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연구] 국가공동체의 원형을 교체할 진보적 반파시즘연합에 대하여
신석진(진보정책연구원 원장)
1. 극우파시즘이 출현하였고 전면화되었으며 오래 지속할 것 같다
8년 전 이맘때 쯤(2017년 3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둘로 갈라졌다. 홍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과 유승민 등이 이끄는 바른정당으로. 두 당의 지지율은 각각 12%와 4%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여론은 77%였고 반대여론은 불과 18%에 그쳤다.(2017년 3월 2주차 한국갤럽) 반대 여론은 두 당의 지지율의 합인 16%보다 조금 높았다. 당시 세 세력은 심하게 반목했기 때문에 이 2% 차이가 전광 훈이 이끄는 탄기국(광화문 태극기부대)을 지지하는 여론으로 단순 계산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시절 광화문 집회에는 70대 노인들로 가득찼다. 현실인식이 결여된 소외된 극우 노인들의 무질서한 난동으로 비쳐졌다. 레거시 미디어도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광화문 집회에 참여한 정치인은 김진태, 김문수, 윤상현, 조원진, 전희경 불과 5명 뿐 이었다. 이후 이들은 두 당으로부터 오래도록 외면받았다. 나머지 정치인들은 태극 기 부대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장이 권성동 의원(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이었다. 이후에도 이들은 ‘박근혜의 강’을 건너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다.
지금은 어떤가. 극우 유튜브가 쏟아낸 음모론과 망상에 가까운 좌익척결 노선에 심취한 윤석열 일당이 군대를 불법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는데도, 탄핵 직전 박근혜때 와 달리 세 세력은 하나가 됐고 지지율은 그 때 보다 3배에 이른다. 먼저 두 당이 통합(국민의힘)했고 권력놀음에 익숙한 정치검찰과 극우 정치행동집단인 뉴라이트 세 력이 가세해 정권의 주축이 되었다.1) 한동안 거리를 뒀지만 12.3내란사태 이후 전광훈, 손현보 등 극우 개신교집단과 ‘인터넷 증오기계’인 유튜버들이 모두 한 몸이 됐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구호는 결국 ‘내란 옹호’였다. 설마 했는데 심우정 검찰 총장 등 검찰수뇌부와 일부 법관들이 이들과 한통속이 되어 기존 법질서를 스스로 파괴하고 윤석열 석방을 위해 특별히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데 이르렀다. 이른바 윤석열 구속취소사건이다.
기존에 보수기득권세력이라고 할 모든 세력이 원팀으로 대응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 자들과 극우개신교 광신자들의 지지까지 합해서 탄핵반대여론을 39%까지 끌어 올리고 국민의힘 정당지지율은 38%로, 민주당 36%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2025년 3월 2주차 NBS)2) 이런 태세와 지지율은 저들의 정치행동이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실권과 정권교체 이후에라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라 직감하게 한다. 지도자, 핵심지지세력, 유권자집단, 조직력과 동원력 등을 모두 갖춘 거대한 정치행동집단이 유지·존속을 넘어 강화·발전시키는 단계로 올라선 것이다. 일시적 현상에 따른 단기적 대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중장기적이고 고단한 극복과제가 되었다는 의미다.
