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11-5 [이슈와 논점 3] 청년층 정치태도의 성별 분화

진보정책연구원 2025. 8. 27. 13:52

청년층 정치태도의 성별 분화

 

 

 

김창환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캔자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다. 주 연구분야는 계층론, 노동시장, 교육, 한국학등으로 텍사스대 학교(오스틴)에서 사회학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사회학≫,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Social Forces, Demography, Sociological Methods & Research 등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21대 대선 이후 청년 남성의 보수화 논의가 뜨겁다. 대선 출구 조사에 따르면 청년 여성은 어느 집단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더 많이 투표한 반면, 청년 남성의 이재명 투표율은 가장 낮았다. 청년 남성의 보수화 이유와, 같은 세대 내 성별 분화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청년 남성은 언제부터 보수화되었나?

 

이번 대선을 지나며 공론장에서 달라진 점은 청년 남성의 보수화를 대부분 인정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청년 남성은 보수적인게 아니라 민주당과 86세대의 기만적 태도에 실망한 것일 뿐이고, 이들도 사회적 진보를 바란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청년 남성의 보수화가 언제 진행되었는지, 청년 남성의 정치적 견해가 가까운 미래에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청년 남성의 보수화는 최근의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고,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댓글 공작을 진행한 이후의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필자도 최근에 청년 남성이 더 보수화되었고, 일베, 펨코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진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청년 남성의 보수화는 그 이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공작은 청년 남성의 보수화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가속화 시키고 확산시킨 역할을 했다. 일베, 펨코, 국정원의 공작은 현상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확산의 매개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1>은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서베이리서치센터 한국종합사회조사(Korean General Social Survey, KGSS)를 이용하여 20대 청년층의 보수정당 지지도 추이를 40대 장년층과 대비해서 추적한 것이다. 가로축에서 0 이하면 20대가 40대보다 진보정당을 더 지지한다는 의미고, 0 이상이면 20대가 40대보다 보수정당을 더 지 지한다는 의미다. 진보정당은 민주당, 진보당, 노동당 계열 정당을 모두 포괄하고, 보수 정당은 국민의힘, 친박연대 등의 계열 정당을 모두 포괄한다.

 

보다시피 20대 여성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40대 여성보다 더 진보 정당을 선호해 왔다. 현재의 청년 여성이 예전보다 더 진보화되어서, 이제는 가장 진보적 집단이 되었다는 진단이 있는데, 이 현상은 최근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21세기 내내 지속된 현상이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미약하나마 청년 여성의 상대적 진보성은 약화 되었다. 바뀐 것은 청년 남성이다. 21세기 초반에는 20대 청년 남성 (60년대 출생86세대)은 청년 여성과 더불어 어느 집단보다 더 진보정당을 지지했 다. 하지만 20대 청년 남성은 그 이후 꾸준히 보수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20대 청년은 여전히 40대 장년만큼 진보적이었다. 상대적 진보성은 줄었지만, 장년층보다 더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 남성의 보수화가 쉽게 인식되지 못했다. 청년 남성층이 40대보다 보수화되고, 심지어 노년층보다 정책적으로 더 보수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꾸준한 보수화의 결과지만,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청년 남성이 21세기 들어 꾸준히 보수화되었다는 것은 청년 남성의 보수화 원인을 조국, 박원순 사건 등 일부 진보적 인사에게 실망해서라든가, 2015년 이후 폭발적 으로 한국 사회를 휩쓴 페미니즘 열풍에서 찾는다거나, 문재인 정부기간 동안 증가 한 부동산 가격에 대한 실망에서 찾는 등등의 설명이 틀렸거나 최대한 우호적으로 해석해도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이다. 청년 남성이 보수화된 이유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의 결과이고, 일련의 사건들은 이 구조적 변화의 효과를 확산 폭발시킨 계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와 진보정당의 기반

 

위에서 언급한 청년층의 보수화는 40대 대비 청년층의 정당 선택이다. 보수화를 측 정하는 다른 방법은 정책 선호도를 살피는 것이다. 이 측면에서 보수화는 청년층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책 선호의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KGSS조사에서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는 항목에 2003년에는 응답자의 80%가 동의했다. 이 비율은 2009년에 75%로, 2014년에는 69%로, 2023년에는 61%로 줄어들었다.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항목에 2009년에는 10%만 찬성했는데, 2021년에는 26%가 찬성하여 두 배 이상 늘고, 반대는 2009년에는 78%였는데, 2021년에는 32%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한국 사회 전반이 재분배 관련 정책 선호에서 보수화되고 있다.

