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3-3. [논단] 진보적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

진보정책연구원 2025. 7. 24. 14:26

[논단] 진보적 조세정책 방향에 대한 의견

 

 김정엽 (윤종오 의원 보좌관)

 

“부자에게 세금을!” 진보정당의 지향을 국민에 알린 대표적 구호 중 하나다. 불평등과 기후위기 극복이 시대적 과제가 된 지금, 당시의 구호가 갖는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다만 그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세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진보당의 정체성과 원칙은 유지하되, 구체적인 조세정책은 이런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 지금 시대 진보당의 조세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나? 여기서는 조세의 주축을 이루는 주요 세목의 현황과 쟁점, 개편 방향을 살펴 보면서 조세 대안 논의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최고세율이 올랐는데도 재분배 기능은 약한 소득세

개인의 소득에 과세하는 소득세는 조세 체계의 중심을 이룬다. 감세나 증세를 둘러싼 논쟁의 상당 부분도 소득세를 대상으로 한다. 조세의 형평성과 재분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소득세의 누진도(상위집중도)는 명목상으로는 많이 높아졌다. 소득세 최고구간이 신설됐고, 최고세율도 45%(지방소득세 포함시 49.5%)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10억원으로 지나치게 높아,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각종 조세감면이 많아 실효세율도 그리 높지 않다. 이런 식으로 빠져나가는 구멍이 많다보니 소득세가 전체 세수 중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 우리나라 소득세의 누진도가 명목상으로는 높아졌지만, 재분배 기능은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득세의 재분배 기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최고세율 적용 구간 확대가 더 효과적이다. 우선은 세율 45% 적용 구간을 현재의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확대한다. 이와 함께 그 아래인 1.5~3억원 구간의 세율을 38%에서 40%로 올린다. 이렇게 소득세를 증세할 경우 5년간 총 22.7조원의 소득세수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 이런 개편이 실현된 뒤에는 최고세율 적용 구간을 더 낮출 수도 있다.

조세지출을 정비해 다른 과표구간의 실효세율을 높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내야 할 세금을 감면해주는 조세지출은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 세금을 적게 내는 저소득층에 돌아가는 몫은 거의 없다. 중상위층에 혜택이 집중되는 조세지출은 실효세율을 낮춰 세수를 줄이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축소하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 현재 상황에서는 조세감면 분야에서도 다른 야당과 차이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번 국회에서 야당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들은 대부분 조세지출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직접적 증세는 물론 조세지출을 줄이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인세 감세 혜택은 누구에게 귀속되나?

법인세의 명목 세율은 지방세를 포함해 26.4%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실효세율은 그렇지 않다. 과세소득 산정 기준이 나라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실효세율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이나 미국 등보다는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실효세율이 낮은 것은 주로 대기업에 혜택이 돌아가는 투자세액공제와 같은 제도 때문이다. 법인세율을 인상한 문재인 정부는 투자 관련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그 결과 법인세의 실효세율이 떨어졌다.

경제 활성화와 성장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법인세 감세 주장이 대세처럼 보인다. 법인세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의 투자가 일자리 확대나 국민 소득의 증대로 이어지는지도 회의적이다. 감세가 기업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감세론자의 정치적 신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인세의 성격이다. 법인의 소득은 주주들에게 귀속되며, 법인에 대한 감세는 대주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들 대주주는 우리 사회의 극소수 최상위층을 차지한다. 결국 법인세 감세는 법인뿐 아니라 극소수 최상위층에 대한 혜택을 의미한다.