당초 이 거칠고 폭력적인 정치행동을 주도하던 세력은 전광훈, 손현보, 김진홍 목사 등 정치세력화한 극우(개신교)집단이었다. 평범한 대중의 눈으로 보기에 그들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기까지 들고나와 온몸에 칭칭 감고 울부짖던 정신나간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지난 8년간 진화하여 70대 극우노인이 주축이 된 시위대는 어느새 2030 참여자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지금은 트럼프 마가(MAGA)운동의 무장돌격대인 프라우드보이즈처럼 젊은 남성들이 행동대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란 사태 초기 일부(윤상현 등)의 소극적 참여에 그쳤지만 나중에는 모두의 적극적 참여로 발전했다. 돈봉투가 오고 가고 다단계 영업판매망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으며 왜곡된 신앙이 가미된 특별한 질서로 이해될 여지도 있지만, 그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 대부분은 ‘결집된 열정’이라고 불려질 만한 요소도 갖췄다는 것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들이 집회에서 하는 행동이나 선전선동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파시즘 연구 대가인 팩스턴이 말한대로 ‘어떤 불가항력적 위기감’에 젖어들어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안팎의 적에 대해 법률적 도덕적으로 한계가 없는 폭력도 정당 화하는 집단정서’에 빠져든 파시즘의 사고와 감정에 빠져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반대만 일삼는 민주진보세력이라는 ‘국가의 적’을 때려잡기 위해 분연하게 떨쳐 나선 윤석열이라는 지도자를 따르기로 맘먹고, 그를 ‘공동체의 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의 대상으로 올려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87년 이후 대한민국은 군사쿠데타와 영원히 결별한 것으로 여겨졌고 파시즘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와 무관한 것이라는 믿음이 압도했다. 그런데 21세기 한국에 파시즘이 부활했고 그들은 더 이상 비이성적 집단인 극단화된 소수가 아니라 거대한 국가권력과 집권여당, 개신교 신자들, 최상위 엘리트 집단이 가세한 주류기득권세력으로 발돋움했다.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고 무엇이 이들을 하나의 정치행동으로 단일화시켰으며 이들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진보정당의 역할은 무엇이어야하나. 이 것이 이 글의 주제다.
다만 나는 이글에서 20세기 반파시즘연합과 같은 과거의 통일전선이론이나, 파시즘을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 또는 자본주의의 일 분파로 해석한 속류 맑스주의의 오류를 반복할 의사는 없다. 오히려 20세기 파시즘과 21세기 서구의 극우파시즘과 같거나 다른 21세기 한국의 극우파시즘의 원천은 무엇인지 밝힐 생각이다. 나아가 거대한 적에 맞서 힘을 모으자는 수준의 연합이 대선을 경과한 후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파시즘을 극복하면서 민중에게 더 나은 세상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어떤 연합이 되어야하는지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이글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해답은 진보적 반파시즘 연합 구축이다.
2. 극우 파시즘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➀ 20세기 파시즘에 대한 분석
파시즘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무쏠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등 유럽에서 시작하여 일본의 천황제 군국주의 파시즘을 거쳐 조선 등 아시아의 식민지로 번졌다. 1차세계 대전 종결(1919) ~ 2차세계대전 종결(1945) 기간은 파시즘의 시대였다. 파시즘이 국가권력을 장악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와 민중운동(주로 공산당과 노동조합)에 대한 억압이 제도화되고 폭력화되었다. 당연히 거대한 민중의 저항이 있었다. (그래서 이 기간을 ‘반파시즘의 역사’로 부르는 이도 있다) 그 시절 유럽에서는 코민테른3)의 지휘 하에 공산당에서 사회당까지 반파시즘연합이 구성됐다.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 확대가 파시즘의 발호보다 위험하다고 여긴 자유주의 정당들은 이 연합을 반대하고 방해했다. 그 결과 파시즘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나아가 2차세계대전을 방어할 기 회를 놓쳤다. 유럽과 일본의 파시즘은 결국 2차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종결된 후에야 몰락했다. 1950년대 초반 독일에서 나치즘을 신봉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3%에 불과했고 서유럽의 파시즘 정당 재건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김금수(전 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에 따르면 ‘파시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의 명확화 작업은 그리 간단치 않은 작업’이다. 모리스 돕은 ‘투자분야의 한계 때문에 막다른 골목에 놓인 채 정상적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자본가계급의 실망’ 등 독점자본의 투자위기에서 찾았다. 니코스 플란차스는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모순의 축적’으로 이해했다. ‘지배계급 내의 새로운 분파, 즉 거대 독점자본이 헤게모니를 독점하려는 정치권력 블록의 재조직화’를 의미한다. 스위지는 ‘자본주의 모순 심화로 인한 경제공황과 제국주의 팽창에서 파시즘이 잉태된다’ 고 설명했다. 월터 골드프랭크는 ‘생산력 과잉과 심각한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과 침체된 수요 등 수축하고 있는 세계경제가 드러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4)
하지만 어떤 해석도 21세기 한국의 극우파시즘을 이해하는데에는 별다른 설명력을 갖지 못한다. 현재 한국에서 투자위기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침체기 또는 산업전환기에 빈번하게 발생한 일이다. 게다가 테크기업이든 에너지기업이든 전경련이든 조선일보 등 재벌체제의 한 분파가 이번 내란사태나 파시즘 발호에 가담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전광훈을 뒤에서 돕는 이들이 자본의 한 분파라는 증거도 없다.(히틀러의 배후에는 실제 금융자본이 있었다) 오직 자본주의 위기와 경제사회적 구조 속에서 파시즘 태동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늘날 파시즘 연구에서 효능을 잃고 있다.