 

청년 남성은 그 중에서도 도드라진다. 2021년 조사에서 청년 남성은 정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항목에 24%만 반대한다. 모든 집단 중 가장 낮다. 이에 반해 청년 여성은 43%가 반대해 모든 인구 집단 중 가장 높다. 국민연금을 배분할 때 고소득자가 더 많이 기여했으니 그들이 연금을 더 많이 받아야 할 지, 공평하게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저소득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항목에, 청년 남성은 9%만 저소득층이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응답하고, 50%가 고소득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반해 청년 여성은 두 응답이 모두 30% 내외 로 비슷했다. 다른 인구 집단은 고소득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비율이, 저소득자 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비율보다는 높았지만, 청년 남성보다는 저소득자가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응답이 2배 높았다. 청년층은 지지 정당과 후보에서 뿐만 아니라 재분배 정책의 선호도에서도 성별로 분화하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최근 실시된 여러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

 

청년층의 보수화와 정치 성향의 성별 분화의 원인을 논하기 전에 이러한 한국 사회 의 전반적 보수화가 진보정당에 가지는 함의를 권영국 후보 지지자의 특징을 통해 살펴보자. 한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는 진보정당의 가치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유권 자의 축소를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만해도 선거의 주요 이슈가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의 선택이었다.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확대 방식과 대상이 논쟁이었다. 지금은 복지를 확대할 것이냐 자체가 논쟁의 대상이다. 22대 총선에서 정의당이 비례대표 3% 미만을 득표한 것과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후보가 1% 미만 득표를 한 것은 단순히 선거 공학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니라 유권자의 변화한 성향을 반영한 것이다.

 

21대 대선에서 권영국 지지자는 비율로 보면 청년층 여성에서 가장 높았고, 지지자 의 숫자로 보면 장년층 여성이 가장 많다. 출구조사 뿐만 아니라 <시사In>-한국리서 치조사에서 공통으로 확인된다. 그런데 권영국 후보에게 투표한 청년층 여성은 하 위계층이 많지만, 권 후보에게 투표한 장년층 여성은 상위계층이 많다. 이러한 지지 자의 계층 성향 때문에 권영국 후보 투표자는 이재명 후보 투표자보다 재분배 선호 에서 상대적으로 덜 진보적이었다. 이재명 정부에서 재분배와 불평등 감소를 최우선 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와 관련된 질문에는 권영길 지자자들이 가장 높게 동의했지만, 경제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지 정부에게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 등 자신의 선택과 관련된 질문에 는 권영국 지지자가 이재명 지자자보다 더 보수적이었다. 소위 말하는 “강남좌파”의 모순적 성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결과는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선에서 계층에 기반한 핵심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중시하는 가치에 기반한 지 지층도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정체성 이슈에서 권영국 지지자가 이재명 지지자와 상당히 달랐던 것도 아니었다. <시사In>-한국리서치 조사 결과를 보면 “페미니즘이 학교와 직장에서 여성에게 유리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라는 항목에 이재명 지지자는 59%가 동의하지 않았고, 권영국 지지자는 63%가 동의하지 않았다. 동성애자에게 느끼는 100점 만점의 친근감 점수에서 이재명 지지자는 31점, 권영국 지지자는 36점이었고, 트렌스 젠더는 각각 27점, 28점으로 두 집단 모두에서 낮았다. 조선족에 대해서는 이재명 지지자가 31점, 권영국 지지자가 26점이었다. 이민자에 대해서도 이재명 지지자의 감정 온도가 권영국 지지자보다 조금 높았다. 이러한 점수들은 이준석 지지자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 이민자에 대해 거의 모든 집단이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진보정당 지지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더 많이 공감할 것이라 는 기대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 지지 정당과 후보에 따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정 온도 차이는 크지 않다. 다만 장애인에 대한 감정 온도에서 이준석 지지자는 46점인 데 반해, 이재명, 권영국 지지자는 각각 58, 60점이었다. 21대 대선이 진보정당에 던진 숙제 중 하나는 근원적 가치를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 지지 확대를 위한 의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3가지 사건과 청년층 태도의 성별 분화

