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1-3. [이슈와 논점 1] 영국 노동당 집권, 주목해야할 진보공약

진보정책연구원 2025. 7. 24. 12:48

[이슈와 논점 1] 영국 노동당 집권, 주목해야할 진보공약

 

신석진​1

 

우리가 영국노동당 총선공약을 주목하는 이유

 

#영국노동당은 어떤 당인가?

 

영국노동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했다. 2차대전 이후 석탄,전기,철도,철강을 국유화하고 의료와 교육 대개혁을 통해 영국을 복지국가의 길로 인도했다. 1990년대 이후 ‘경쟁력강화와 기업지원을 위해 정부,산업,기업,관리자,피고용인 모든 이해관계자가 동반자관계를 형성해야한다’고 주장​2하는 등 당을 ‘기업가-노동자 동맹정당’으로 탈바꿈시켰다. 1997년 집권 이후에도 신자유주의 전면화와 공기업 민영화의 대명사인 대처리즘을 극복하지 못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금융자본의 천문학적 이익을 제공하는데 협조하고 노동자들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 당 정책 변화 배경

 

 2015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급진좌파인 코빈(Corbyn)이 당 지휘권을 잡았다. 경선규칙 개정 기회를 활용한 덕이지만 당시 노동당원들 스스로도 이변이라고 평가한 일이다. 영국의 진보주의 일간지 [더 가디언]은 코빈이 당선될 확률이 100:1이라고 진단할 정도였다.​3 코빈은 2019년 총선 패배와 당내외 보수파들의 모략에 대표 자리를 내주고 탈당 수모까지 겪었다. 하지만 그가 재임 당시 만들어놓은 철도,에너지 산업 재국유화 및 노사교섭에 대한 정부차원의 강제촉진 등을 담은 노조법 개정안 등 급진적 정책들은 복지후퇴와 극우정치세력의 부상 등 우경화에 시달리는 많은 나라 정치인들과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줬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압승이라할 2024년 7월의 영국총선거 이후 총리로 부임한 스타머 정부로 정책의 상당 부분이 이전되었다.

 

상황변화를 강제한 힘은 정세변화였다. 100여년 동안 이어진 영국노동당의 정책을 보면 정세에 따라 크게 출렁거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18년에 ‘생산수단의 공유’라는 급진적 강령을 채택한 것은 그로부터 1년 전에 벌어진 러시아혁명으로부터 받은 자극 때문이고 이것을 폐기한 것은 1991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다. 1945년 애틀리 정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확대정책은 2차 세계대전 직후 넘쳐나는 상이용사와 전쟁과부 지원 그리고 산업재부흥 필요성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 영국정세는 기간산업 민영화와 값싼 노동에 의존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파산선고를 내리고 더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꾀하여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일부라도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 2024년 영국의 실상

 

미국신문 폴리티코가 소개한 영국의 실상을 간단히 요약해본다. 

 

‘생활비는 급등했는데 세금징수는 1950년대 이래 가장 높다. 평균주택가격은 281,000파운드(한화 약 5억원)로 10년 동안 거의 100,000파운드가 올랐다. 푸드뱅크 이용은 5년 동안 거의 두 배로 늘었고 영국민의 자랑인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영국에서만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가 760만 명으로, 10년 전보다 거의 3배가 늘었다. 영국의 치과 환자들은 펜치로 자신의 이를 뽑아야 했다.​4 현재 영국의 주요 장애 급여를 청구하는 340만 명 중 3분의 1 이상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 도로에 움푹 패인 곳이 있다. 교도소는 죄수들로 가득 찼다. 사회 복지 개혁은 오랫동안 약속되었지만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학의 5분의 2가 적자다. 폭우 시 하수구에서 쏟아져 나온 오물이 강으로 넘쳐난다. 23년 한해에만 바다를 건너온 불법이주민이 3만명에 달했다.’ ​5 

 

# 단일 선거구호 “CHANGE”

 

엄청난 국가적 실패를 경험한 영국국민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오직 변화를 요구했다. 보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나라가 무너진 것 같다’고 원성을 쏟아냈다.​6 영국노동당의 선거캠페인은 단 한가지 단어 ‘CHANGE’ 였다. 

 

이러한 상황이 총선에서의 노동당 압승과 노동당의 정책 변화를 강제하게 만든 배경이다. 켄 로치 영화 [나의 올드오크]에서도 방치되어 굶는 아이들로 자세히 묘사되기도 했지만, 아동의 12%를 포함하여 식량 빈곤을 겪고 있는 가구가 470만 명에 달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2022년 영국의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임대료를 못내 쫒겨나는 시민들, 불법이민자, 마약중독자의 급증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로 안으로부터 곪아서 터져버릴 지경이다.