➁ 21세기 유럽과 미국의 파시즘에 대한 분석
유럽은 지금 극우정당의 잇따른 총선승리로 연일 지지율 기록갱신 중이다. 올해 2월 치러진 독일 연방총선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은 20.8%로 2위를 차지했다. 기존 집권당인 사민당이 16.4%를 얻었으니 어느 정도 위력인지 실감이 난다.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에서는 나치 계열의 극우 자유당(FPÖ)이 총선에서 29.2%로 1위를 차지 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22년에는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성향의 이탈리아형제들(Fdl)이 상하원 모두 가장 많은 득표를 차지해 정권을 잡기도 했다. 스웨덴 총선에서는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SD)이 20.5%를 득표하며 집권여당인 사민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했다. 얼마전 프랑스에서는 국민연합(RN)의 대선후보가 대선 결선투표에 오르기도 했다. 이들 나라만이 아니다. 폴란드 등 동유럽 지역과 핀란드와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유럽의회 선거결과에도 반영되었다. 현재 3억7천만명의 유권자의 직접투표로 선출되는 유럽의회 의석 720석 중 131석을 극우정당들이 차지했다. 사민당계열과 좌파당을 합한 의석이 173석이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파시즘의 원산지이기도 하면서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서구에서 먼저 극우세력이 발호했으니 이것을 세계자본주의 추세적 반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정당하다.
그렇다고 현대 유럽의 극우정당이 모두 파시즘 정당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유럽의 극우정당들은 실용주의 관점으로 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더 많은 표를 얻는다. 파시즘은 독재나 극우를 장착하곤 하지만 독재나 극우가 파시즘은 아니다. 군사독재가 파시즘도 아니고 개발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이 파시즘도 아니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파시즘은 대중의 자발적 정치행동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유럽의 극우정당이 파시즘 정당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파시즘을 내재화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좌파척결, 기존 질서 파괴를 목적으로 한 폭력적 정치행동이 당 안에 깊이 포진되어있고 대외적으로 나치를 추종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례도 다수 발견된다. 그래서 21세기 파시즘 연구는 갈래가 복잡하고 일관된 견해로 모이지도 않는다.
