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에는 근대 이동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민을 특정 장소에 속박하는 공동자원체제는 때로 바로 그 공동성의 이름으로 인민을 착취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20세기 사회주의국가에서 나타난 국가 동원 공동자원체제는 그 가까운 예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 지구적으로 등장한 사회운동의 공동자원체제에 관한 이해는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공동자원체제와 일정한 단절이 있다. 사회운동은 ①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로 자신을 정당화하면서도, ② 현재 질서에 맞서 오늘의 대안으로 공동자원체제를 불러내면서, 공동자원체제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나는 이런 현대 사회운동의 공동자원체제 접근 방식을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와 구별하고자 ‘공동자원체제 사고’(commons thinking) 혹은 ‘공동자원체제 패러다임’(commons paradigm)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운동에서 공동자원체제는 자신의 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대안을 모색할 때 쓰는 안내지도 혹은 사고로, 자신의 이념에 따라 재구성한, 기본적으로 정치 프로젝트의 속성이 강했다. 따라서 공동자원체제 사고는 운동의 이념과 지향에 따라 매우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정한 공통성은 존재한다. ‘공동자원체제 사고’는 역사 속 공동자원체제의 한계보다는 그 역사적 기능을 재독해하여, 협력과 자치, 자원 접근 및 이용 보장, 자원의 지속가능한 관리에 내재한 돌봄, 근대적 세계관을 넘는 새로운 주체성의 윤리와 감각 등과 같은 요소로 자신을 구성했다. 또한, 사회운동은 공동자원체제를 분명한 민주주의 기획의 일부로 바라보았다. 이는 공동자원체제를 수평주의나 공산주의 사고가 내재한 “공동의”(common) 운동으로 접근하는 진영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꼭 이들이 아니더라도, 현대 사회운동에서 공동자원체제를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 기제 혹은 현대적 구현 모델로 바라보는 시선은 광범위하다. 공동자원체제의 수평주의 해석은 공동자원체제를 21세기 사회운동의 새로운 언어로 부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지난 30년은 수평주의의 시대였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사회운동의 공동자원체제 사고는 네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여기에서 각 단계는 운동 전개의 새로운 양상이 등장한 걸 의미할 뿐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로의 단선적 전회나 이전 단계의 약화 혹은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1단계는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나타난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얽혀 있다. 이 운동은 자신의 운동을 공동자원체제를 방어하거나 되찾으려는 운동 형태로 이해했다. 공동자원체제로 호명된 자원체계는 다양했지만, 무엇보다 특정 지역 공동체가 관리하던 자연-인간 체계와 국가가 공급하는 공공재 및 공공서비스가 양대 축이었다. 공동자원체제가 이때 남반구와 북반구를 연결하고, 공동체와 국가 활동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유연성과 포괄성 덕분에 공동자원체제는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노출된 다양한 운동을 연결하고 묶어내는 “운동의 운동” 전략으로 자신을 제시할 수 있었다.
2단계에서는 일상생활 안에서 공동자원체제의 속성을 가진 자원과 활동을 발견하고, 이를 공동자원체제로 다시 ‘창안’하는 활동이 나타났다. 도시 공동체 운동은 그 중심이었다. 이제 공동체는 자신의 경제학을 공동자원체제로 다시 이해한다. 주로 공동체 단위에서 전개되기는 했지만, 2단계에서는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기본 인프라나 필수 제도를 단지 공동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여 집합적으로 만든 작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흐름도 등장했다. 이런 ‘공동생산’의 개념은 도시 공동체부터 위키피디아(wikipedia)까지 공동자원체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기본소득이나 참여소득, 사회적 상속과 같은 대안 정책과 공동자원체제가 만나는 접점도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기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공동생산은 공동관리를 요구할 근거가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운동은 공동자원체제를 통해 기존 복지국가나 시장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상의 ‘필요’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동자원생활체제(commonfare)와 같은 구상은 대표적이다. 일상이 공동자원체제로 구성될 때, 비국가적이고 비시장적인 협업과 자치의 새로운 안전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3단계는 공동자원체제와 도시, 혹은 계획의 접합 단계이다. 1, 2단계 운동은 각각 성격이 다르지만, 주로 개별적인 하나의 공동자원체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3단계 운동은 특정한 하나의 자원체계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① 다양한 공동자원체제의 연결과 종합을 지향하고, ② 때로는 도시 그 자체를 공동자원체제로 이해하면서 그 방향으로 변형하는 ‘계획’ 수립을 옹호한다. 이는 특히 오랜 자치주의 역사를 지닌 유럽의 급진 도시운동 진영에서 새로운 도시정부 전략을 구상할 때 나타났다. ‘두려움 없는 도시’(Fearless Cities) 운동이 그 예이다. 그래서 3단계 운동에서는 많은 도시 이름이 나온다. 겐트, 볼로냐, 프롬, 바르셀로나 등이 많은 관심을 받은 도시다. 이 도시들은 공동자원체제를 단순한 구호 수준을 넘어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번역하려 하였다. 다양한 유형의 시민협약과 시민경제 구상이 나왔다. 공동자원체제는 시민의 창조적 자율성을 보장하고, 시민이 직접 관리하는 영역을 확대하며, 시민의 기본적 필요를 공적 보장하는 새로운 도시정부의 활동을 종합하는 개념이었다. 현대 좌파 및 진보 전략과 ‘계획’의 재결합은 무척 중요하다. 