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9-1. [발간사] 다섯 번의 비상사태 해결과 진보정치의 차별화된 대응

진보정책연구원 2025. 8. 21. 09:49

[발간사] 다섯 번의 비상사태 해결과 진보정치의 차별화된 대응

 

 

1. 다섯 번의 비상사태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동안 무려 다섯 번의 ‘비상사태’를 겪었다. 모두가 예측 불가능했고, 기존의 상식과 제도의 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이 다섯 번의 사건은 우연이 아니라, 현 정권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하나씩 무너뜨리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비상사태이자 이 사태의 시작은 12.3 비상계엄(2024년)이었다. 1979년 10.26 이후 45년만이고 87년 민주헌법제정 이후 처음이다. 2차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선진국에서 벌어진 최초의 군사쿠데타였으며 전두환 등 신군부의 군사쿠데타(1979년~1980년)이후 처음 일어난 쿠데타시도였다. 우두머리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이어지는 일들은 모두 이 일로부터 파생된 것이지만 독자적인 영역도 있었다. 두 번째 비상사태(2025년 3월7일)인 구속된 윤석열을 검찰과 법원이 합작하여 ‘마법의 수계산’으로 석방시킨 일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었다.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내란우두머리 피고인의 위험인물을 중무장 화기와 전투병력을 갖춘 관저로 되돌려보냈다. 직무정지상태라고는 하나 행정과 군을 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실감이 안간다.

세 번째 비상사태는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부총리가 주도한 헌법재판소 마비 시도였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헌법을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임명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재판관 공백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나아가 점령(내란공범세력을 재판관에 임명하려 한 일)하려 하였다.

네 번째 비상사태는 2+2 한미통상협상(2025년 4월25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8일 한덕수 대행과 전화통화 후 관세와 조선,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합작투자, 방위비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하며 시작됐다. 이른바 패키지딜(줄라이패키지)이다. 관세를 비정상적으로 올려놓고 다른 비관세장벽과 서비스, 안보까지 연계시켜 원스톱 쇼핑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과 한국 부총리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문재인 정부 취임 전 ‘사드 알박기’ 사례와 같이 차기 정부가 이어받을 수밖에 없는 협상 구도를 미리 설정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의 대표성이 없는, 퇴장 직전 정권이 장기적 통상 체제에 더해 대외 안보환경마저 구속하려 한 이 행위는 경제 주권에 대한 비상사태였다.

다섯 번째 비상사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일으킨 사법쿠데타(2025년 5월1일)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윤석열이 임명한 10명의 대법관이 졸속, 날치기 판결로 이재명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항소심 무죄판결을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였다. 이것은 일부 법관도 증언하듯 명백한 정치개입이며 본질적으로 사법쿠데타이다. 법치의 이름으로 민주를 억압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하여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반민주주의 폭거다. 87년 민주헌법으로 체육관 선거를 없애고 직선제로 바꾸었는데 이제 그것도 못마땅하다며 선출되지도 않은(정확하게는 윤석열이 임명한) 10명의 법관들이 법정에서 대통령을 제맘대로 뽑겠다는 것이다. 

 

 

2. 선거연합 이행이 진보정치의 차별화된 대응

여섯 번째 비상사태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전시계엄요건을 확보하기 위한 평양무인기 침투공작은 실패했지만 신북풍공작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내란공범들이 운영하는 정보기관들의 정치공작이 있을 수도 있다. 극우파시즘의 제도권 진출의 상징인 김문수후보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6번째 비상사태일 수도 있다. 김문수는 과거 노동운동 시절에도 노동운동을 분열 약화시켰고 이후에는 극우로 전향해 전광훈, 주옥순 등과 어울리며 대중의 집단적 반공광기를 분출시켜온 사람이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경계심을 늦출 수 없다.

게다가 5번의 비상사태가 지금도 ‘비상상태’로 여겨지는 이유는 모두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야당의 슬기로운 대처, 국민의 열정적인 저항으로 일시적 극복은 이뤄졌지만 어느 것 하나 끝을 보지 못했다. 모든 것의 실마리는 ‘압도적 정권교체’로부터 시작된다. 압도적 승리로 내란세력에게 회복 불능의 상해를 입혀야 차기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직감한 기층조직이 아래로부터 붕괴될 것이다. 이어 정권교체를 통해 속도감 있게 비상사태를 해결해야한다. 정치검찰이 아닌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 책임자처벌을 단행하고,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통해 검찰과 법원의 인적개선을 이룰 수 있다. 새로운 통상협상팀을 구성하여 손실을 최소화하는 협상을 성공시키고 부족한 것은 국회의 비준절차에서 걸러낼 수 있다.