현상이 다양하게 분출하니 이들에 대한 연구결과는 유럽 정치학계에서 인기종목이다. 맑스주의 전통에서 찾으려는 시도, 소외 등 집단적 사회심리에서 찾으려는 시도, 세계화의 그늘에서 찾으려는 시도, 인종주의 또는 민족주의 전통에서 찾으려는 시도, 이 모든 것들을 융합하여 해석하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그 중 가장 인정 받는 영역은 단연 이주민에 대한 적대적 태도와 민족주의(국수주의)다. 왜냐하면 이것이야 말로 모든 유럽사회 극우정당들의 유일한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이주를 ‘침공(invasion)’이라고 칭하는 트럼프에게까지. 이주민들은 노동시장에서 자국민 하층노동자들과 낮은 임금을 놓고 경쟁한다. ‘침략자’인 이들은 집단적으로 거주하 며 이질적 문화를 고집하고 백인공동체의 전통 가치를 훼손한다는 피해의식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다. 이들은 정당의 이주민 정책에 따라 투표행태를 결정하여 좌파들에 게 더 많은 의석을 주도록 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아예 대놓고 민주당 엘리트들이 이주민을 제한 없이 받아들여 미국의 인종구성(히스패닉과 아프리카계 및 아시안)을 바꾸려한다며 ‘거대대체이론’5)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집단 린치, 구타, 혐오발언, 살인 등 폭력이 동반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분석을 오늘날 한국에 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중국혐오, 종북척결, 차별금지법 및 동성혼 법제화 반대, 선거부정론, 경제파탄 등 광화문 집회에서 자주 듣는 절제한 혐오발언들의 뿌리가 서구의 극우로부터 파생된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의 민족주의와 한국의 극우파시즘 간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심지어 한국 극우의 뿌리는 민족을 배반한 식민지파시즘이었다. 이주민 문제는 눈여겨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유럽의 이주민 숫자에 비해 한국의 이주민 숫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주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획득한 유럽의 이민자와 달리 단기 체류자 위주여서 자국민에 비해 사회적 지위도 훨씬 낮다. 국적취득자 역시 10%에도 미치지 못하여 자국민과 여러 단계에서 차별이 크다. 건설, 조선, 서비스업종(심지어 배달플랫폼까지) 등 일부 노동시장에서 자국민과 임금경쟁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전 사회적 혼란과 동요를 일으킬 수준이 아니다.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에서 불법 외국인 단속을 강화해달라는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한 압박을 행사하는 사례는 많지만 질서파괴적인 수준으로 전화된 사례가 없다. 반면 값싼 임금과 유연한 고용을 추구하는 기업의 필요측면은 크게 부각되어 해당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특히 보수층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자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높게 형성되어있다. 문제의 시발이 될 소지는 적지 않지만 현재의 쟁점과 찬반양론구도가 서구와 다르게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다.
➂ 21세기 한국의 극우 파시즘에 대한 분석들
장은주 교수(영산대)는 ‘87년 체제를 승자독식형 단순다수결 선거제도에 따른 의회 구성과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극심한 정치적 양극화가 12.3내란의 결정적 배경’이라고 진단한 뒤 ‘이 체제가 대중들 속에 적대주의를 심화시키고 대중들이 그 영향을 받아 무비판적으로 파시즘에 휩쓸리고 있다’고 말한다.6) 경제가 아니라 정치 의 영역에서 파시즘 출현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고 진지한 검토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주장만으로는 내각제와 다당제 전통을 오래도록 간직해온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극우파시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테러와 쿠데타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다당제 하에 서 극단적 주장의 정체성 정치가 제도화에 성공하고 결선투표제와 연립정부를 통해 쉽게 정치적 지위를 높이는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역사를 보면 히틀러도 내각수상으로 시작하여 총통이 된 것이며 평생 전시계엄 상태인 이스라엘도 모범적인 내각제 국가다. 어설픈 경험이지만 4.19혁명 이후 장면정권도 내각제 정부의 수반이었다. 이론적 정합성이 떨어지는 주장이라는 뜻이다.
노동운동가 오민규는 ‘세계경제의 생산력이 이른바 쇠퇴 단계에 이른 것’이라며 ‘성장의 여지가 있으면 꼭 남의 걸 빼먹지 않더라도 내 삶이 나아질 수 있다고 여기며 살 수 있을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세상에서 서로 약탈의 길로 접어들은 것’이 최근에 ‘내전상황’에 대한 원인이라는 가설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7) 하지만 이런 주장은 ‘자본주의는 필연코 파시즘의 길로 간다’는 속류 맑스주의의 오래된 변주곡의 변주곡이다. 정확하게는 ‘모든 자본주의국가가 반드시 파시즘화된다’는 기존 명제를 폐기한 1935년 코민테른 제7차대회에서 행한 디미트로프의 보고서 마저 수용하지 않은 것이다. 생산력 발전이 한계에 이르면 자본 제분파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지만 그것은 모든 산업전환기 마다 파시즘이 발호할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될 수 있다. 실제 역사나 보여지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지한 불평등 연구자인 김정희원 교수(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동시대 파시즘의 토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라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민중의 삶이 한없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파시즘의 토양이다’ 라고 말한다.8) 이 주장은 당연히 귀담아들을 이야기고 대체로 수긍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과 미국의 극우는 신자유주의의 4대기둥, 금융, 무역, 노동, 문화 통합이 가져온 자본분파별 이해관계와 공동체 질서의 붕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한 불만이 몰락한 중산층과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양산하면서 극우파시즘에 경도되는 과정을 통해 세력을 키웠다.