 

외국에 거주하는 필자에게 21세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상징하는 세 가지 사건이 있다. 2009년의 용산 참사, 2015년의 강남역 살인 사건, 2020년의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 논란이다. 이 세 가지 사건은 각각 경제적 약자 혐오(와 이어 지는 재분배 반대와 경제 정책의 보수화), 여성 혐오(와 이어 등장하는 페미니즘과 안티페미니즘), 능력주의를 대표한다. 사회 전반의 보수화, 페미니즘, 능력주의는 청년 남성의 보수화와 청년층의 성별 분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다.

 

2009년 용산 참사

 

2009년 용산 참사 당시 드러난 이익 분배를 둘러싼 경제적 약자에 대한 차가운 태도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충격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유학을 위해 떠 나온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 사회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이 사건은 막연히 한국 사회를 잘 안다고 믿던 몽매에서 깨어나 한국 사회에 대한 연구 를 확장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 사회는 점점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공감대가 약화되고 있다.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동정심이 생기고 걱정이 된다”는 항목에 대한 동의 여부를 2011년과 2023년에 물었다. 두 시기 모두 대부분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중 “매우 그렇다”는 응답은 2011년 32%에서 2023년 16%로 줄었다. 34세 이하의 청년 남성은 이 응답이 2011년 13%였는데, 2023년에는 4%에 불과하다. 모든 집단 중에서 가장 낮다. 청년 여성의 “매우 그렇다” 응답도 두 시기 에 21%에서 8%로 격감했으니 변화의 방향에는 성별로 차이가 없다.

 

성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정책 선호의 보수성과 사회경제적 지위의 관계이다. 청년 남성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보수적인데 반해, 청년 여성은 그런 경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경향은 여러 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초로 보고된 것은 2021년 화제와 논란이 되었던 KBS 조사다. “기회가 되면 내 것을 나눠 타인을 도울 것이다”라는 질문에 청년 남성만 주관적 상위계층일수록 더 인색했다. 믿기 어렵다 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2022년 경향신문의 의뢰로 지식 콘텐츠 업체인 언더스 코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득세와 상속세 인상에 대해 청년 남성은 부유할수록 반대하는 태도를 확실히 보였다. 청년층에서 소득세와 상속세 인상에 반대하는 비율 이 높을 뿐만 아니라, 보수적 태도와 현재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상관성이 청년층에 서 높다. 장년층에서는 이런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시사In>-한국리 서치 조사에서도 다시 확인된다(<시사In> 930호에 실린 필자의 칼럼 참조)1).

 