 

# 선거 압승, 강력한 입법기반 확보

 

영국 노동당은 사회적 불만의 고조 속에서 650석 중 412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과반을 확보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승리인가 하면 집권당이었던 보수당은 불과 121석에 머물러 양당간 의석차이는 무려 3.4배다. 보수당 안에서 ‘선거아마겟돈’, ‘100년 만의 참패’라는 장탄식이 흘러나오는 이유다.​7 

 

반면 노동당은 다른 당 의석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170석이나 많은 압도적인 다수당의 위치에 섰다. 독자 정부를 구성하여 자신의 공약들을 차질 없이 이행할 수 있는 강력한 입법적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이런 점들이 2024년 7월 17일 의회에서 왕의 연설(king’s speech)로 발표된 영국노동당 정부의 입법정책안을 주목해야할 이유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이 정책들은 조만간 발의되고 시행될 것이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딜정책’ 은 아예 정부구성 뒤 90일 내 발의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날짜로 계산하면 2024년 10월 12일이다. 

 

영국 노동당의 새로운 정책들은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제출된 39개의 입법정책안 중 기간산업 국유화,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딜정책, 국가재정 혁신과 복지정책 등 한국에서 진보정치를 펼치는 사람들에게 정책적 의미가 크다고 판단되는 세가지 영역을 임의로 추려 그 내용을 해석한다. 분석에 활용한 자료 및 출처는 아래와 같다.

  1. The King’s Speech 2024 background briefing notes(영국정부) 
  2. Labour Party Manifesto 2024(영국노동당)
  3. New Deal for Working People(Labour Unions)
  4. legislation.gov.uk(영국법령정보)
  5. https://www.unison.org.uk(영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유니슨 홈페이지)
  6. the Guardian, BBC 등 다수 언론자료
  7. National Wealth Fund Taskforce Interim Sector Analysis(Green Finance Institute)    
 ※ 아래 그래프는 영국에서 상위 10%와 하위 50% 부의 분배가 지난 세기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여준다. 현재 영국에서는 가장 부유한 10%의 가구가 모든 부의 43%를 소유하고 있는 반면 가장 가난한 50%는 19%만 소유하고 있다.(영국 국가통계국 ONS, 2020) 이는 억만장자의 부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2차대전 이후~1970년대까지 차이가 좁혀지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의 소득분배 / 출처: ONS Chancel 및 Piketty(2021), 세계 불평등 보고서 2022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공해준 영국노동당의 진보정책

 

1) 기간산업 국유화

 

●여객 철도 서비스(공공 소유) 법안, 철도개혁법안

□민영철도회사의 계약기간이 만료 되거나 약속 미이행시 즉각적으로 공공소유로 전환
□ 영국 국영 철도(Great British Railways)를 설립하고, 민간 열차 운영사를 공공 소유로 전환하여 요금부담을 낮추고 철도를 개혁
 
● 공공 재생에너지 개발회사인 그레이트브리튼에너지(Great British Energy) 설립 법안

□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Great British Energy)를 설립하는 법안.
□ 이 회사는 영국 전역에서 해상풍력발전소 등 청정 전력 프로젝트를 소유, 관리 및 운영할 새로운 공공 소유 에너지 생산 회사.
□ 영국의 에너지 자립을 이루고, 영국의 납세자, 청구서 납부자 및 지역사회가 깨끗하고 안전한 자체 생산 에너지의 혜택을 누리고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
□ 국가의 에너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고, 에너지 주권을 회복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가계지출을 줄이고 기후 변화에 대처
 

● 왕실소유자산운영사(The Crown Estate) 현대화 법

□ 왕실의 자산운영사인 The Crown Estate의 180억 파운드에 달하는 자금 중 83억파운드(우리돈 약 15조원)를 GBE 설립자본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 육지에서 12해리 떨어진 영국의 대부분 해저의 소유자인 The Crown Estate가 국가적 이익을 위해 존재함을 확인하고, 주요기능 중 탈탄소화, 에너지 안보 및 지속 가능한 미래를 제공하기 위한 천연자원 관리를 포함시킴
 

● 버스 시스템 개혁

□ 새로운 공공 소유 버스 운영자의 설립 제한을 해제
□ 지방자치단체장의 해당 지역 노선버스 통제력 부여
□ 디젤차량, 전기차로 전환
 

2)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딜정책 (24.10.12까지 입법 완료 공언)

 

● 반파업법(최소서비스수준유지) 폐지 법률안

□ 노동자들이 보건, 교육 서비스, 소방 및 구조, 국경 안보, 운송 및 핵 폐기 분야에서 파업 중에 최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제하기 위해 보수당 정부가 주도하여 2023년 7월 제정된 파업법 관련조항을 전면 폐기하는 내용.
□ 기존 법률안은 예컨대 철도의 경우 파업시 40% 최소서비스를 유지해야할 의무부과하는 내용. 
□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71조 필수공익사업 및 공익사업 파업제한규정과 유사함
 

● 모든 노동자에게 생활임금 보장

□ 모든 성인근로자에게 중위임금, 경제상황, 생계비를 반영한 최저임금 결정
□ 최저임금 차별 제거 및 단일집행기관을 통해 미준수 업주 처벌
 

● 여러사업장 노동자 이동시간 수당 지급 

□ 여러 사업장이 있는 업종에서 이동시간에 대한 최저임금을 반영하도록 법률로 강제
□ 한국 상황을 예로들면 만약 재가요양보호사가 3시간 씩 각각 하루 두곳의 집을 방문한 경우 이동시간에 대해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내용.
 