하지만 이 주장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가 파시즘 증식조건의 전부라면 그 토양 속에서 40년 성장해온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파시즘이 전면화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가장 많은 이득을 얻은 수출대기업, 금융자본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낸 극우집단의 정치행동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정책이나 중국산 수입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윤석열 일당은 심각한 세수부족사태에도 불구하고 재벌에 대한 특혜감세로 자본축적을 지원 했고 극우세력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이에 대한 야당의 반발에 대해 극우 행동주의자들은 ‘반기업적’이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극우파시즘에 취한 이들 중 빈곤계층에서 체계적으로 조직된 이들도 없고 하층 노동자들 내에서 사회적 불만세력으로 전환된 이들의 모습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저명한 저널리스트 박권일은 ‘김진숙에서 조갑제까지 반극우연합으로 뭉치자’고 주장하며 극우세력의 뿌리를 ‘불평등·양극화, 능력주의, 힘 숭배 등’으로 정의한다. ‘30년 넘는 신자유주의 공습은 세계와 개인들을 이어주던 연결고리를 끊어냈고 각자도생이 유일한 이념이자 생활방식이 됐다’는 것이 이유다. 앞서 김교수와 맥을 같이 하는데 ‘해결의 열쇠가 논리가 아닌 감정에 있다’고 덧붙인 점이 다르다. 극우주의는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에 똬리를 튼 감정 서사이며 논리적 설득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 개인화된 인간의 소외로부터 파시즘의 뿌리를 찾으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고 지금도 유행이다. 구조적 이해를 어렵게 한 다는 단점이 있지만 다른 어떤 주장 보다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열거한 이런 저런 주장들이 오늘날 21세기 한국 극우파시즘의 주요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껏 구호만 요란했고 모든 영역에서 패배에 패배를 거듭해온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사실상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파시즘운동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인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반파시즘운동의 궁극적 승리는 불가능한 것인가? 또 교회공동체 보다 더 영향력있고 친근감있는 공동체를 진보주의자들이 구성하지 못하면 그래서 소외된 이웃이 없도록 돌보지 못하면 극우파시즘 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인가?
필자는 앞서 다른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원조 파시즘정당의 재각성이라는 시각이다.
