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5-1. [발간사] 정세분석은 무엇인가

진보정책연구원 2025. 7. 24. 15:17

[발간사] 정세분석은 무엇인가 

 

정당인들과 관련 연구자들은 새해마다 정세분석을 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세분석은 진보정치 쪽에서 더 흥행한다. 586들은 학생운동 시절부터 정세분석하는 방법부터 배운 세대다. 그 전통에 따르면 정세분석 글의 첫 번째 챕터는 언제나 국제정세로 시작해서 동북아정세, 한반도정세, 국내정세로 이어진다. ‘세계(주로 미국)를 알아야 우리가 보인다’는 생각일텐데 우리와 연관된 지점을 찾지 못하니 어설픈 글들이 난무했다. 기성 이론에 변화무쌍한 현실을 꿰어맞추는 자족적인 분석도 많았다. 이런 잘못된 전통이 현재의 정치활동가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전승되었다.

정세분석은 단순히 현재의 상황을 진단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고, 목표를 설정하며, 그 목표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데 있다. 따라서 정세분석 결과로 명확한 행동 방향이 도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분석은 충분히 유익하지 못하다. 명확한 행동 방향을 도출해 내기 위한 정세분석의 요소는 무엇일까? 첫째도 둘째도 대중의식 변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대중의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 변화를 이끈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작업은 사회운동이나 정치 활동에서 필수적이다. 정치경제적·사회구조적 조건과 연결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대중의식의 변화 지점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특히 우리의 전략적 투쟁대상에 대한 대중의 불만정도와 저항의식을 제때 정확하게 봐야 한다. 대중의 저항의지가 한곳으로 모이면 다른 조건은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른 조건이 진보정치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지만 대중의식이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해서 민중이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서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경험을 보면, 경제난이 사회적 불안을 야기했지만, 대중의 행동은 단순히 경제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다. 대중이 누구 에게 책임을 묻고, 어떤 해결책을 신뢰하는지는 정치적 프레임과 집단적 기억, 권력 관계, 그리고 사상적 각성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 진보정치의 정세분석에서는 대중의식 변화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각 세력 간의 경쟁과 갈등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소홀히 한다. 각 세력의 갈등과 경쟁도 결국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벌이는 것인데도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세분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식 동향과 변화 요인을 파악하여 해야 할 일을 찾는 데 있다.

[진보정책연구]의 새해 정세특집 편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하여, 대중의식 진단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민주노총 이양수 부위원장, 시민사회연대회의 이승훈 운영위원장, 진보당 장진숙 정책위의장(공동대표) 등 각 방면의 내로라하는 활동가들이 새해 정세 특히 대중의식, 대중운동을 깊이 있게 분석해 주었다. 또한 학자로서 실천가로서 계엄 당일부터 지금까지 투쟁의 광장을 지켜온 중앙대 이나영 교수 (사회학)는 2030 여성들이 저항의 광장에서 어떤 동력으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아울러 구조적 요인들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국제정세와 경제동향도 다뤘다. 서울대 이유철 교수는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동아시아를 재편하는 방향성을 제안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아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이상민 수석의 글에는 근거가 분명해 힘이 있다. 제시된 몇 가지 수치들은 암기하는 것도 필요할 정도다. 각 글은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이 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정세분석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신년대담을 포함하여 외부 기고자의 주장은 당연히 진보당 혹은 우리 연구원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연구지로서의 본래 기능을 다하기 위해, 다양한 견해를 수용하고 있다. 만약 독자들께서 체계적인 반론이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언제든 연구원에 의견을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이러한 논의와 토론이 우리의 사색과 탐구를 더욱 풍부하게 할 것이다.

 

2025.01.15. 

신석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