계획과 국가 명령경제가 동일시되던 오랜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지막 4단계는 공동자원체제가 이중전환(dual transition) 곧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전환 모두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 제도로 급부상한 최근 단계이다. 공동자원체제와 전환 프로젝트의 결합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이 단계는 기후-생태위기의 가속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마 전 COVID-19의 범유행을 배경으로 확산하였다. 탈성장, 그린 뉴딜, 페미니스트 시각에 기반을 둔 돌봄과 전환 프로젝트 등에서 공동자원체제를 자신의 기획에 통합하고 있다. 물론 공동자원체제를 호명하는 방식은 그 정치 프로젝트의 이념과 방향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많은 현대 전환 프로젝트는 공동자원체제에서 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는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새로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제도화할 가능성 ② 제한된 자원의 공동 이용을 통해 성장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구현할 가능성 ③ 타자에 대한 공동의 책무 아래 ‘우리’를 돌보는 ‘새로운’ 시민성의 형성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본다. 곧 전환 기획은 공동자원체제가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운동은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현대 사회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과 의제로 공동자원체제를 번역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이런 점에서 현대 공동자원화 사회운동(commons movements)은 21세기 운동이다. 전통적인 공동자원체제를 넘어서는 다양한 대상이 공동자원체제로 재정의되었다. 일부는 이 공동자원체제를 과거의 전통적 공동자원체제와 비교하기 위해 “새로운 공동자원체제”(new commons)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 상황을 돌아보면, 사회운동이 새로운 공동자원체제의 구체적인 모형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수의 다른 대안 사고와 마찬가지로, 공동자원체제 또한 그 전환적 열망에 비례하는 구체적인 설계 원리와 이를 실현할 정치전략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다. 대부분은 공동자원체제를 단지 선언적으로 확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 선언 자체도 큰 의미가 있다. 이제 세계는 더 이상 상품과 공공재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공동자원체제와 분리 불가능하다.
공동자원체제 기반 전략에서 최대 난제는 이미 상품화되어 있거나 사유화되어 있는 자원체계를 공동자원화(commonization)하는 경로를 발견하는 일이다. 현대 사회운동의 공동자원체제 사고가 유의미해지려면 사적 소유 양식에 대한 도전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유권에 관한 제한이나 변형을 위해 필수적인 공적 개입의 양식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공동자원체제 사고는 이러한 공적 개입을 위한 대안 논리와 전환 제도 설계 원리를 충분하게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또한, 그 이행에 필수적인 신뢰 가능한 이행 경로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순간에 소유양식을 파괴하거나 중지시키는 폭력 통치가 아니라면, 공동자원체제의 도전은 최소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한 장기 제도화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시민 참여와 신뢰는 필수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공동자원체제가 운동실서의 중심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전환 제도화의 저발전과 이행 전략의 공백은 단지 한국적 현상만은 아니다. 만약 공동자원체제가 주어진 질서의 제도적 공백에 머무는 주변부 도전자의 지위를 넘어서려 한다면, 이 난제와 직면해야만 한다. 물론 다양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신공화주의가 주창하는 비지배 자유의 원리, 신제도주의가 보여준 신뢰 가능한 이행의 조건, 존 롤스가 제시한 재산 보유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전환 이론 등이 소환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아직 기존 질서의 저항을 넘어서는 전환의 경로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본다면 국가의 공백과 시장의 무시, 공화국에 관한 낮은 이해가 큰 한계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모든 시도가 전환 전략을 공동자원체제와 연결해 새롭게 사유하고 탐색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은 의미 있다.
공동자원체제와 현대 사회운동의 접합 그리고 한계에 관한 고찰 속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일반적인 사회운동의 기대와 달리 공동자원체제 자체를 진보적이거나 혹은 반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동자원체제의 정치적 의미는 외부 실천과 분리된 공동자원체제 본래의 내적 구조나 속성으로부터 곧바로 도출되지 않는다. 공동자원체제가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공동자원체제가 특정한 정치적 실천과 접합된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를 기존 질서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공동자원체제 또한 특정한 유형의 권력관계를 매개로 구성되고 작동하는 점과 공동자원체제가 다양한 정치 프로젝트의 경합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공동자원체제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면, 이는 공동자원체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창안해 낸 새로운 정치적 실천과 공동자원체제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짧은 글의 목표는 바로 그 정치적 실천의 창안에 공동자원체제가 열려 있다는 점을 사회운동의 역사와 그 접근 방식으로 보여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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