내란사태를 계기로 ‘국가의 적인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이라는 누명을 씌워 자주통일운동, 민주인권운동, 노동자 민중운동, 진보정치를 폭력적으로 짓밟아온 군사독재의 후계자로 재각성 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할 것 같다. 국민의힘과 한국의 보수는 원조 내란범이자 야만적 학살자인 이승만을 국부로 모시고 있다. 성공한 친위쿠데타의 모델인 박정희를 스승으로 삼고 있다. 군사반란의 주역 전두환·노태우의 유산을 물려받은 정치세력이다.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국민의 꾸짖음이 성가셔 긴 세월 숨죽여 지내 잊힌 듯 했지만 그들 유전자에 각인 된 극우파시즘의 욕망이 일정한 계기를 만나 분출된 것이다. 멀게는 그들의 부모세대가 추종했던 일본 제국주의도 실상 군국주의 파시즘의 본체였다. 극우개신교의 숭배 대상인 미군정은 좌익계열은 물론이고 중도좌파정당, 노동조합과 농민회 모든 자주적 결사를 폭력적으로 짓밟은 그 자체로 반공군사파쇼체제였고 극우정권 탄생의 산파였다.9)
다시 강조하지만 파시즘은 대중의 자발적 정치행동이다. 그래서 권력형태 연구보다 대중심리, 집단심리를 중시하는 연구결과가 많은 것이다. 대중심리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민족, 심지어 전쟁이나 공황까지 모든 면에서 영향을 받는다. 경제구조의 특별한 형태에서 발현되는 특성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특별한 권력구조에서만 파시즘이 더 쉽게 발호한다는 증거도 없다. 어떤 종교적 세례가 더 많은 이들에게 파시즘의 광기를 불어넣어줄 수 없고 어떤 문화적 사조(예컨대 반동성애나 PC주의)가 파시즘에 더 미치게 만든다는 주장도 펼치기 어렵다. 게르만 민족이나 중화민족이나 그 어떤 민족적 특성이 파시즘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할 수도 없다. 전쟁이나 공황을 겪은 나라는 많지만 그것을 겪은 모든 나라에서 파시즘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지는 않았다. 각각의 영역은 모두 파시즘 출현의 일정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지 만 본질적 영역도 아니고 전부는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 더 원초적인 집단심리 그것은 자기 집단의 원형을 찾는 행위이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도 밝혔지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혹한 전쟁까지 치르며 공산당과 북한을 적대하며 만들어진 나라다. 일제 식민지배와 군국주의 청산 보다 북한과 공산당에 대한 적대가 더 중시되었던 나라다. 식민지배와 북한의 침략 모두, 구원자이자 해방자인 미국에 의해 완성되었고 이게 우리 공동체의 원형을 형성했다. 이 공동체의 원형 안에서는 이승만이 국부로 모셔야할 무수히 많은 근거가 있다. 시민에 대한 폭력을 내면화한 반공국가를 완성한 박정희를 숭배할 이유는 너무 많고 ‘내부의 적’을 소탕한 전두환을 칭송할 이유도 차고 넘친다. 그 후신정당인 국민의힘 으로 뭉쳐야할 동기는 압도적이다. 구원자·해방자인 미국의 일극패권 지위가 중국 등 다른 강대국들에 의해 위협받는 것은 원형의 파괴고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킬 참혹한 사변이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군사독재의 몰락과 87년 체제가 빚어낸 자유주의 정치문화에 기 죽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하고 살아야만 했던 ‘인내의 세월’을 끝내기 위해 분연히 떨쳐 나선 윤석열의 내란은 ‘구국의 결단’인 것이다. 굳건한 한미동맹, 중국에 대한 극단적 혐오의 자유를 누리게 할 선지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를 체포 구금하려 했던 좌파 판사들의 영장집행에 맞선 자신들의 폭력은 시민적 자유를 위한 정당한 ‘저항권’ 행사가 된다. 그리고 이 기회에 ‘좌파세력 청소’의 시대적 소명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오래도록 그들만의 공동체의 원형을 지켜온 땅에서 지난 30여년간 진보와 민주주의로 장착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정권을 넘보거나 장악하고 그 원형을 파괴하려고 시도한다는 피해의식, 이것이 지금과 같은 집단적 광기를 불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3. 진보적 반파시즘 연합을 구축하자
이제 결론에 도달할 때가 되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파시즘의 발호를 분쇄하는 데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궁극의 지향점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원형을 교체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을 소멸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정권교체가 당면 목표라고 하고 승자연합으로 발전시켜 파시즘의 발호를 분쇄하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일대 전변을 일으켜 되돌릴 수 없는 미래의 새로운 가치로 공동체를 개조하는 것이다. 그런 정도 과업이 아니면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당이 주도하는 반파시즘 연합에 헌신하기 위해 진보정당운동에 뛰 어든 것은 아니지 않나.