하지만 사법부는 행정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있고 통상협상은 상대가 있는 일이며 민주당의 지난 외교정책을 반추해보면 정권교체 이후에도 급격한 기조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단지 ‘우리가 집권해서 할 일을 임기도 얼마 안남은 대행권력이 추진하려는 것이냐’는 경고 외에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비상사태는 땜질식 처리는 가능해도 사태가 발생하여 국민 다수의 이해가 높아진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진보적 개혁을 이루려는 시도는 기대하지 못할 수 있다. 진보정치가 착목해야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다행히 비상사태에 맞서 진보정치도 전에 없던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착수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래 처음으로 대선 선거연합을 이룬 것이다. 그것도 ‘당대당, 후보대 후보’의 단일화 방식(소극적 연합)이 아닌 5개월간 광장의 밤을 밝게 빛낸 항쟁세력과 모든 원내 야당이 힘을 모아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는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연합을 성사시켰다. 후보등록 전 선거연합 완성으로 공동선대위 구성에 합의한 것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비상사태이니 만큼 비상한 행동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항쟁에 참여한 국민들도 대부분 반기는 분위기다.

야5당과 광장시민연대의 합의(공동선언문)에 근본적 해결의 단초가 있다. 내란세력을 청산하고 사회대개혁과제를 실현하겠다는 포부와 계획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내란세력 청산에 더해 근본적인 해결방법인 사법개혁에서 윤석열에 의해 거부된 개혁입법, 그리고 연합정치의 현실화방도, 심지어 진보당의 제안으로 국민참여개헌 실행 계획까지 모두 담았다.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 안팎의 여러 난관이 조성되겠지만 여러 세력이 함께 한 대국민약속이니 만큼 현재 시점에서 이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선거연합을 이루기 전의 진보정치라면, 정권교체 이후 차별화된 대응은 ‘광장민심을 지켜라’는 장외 구호 외에 다른 것을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선거연합을 이룬 뒤의 진보정치는, 공동선언 이행의 계획과 방도를 함께 의논하는 지위로 바뀌어야한다. 합의에 기초해 설립되어 제도권 안에서 기능하게 될 ‘사회대개혁위원회’가 그런 역할을 정부기구 내에서 담당하게 될 것이기도 하다. 정치환경은 언제나 변하고 그에 따라 국정기조도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국정기조의 중심에서 ‘합의’의 유실을 막기 위한 노력은 진보정치의 가장 중요한 차별점이자 고유한 임무가 되었다. 이를 통해 비상사태의 땜질식 처방을 넘어 근본적 해법으로 나아갈 힘을 마련할 수 있다. 

 

3. 이번호의 주요 내용

이번호는 대선 전 마지막 연구지다. 첫 번째 글은 지난 5월 초 시행된 두 번째 「내셔널어젠다」의 두 개 챕터를 분석하여 본원 김수림 연구원이 작성했다. 진보당의 12대 정책에 대한 시급성과 동의여부에 대한 4분면 분석은 향후 진보당의 정책의제에 대해 직관적이고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차기 정부의 정책추진과 관련한 과제별 시급성에 대해 야6당1)과 국민의힘 지지자로 분류하여 두집단별 교차분석한 결과도 흥미롭다. 야6당지지자들은 세금, 연금 복지재정개혁(73.3%)을 가장 절박한 과제로 인식한 반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저출산고령화 인구위기대응(68.5%)를 가장 절박한 과제로 인식했다. 특징적인 것은 ‘사회적약자보호강화’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자들은 28.4%의 아주 적은 수만 절박한 과제로 인식한 점이다. 꼼꼼히 살펴보기를 권해드린다.

지난 4월 30일 「경력단절 후 재취업 여성 일자리 실태조사 결과 발표」2)를 재구성하여 <‘엄마라는 이유로, 더 나쁜 일자리’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과정과 정책적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연구에 참여한 김경내 연구원이 정리하였다.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지면관계상 모두 담지는 못했지만 진보정치에 묵직한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구직목적 및 조건에 따른 네가지 유형별 분석은 이승윤교수의 독창적 연구주제이며 이 글의 특징이다.

지난 4월25일 발표한 「대학생, 빛을쏘다. 분노를 넘어 길이 된 우리의 이야기」에서 채 못담은 분석결과를 책임연구자로 참여한 본원 송명숙 연구원이 대학사회의 정치 무관심에 대한 새로운 변화상황을 주제로 집필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대학사회는 더 이상 정치 무풍지대가 아니고 다양한 정치적 요구가 터져나올 토대가 마련되고 있다. 학생운동의 제2전성기도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내에서 조세재정분야 정책을 다뤄온 김정엽보좌관(윤종오의원실)이 부유세 등 기존 진보정치의 조세정책 한계를 뛰어넘은 ‘불평등해소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정책 해설서를 작성해줬다. 필자는 지난 20여년간 진보정당의 불평등해소정책은 조세정책 중심이었다고 하면서도 조세를 통한 재분배로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함께, 부의 형성 단계부터 시민이 개입해 공동체 전체의 자산을 형성해나가는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소 어렵지만 숙독을 권한다.

 

2025년 5월15일

신석진_진보정책연구원 원장​​

 

 

1)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정의당(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합

2) 이승윤 교수(중앙대 사회복지학과)가 책임연구원으로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