2020년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층의 약자에 대한 비우호적 태도는 능력주의와 깊이 관련이 있다. 2020년의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화를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성취에 대한 태도가 청년층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진보의 오랜 바램이었다. 한국 사회 노동시장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이 정규직과 비 정규직으로 갈라진 고용안정성 문제라고 간주하였다. 하지만 정작 비정규직의 정규 화가 이루어졌을 때, 청년층이 환호하기보다는, 시험을 보고 들어오지 않은 직급을 시험을 봐야 받을 수 있는 직급으로 변경하는게 “공정”하지 않다고 크게 반발했다. 2013년에 나온 오찬호 작가의<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관찰되었던 차별에 찬성하는 대학생들의 능력주의가 노동 현장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사회 갈등의 뿌리가 불평등의 확대에 있다는 기존의 진단을 의 심케 만든다.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이 환영을 받는게 아니라 거대 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사회에서 소득 불평등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08년 까지 꾸준히 증가하였다. 약 15년간 불평등이 증가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2023 년까지 약15년 동안 소득 불평등은 꾸준히 감소하였다. 혹자는 1997년 IMF시기라 고 불리는 경제위기, 외환위기의 충격을 강조하지만, 소득 불평등은 그 전부터 증가 하였다. 외환위기 직후 불평등이 급증했지만, 외환위기 직후가 예외적 시기였다. 지 난 30년간 첫 15년의 불평등 증가가 큰 사회적 변화를 야기했다면, 최근 15년 간의 불평등 감소도 그만큼 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한국 사회의 보수화, 특히 청년층의 보수화는 불평등이 감소하는 지난 15년의 경험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

 

소득 불평등만 줄어든게 아니다. 기회 불평등도 줄어들었다. 일부에서는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이 격화된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경쟁의 격화는 기회 평등의 결과이다. 연령대별 교육 수준을 보면 한국의 20 대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다. 한국보다 20대가 대학 교육을 더 받은 국가는 없다. 이에 반해 한국의 70대는 OECD 국가 중에서 교육 수준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국제 비교에서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세대와 가장 교육 수준이 낮은 세대가 공존한다. 최근 20여년간 고졸자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하였다. 교육 팽창과 대 학 정원의 확대는 기회 평등의 증대를 의미한다. 어느 국가나 상위계층의 대학 진학 률이 하위계층보다 높다. 교육의 양적 팽창은 처음에는 상위계층이 혜택을 받지만 더 많은 팽창은 하위계층으로 그 혜택이 확대된다. 교육사회학에서는 이 과정을 최 대한으로 유지되는 불평등(Maximally Maintained Inequality: MMI)이라고 한다. 여기서 “최대한”이란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대학팽창의 효과는 상위층 이 먼저 누린다는 의미이다. 바꿔 말하면, 대학 진학률이 크게 높아지면, 하위계층까지 대학 교육의 혜택을 받게 된다. 한국이 바로이 경우이다.

 

이에 반해 86세대가 대학을 가던 1980년대에는 초기에는 20%, 후기에는 졸업정원 제등 대학 팽창으로 30% 정도가 대학에 진학했다. 지금의 70대는 10% 미만이 대학 진학자다. 대졸자는 상위10%의 엘리트였다. 괜찮은 일자리는 대부분 대졸자가 차지 한다. 이전 세대에서는 대졸자는 10~30%에 불과했기에 상위 20~30%의 일자리를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보다 학벌주의가 더 심했기에 명문대 졸업생이 대기업 취업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대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입도 선매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고졸자가 대학에 진학하고 학벌주의의 약화로 괜찮은 일자리를 두고 졸업대학과 무관하게 경쟁한다. 경쟁 심화는 기회 평등의 결과이다.

 