진보적 반파시즘연합은 파시즘을 고립분쇄 하면서 동시에 진보적 사회변화를 이끈다. 반파시즘연합이 정권교체 이후 승자연합(진보당의 표현), 통치연합(민주당의 표현), 다수연합(조국혁신당의 표현)의 형태를 띠고 있을 때 그것이 파시즘 발호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어도 항쟁에 참여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평등과 재벌축적, 평화체제와 동맹질서, 지역균형 발전과 토건개발, 권력기관개혁과 윤석열검찰총장 사이에서 지루하고 답답한 줄타기를 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던 문재인정부로 되돌아가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항쟁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적 반파시즘연합이라고 할 때 진보정당이 우위를 점한 연합이라거나 더 많은 지분을 요구하는 연합이라고 해석해선 안된다. 그것은 정당의 정치역량에 따른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유권자의 선택일 뿐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진보적 반파시즘연합은 기존의 파시즘에 대한 정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폭력적 정치행동 이전에 이미 노동자에게, 소수자에게,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자주통일운동에 폭력과 배제와 오물세례를 퍼부었던, 정파 불문 우리 정치사회 깊숙이 파고든 파시즘에 대한 자성의 의미도 내포한다. 반파시즘이 진보적 사회변혁의 입장을 장착한 뒤에라야 파 시즘 권력과 민주주의를 가장한 ‘여러 가지 파시즘’ 모두를 소멸시킬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공격적 행태를 띠며 때로는 연합을 위태롭게 할 내부 모순을 표출할 수 있을 정도로 전투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예컨대 과감한 조세개혁이나 공공자산 재공영화, 가깝게는 차별금지법 제정 이슈 하나를 가지고도 이 연합은 위험에 빠질 수 있을 것 이다.
진보적 반파시즘 연합의 최상위 목표는 국가공동체의 원형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자면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느슨한 반파시즘연합을 중도보수든 자유주의 정치세력이든 누구의 이탈도 없이 높은 단계로 끌어올려야한다. 이것은 야심찬 기획이고 험난한 과제지만 모두가 소외됨 없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극화된 세계에서 자주와 평화와 평등이 넘쳐나는 새로운 나라에서, 파시즘은 설 땅을 잃고 재기의 가능성도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장기적인 목표이지만 실현 가능한 목표고 진보정당의 궁극적 사명이다.
1) 신석진, 2024. 9, 진보정책연구 vol2. 「세력화를 중심으로 본 뉴라이트 해부」
2) 보수과표집 논란이 있지만 너무 많은 조사결과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줘 추세를 무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론조사 꽃에서는 같은 기간 민주당(47.1%), 국민의힘(35.1%)로 민주당이 큰 차이로 높게 조사되었다.
3) 1919년 소련의 레닌이 주도하여 결성된 국제공산주의 운동 지도단체. 각국의 공산당이 코민테른의 결정서를 따랐다.
4) 김금수, 2013, 세계노동운동사3, 후마니타스
5) great replacement theory, 원래 유럽에서 비주류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지지한 음모론이지만 2016년 트럼프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횡행했다. (스티븐 레비츠키,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2024)
6) the columnist, 2025.2.5. 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View.html?idxno=3520
7) 프레시안, 2025.3.10. [대담-탄핵광장 이후 진보의 길] 上 진단 - 광장의 내전과 한국사회 우경화의 이유, https://www.pressian.
com/pages/articles/2025030619500859752
8) 김정희원, 2025.2.27. 한겨레, 파시즘에 기생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세상읽기]
9) 신석진, 2025.3.16. 민중의소리, 극우파시즘의 토양과 구조적 대안
'진보정책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7-4. [산업전망] 트럼프 정부의 관세·산업정책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과 함의 -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_손정순 (3) | 2025.08.19 |
|---|---|
| 7-3. [경제연구]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경, 속도와 방향_우석진 (0) | 2025.08.19 |
| 7-1. [발간사] 파면 이후의 세계 (0) | 2025.08.19 |
| 『진보정책연구』 Vol.7 (0) | 2025.08.04 |
| 6-6. [알림] 진보정책연구원 교육사업 안내 (0) | 2025.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