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재구성의 시간: 평등, 평화, 재분배, 그리고 자치
지난 호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재건을 위한 세 축―민주주의, 주권, 청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전환기를 진단했습니다. 내란 사태 이후의 정치적 격변, 국제질서의 재편, 그리고 청년세대의 이념적 혼란상은 민주주의 재구성의 출발점이 어디여야하는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그 연장선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게 서기 위해 반드시 다루어야 할 또 다른 기둥들―평등, 평화, 재분배, 자치―를 탐구합니다.
첫 번째 글에서 박래군 선생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를 지지한다」를 통해 차별금지법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강조합니다.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상징인 저자는 광장의 요구와 숙의민주주의의 가능성을 결합하여,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기합니다.
오랜시간 한미동맹문제를 실천적으로 탐구해온 고유경 정책국장은 두 번째 글에서「그 항공모함은 한국의 영토이다」라는 제목으로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합니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 속에서 한국이 군사적 전진기지로 전락할 위험을 지적하며, 군비 경쟁의 딜레마 대신 시민 참여와 평화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한국사회 전환의 핵심과제는 자주성과 평화 원칙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워줍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장을 맡고 있는 신승근 교수는 세 번째 글에서「소득과세에서 자산 과세로 중점을 옮겨야 할 때」를 통해 한국 조세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진단합니다. 저출생·고령화, 저성장 국면 속에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일본의 자산 과세 강화 사례를 분석하며 한국이 나아가야 할 재정개혁의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의로운 조세체계야말로 민주주의 재구성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네 번째 글에서 박민정 본원 선임연구원은 「주민자치 법제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확장하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연구원이 올해 집중해온 연구과제의 일부를 소개하는 내용으로서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현황과 한계를 분석하고, 주민공론장의 제도화를 제안함으로써 직접민주주의의 장을 넓히자는 비전을 제시합니다. 민주주의가 제도와 절차를 넘어 시민의 일상 속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지속가능해진다는 점을 환기시킵니다.
이처럼 네 편의 글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하나의 과제에 모입니다. 차별을 넘어선 평등, 군비 경쟁을 넘어선 평화, 불평등을 바로잡는 재분배, 그리고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자치―이 네 가지는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한 필수적 토대이자 우리 시대의 절박한 요청입니다.
연구지가 담은 내용들은 한국 사회가 다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지적 실험입니다. 지난 호가 민주주의·주권·청년의 축을 통해 내란극복 이후 시대적 과제를 조망했다면, 이번 호는 평등·평화·재분배·자치라는 또 다른 축을 통해 국가와 사회 전환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길을 제시합니다.
2025년 9월15일
신석진_진보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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