소득 불평등의 감소로 결과 평등 수준이 높아지고, 대학 팽창과 학벌주의 약화로 기회 평등의 수준이 높아진게, 지난 15년간의 변화이다. 이러한 평등의 확대가 모두에 게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에 상위계층을 쉽게 차지하고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던 집단에게 평등의 확대는 위협이 된다. 그리고 이 위협에 가장 크게 노출된게 명문대 에 진학한 상위계층 청년 남성이다. 상위계층의 명문대 진학률은 예나 지금이나 높 았다. 과거에는 상위계층 명문대 출신 남성은 괜찮은 일자리 취득이 보장되었는데, 최근에는 비수도권 대학 출신자 및 여성과 경쟁해야 한다. 과거 세대와 비교해서 상 위계층 청년 남성은 몇 배 더 높은 경쟁의 압박을 느낄 것이다. 청년 남성의 능력주 의는 격심한 경쟁을 뚫고 괜찮은 일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 야지 인위적으로 결과 평등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능력주의 논리를 확산시킨 일베 사이트에서 명문대 학생증 인증이 유행했던 것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회평등으로 인한 경쟁의 심화는 세대 간 사회이동을 촉진한다. 기회평등이 없는 사회는 경쟁이 없고, 경쟁이 없는 사회는 기득권이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킨다. 역으로 기회평등은 필연적으로 과거보다 많은 수가 괜찮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뛰 어들어, 경쟁을 심화시킨다. 이렇게 격화된 경쟁으로 기득권 중 일부는 그 자리를 지 키지 못하고 하위계층으로 하락한다. 일반적으로 진보의 아젠더로 여겨지는 기회평 등과 활발한 사회이동은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그리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 논리가 때로는 기득권에게 위협이 된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대출액을 6억으로 제한하는 부동산 대책이 나오자 서울경제 신 문에서 6월28일자 기사를 통해서 “고소득 흙수저”의 강남 입성이 막혔다고 비판했다. 서민의 자산 형성을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의 프레이밍과 “고소득 흙수저”라는 조어에 대한 반감을 나타냈다. 그런데 고소 득 흙수저를 소득상층-자산하층으로 보면, 이 계층은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다. 자산 은 상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소득은 상속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다. 통시적으로 점점 더 계층이 세습된다면 소득과 자산 지위가 불일치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일치하는 경우가 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소득분위가 자산분위보다 높은 청년층이 늘었다. 가계금융복지조사 원자료를 이용해서 추정해보면 소득분위가 자산분위보다 높은 경우가 청년층에서 지난 10여년간 20% 이상 증가했다. 소득상층-자산하 층의 통시적 증가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계층 이동이 활발하다는 한 증거이다. 언 론에서는 더 이상 계천룡이 나오지 않고 세대 간 사회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도하지만, 엄밀한 학술적 연구에서 이러한 진단은 지지되지 않는다. 지난 30여년 간 세대 간 직업이동은 증가했다. 한국의 세대 간 소득의 연계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낮은 편이다.

 

이런 활발한 사회이동은 상위계층 청년 남성이 하위계층으로 하락할 가능성을 높인다. 상위계층 청년 남성의 보수화는 이 가능성에 대한 반발이다. 능력주의로 기회평 등은 받아들이지만, 능력이 검증된 후에는 상당한 결과 불평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일체의 기회평등에 반하는 조정에 반대하고, 결과 불평등을 조정하려는 재분배에 반대한다. 일부에서는 청년 남성의 보수화를 언행불일 치를 보여준 86세대와 민주당계열 정치인에 대한 반발로 해석한다. 이 해석은 청년 남성 내부의 계층 분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6세대를 포괄하는 현재 청년층의 부모세대에게서 일부의 원인을 찾는다면, 지난 30년 중 불평등이 증가하던 전반 15년 동안의 선택에 그 단초가 있다. 86 세대는 불평등 증가의 추세를 바꾸기 위한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불평등 증가의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경쟁력도 동시에 추구했다. 전자는 진보적 정치의 지지로, 후자는 자녀 교육 투자로 이어졌다. 이런 모순된 모습은 개인의 합리성으로 보면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현재의 청년층이 능력주의를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받아들이는 삶의 경험을 제공하였다.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그럼 청년 여성은 왜 청년남성과는 다른 경향을 보이는 것일까? 여기에 2015년 강 남역 살인 사건 이후 확산된 페미니즘이 있다. 86세대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 고등교 육기관의 여성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지금은 여성이 절반을 넘는다. 고졸자의 대 학 진학률로 따지면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여성의 교육이 남성을 앞지르는 현상을 “여성의 부상”(the rise of women)이라고 부크만과 디프리트(Buchmann and DiPrete)는 칭한 바 있다. 한국의 특이성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그런데, 가파르게 증가한 여성의 교육 성취에도 불구하고 한국 노동시장에서 통시적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성차별은 여전하다.