우선은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인 법인세를 바로 잡아야 한다. 최소한 과표 2억원 이하 최저구간은 현재대로 유지하더라도 그 이상 구간은 감세 이전으로 환원해야 한다. 나아가 5천억원 초과 구간부터는 30% 수준의 최고세율을 적용해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자산불평등 해소에 필수적인 상속·증여세

상속·증여세는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몫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부의 대물림과 자산 양극화를 막는 데서 의미있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상속·증여세 감세는 결국 불로소득을 얼마나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법인세 감세에 이어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는 감세는 상속·증여세다. 윤석열 정부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와 함께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유산 취득세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지금은 ‘물려주는(피상속인) 자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데, 앞으로는 ‘물려받는(상속인) 자산’ 기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얼핏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속세와 소득세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특히 과표구간과 세율, 일괄공제액을 조정하지 않은 채 유산 취득세로 바꾸면 상속세 세수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다. ‘선진국이나 북유럽은 상속세가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자본이득에 대해 철저히 과세한다는 점은 말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몰두했다. 윤석열 정부의 속셈은 결국 상속세 무력화다.

당장은 윤석열 정부의 상속세 감세를 막아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진보당이 공약한 ‘상속상한제’를 구체적인 세제로 만들어야 한다. 상한을 적용하는 구간과 그 아래 구간의 세율 등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상속세가 자산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표적인 세목이지만, 여기로만 시야를 좁혀선 안 된다. 상속세는 소득세로 적절히 과세되지 못한 재산을 상속 과정에서 다시 과세하는 세금이다. 따라서 자산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상속세 뿐 아니라 소득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소득세가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노력과 병행해야 한다.

 

사회보험 재정, 국가 책임을 빼놓아선 안 된다

조세는 아니지만 조세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 사회보험료다. 사회보험은 ‘기여’, 즉 가입자의 보험료 납부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사회적 위험을 같이 대비하는 연대의 원리 역시 포함돼 있다. 실질적으로는 재정의 역할과 비슷하다.

사회보험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쟁점이 사회보험의 재정안정성이다. 실업, 저출생, 고령화 등으로 지출할 곳은 늘어가는 데 비해 보험료 수입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실제로도 건강보험 등의 재정수지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성숙해지면서 국민연금기금이 몇십년 뒤에는 소진돼 후세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란 비관적 전망도 많이 나온다.

수리적으로만 보면 해법은 간단하다.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면 된다. 지출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면 보험료 수입을 늘려야 한다. 문제는 보험료 수입을 누가 감당할 것이냐다. 가입자에게만 그 부담을 지워선 안 된다. 국가도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재정안정성이 문제가 된다면 가입자 뿐 아니라 국가도 기여해야 한다. 이미 건강보험도 한해 예상수입의 20%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하면 된다. 사회보험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은 국가가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해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는, 연기금에 GDP 대비 1%를 국고에서 지원하면 연기금이 사실상 영구적으로 유지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낮은 수준인데도 이렇다.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인상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국가가 사회보험의 단순한 운영자가 아니라 책임있는 주체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의 적극적 역할 없이 사회보험의 미래를 그릴 수는 없다.

 

‘보편증세’가 ‘할 말 하는 진보’인가?

‘사회연대 원리에 따라 저소득층도 세금 내자’, 고소득층 증세와 더불어 저소득층까지 세금을 내는 ‘보편증세’가 진보정당의 조세 대안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과세 기반 확대 자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마치 진보가 넘어야 할 ‘금기’나,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진보’로 치장할 필요는 없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점 이하 비율이 전체 납세인원의 40%에 가까운 현실 자체가 바람직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이유는 탈세나 지하경제 같은 것이 아니다. 세금을 내고 나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소득이 낮은 ‘근로빈곤층’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가 할 일은 ‘국민개세주의’나 ‘보편증세’란 명분으로 면세점 아래까지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아니다. 근로장려세제와 같은 조세지출이나 복지급여를 확대해 소득을 늘려줘야 한다. 그렇게 해서 면세점 위로 소득이 올라가면 그 때 소득세를 걷으면 된다.

한편 보편증세는 소득세보다는 사회보험 분야에서 점차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국민부담률’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의미있는 보편증세는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해 누구나 사회안전망에 망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사회보험이 적용되게 하고, 그에 따른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보편증세 경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