 

과거에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낮을 뿐 아니라, 설사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혼인 출산 등 가족형성 후 대부분 노동시장에서 자의든 타의든 탈락했다. 그런데 여성의 교육 수준 증가와 더불어 노 동시장에 남으려는 여성의 비중이 꾸준히 증가했다. 그리고 이들 여성은 가정과 일 자리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1990년대의 혼인패턴을 보면 여성은 학력과 무관 하게 30대 초반이 되면 대부분 기혼자가 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저학력, 고 학력 여성의 혼인율이 감소한다. 남성은 학력이 낮을수록 혼인율이 낮은데, 여성은 대졸자의 혼인율이 고졸자 보다 낮아졌다. 즉, 1970년대 후반생부터 고학력 여성은 혼인보다 노동시장 기회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폭발한 페미니즘은 1970년대 후반생부터 1990년대 초반생까지 노동시장에 진 출하며 겪은 여성차별을 인지한 충분한 규모의 인구코호트의 형성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여성차별이 전보다 커져서가 아니라, 여성차별에 저항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진 충분한 인구집단,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가 형성되었다. 이 집단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대 사회란 계층이 세습되 는 사회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성취하는 사회다. 중상층의 계층 세습은 직접적 승계가 아니라 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과거에 여성의 교육은 주로 혼인시 장에서 보상받았다. “결혼할만한 남성”(marriageable men)을 만나는 첩경이 교육이었다. 지금은 여성의 교육 보상이 혼인시장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으로 기회가 넓 어졌다. 그렇다고 혼인시장의 기회가 닫힌건 아니다. 혼인패턴에 대한 연구에 따르 면 다른 국가에서는 교육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동질혼(assortative mating)이 증가했는데, 한국은 그런 경향이 없다. 여성은 승혼(자신보다 교육 수준 이 높은 남성과 혼인하는 것)을 통한 계층상승의 기회가 여전히 존재하며, 동시에 노 동시장의 기회가 확대되었다. 이에 반해 청년남성은 교육에서 여성에게 뒤쳐지기 시작했고, 노동시장은 기회평등의 강화로 경쟁이 더 심화되고 상위계층으로의 진입이 좁은문이 되었다. 청년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기회는 확대되고 남성의 기회는 줄 어들어서 자신들이 차별받는다고 느낄 것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은 여전하지만, 통시적으로 남성의 기회가 좁아지고, 여성의 기회가 넓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성별로 달라진 상위계층 진입 기회의 통시적 변화는 상위계층 청년 남성의 이해를 전체 청년 남성으로 확대시킨 주요 기제이다. 중고교 시절에 평균적 학업성 취에서 여성에서 뒤지고,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으로 남성의 파이가 줄어든데 반해, 혼인시장을 통한 상위계층 진입 기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열려졌다. 여성의 상위계층 진입 경로는 넓어지고 남성은 좁아졌다. 이 때문에 청년 남성의 재분배 정책 선호는 계층에 따라 달라지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는 전체 남성에게, 특히 상속을 통한 계층 지위 유지가 불가능한 중간층 남성에게서 강하다.

 

미래 전망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보수화된 청년 남성이 성장하며 진보적으로 변화할 것인가? 회의적이다. 청년 시절에 형성된 세계관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태도가 조금씩 바뀌지만, 이러한 연령효과는 작다. 인구 전체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많은 경우 고연령층의 사망과 신규 세대의 유입으로 인한 인구의 구성 변화 때문이다. 사회학 연구에서 상당히 일관되게 보고한 바다. 한국에서도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보면, 10년전 30대의 투표성향이 현재 40대의 투표성향으로 재현된다. 특정 세대의 일관성이 변화보다크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보수화된 청년층이 보수화된 장년층으로 이어지고, 성별로 다른 정치적 견해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현재의 청년층보다는 장년층의 인구가 더 많다. 현재의 청년층이 장년층이 되고, 현재의 장년층이 노년층이 되었을 때, 정책 입안자와 투표자의 정책 선호 불일치가 갈등의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 경향 속에서 어떻게 진보 진영의 연대를 형성할 것인지, 그 아젠더는 무엇이 될 것인지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