● 공공부문 민간위탁 규정 강화

□ 수십년간 지속된 민영화와 아웃소싱의 결과로 많은 공공서비스가 민간 기업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현실
□ 민간위탁 선정과정에서 노동권, 노동조합에 대한 대우, 단체교섭과 공정임금조항 마련 여부, 효과적 평등정책 마련여부, 높은 산업안전기준 마련 여부에 따라 계약해야할 의무부과
□ 공공재정 사용 시 지역일자리 확대와 연계
 

● 단체교섭지원

□ 수십년간 이어져온 단체교섭 감소추세를 되돌리겠다는 계획(1976년 86% 단체교섭 적용비율 --> 2024년 20%로 감소)
□ 우파정부에 의해 좌초된 뉴질랜드 공정임금법을 참고하여 성인사회복지분야(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에서 공정임금협정 체결을 정부가 지원하고 필요한 경우 최소고용조건을 당국이 결정하도록 함.
□ 성인 사회복지분야 공정임금협정 체결과정을 분석 평가하여 타 업종으로 확대함
□ 협약은 급여, 연금, 근무시간과 휴일, 교육, 업무조직, 다양성 및 포용성, 산업안전과 건강, AI 등 신기술 도입 등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고 해당 부문의 모든 사업주에게 구속력을 행사함
 

● 모든 노동자에게 업무 첫날 권리부여

□ 모든 노동자에게 업무 첫날부터 부당해고, 병가, 육아휴직과 같은 기본적 권리에 대한 보호 적용함.
 

● 노무제공자는 노동자, 진정한 자영업자와 구분

□ 위장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 등 노무제공자를 근로자 지위로 모두 전환하고 고용지위를 근로자와 진정한 자영업자로 단순하게 구분함
□ 즉 업종 임금 또는 계약 유형에 관계 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한 기본권리와 보호가 제공됨. 병가,휴일수당,육아휴직,부당해고에 대한 보호 등
□ 위장자영업(직원이 아니라 사업자라고 거짓말하여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릴 권리를 빼앗는 행위 등) 집중단속
 

● 0시간계약(zero hour contract) 폐지

□  근로시간을 사업주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0시간 계약을 착취로 규정하여 법으로 금지함
□ 12주 이상 계속 근무한 노동자에게 정규직 계약을 맺을 권리 보장
 

● 가족돌봄권리 강화 및 보호

□ 돌봄의 책임이 있는 가족돌봄자에게 가족 및 간병인 유급휴가, 유연근무제, 가족긴급상황 대응 권리 강화 등 더 큰 보호 제공
□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역량 강화
 

● 완경기(폐경기) 여성노동자 지원방안 마련

□ 250명 이상의 직원을 둔 대규모 사업장 고용주에게 완경기 여성 지원 방법을 담아 지침화
□ 지침의 내용은 완경기 여성의 유니폼 및 온도, 유연 근무, 완경 관련 휴가 및 휴직 기록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조치를 담음
 

● 산모 보호

□ 직장에 복귀한 산모의 6개월 이전 해고는 불법으로 규정하여 산모에 대한 보호를 강화
 

● 노동조합법을 포괄적으로 업데이트

□ 노동조합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제한 제거.
□ 노동조합 인정 절차와 법적 인정기준 간소화
□ 플랫폼 및 원격, 재택 근무 등 긱 경제 부문의 노동조합 조직화 권리 보장을 위해 규정 현대화
□ 부당해고로부터 노동조합 대표 보호장치 마련. 협박, 괴롭힘, 위협, 블랙리스트로부터 노동조합 간부를 보호
 

3) 국가재정 혁신과 복지정책

 

● 국부펀드법안

□ 성장과 친환경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부펀드(NWF)에 73억 파운드 공공자본투자
□ 탄소중립 부문에 NWF가 지원할 수 있는 부문으로 5가지 부문을 선정. ①친환경 철강 ②친환경 수소 ③산업 탈탄소화 ④기가팩토리(전기차 및 그리드 규모 배터리 생산용) ⑤항만 국부펀드 태스크포스(태스크포스) 구축
□ 영국인프라은행(UK infrastructure Bank)과 영국비즈니스은행(the British Business Bank)를 국부펀드 산하에 둠.
□ 정부 산업전략과 성장, 청정에너지 강국을 위한 미션 수행
□ 이 법안을 영구적인 법적 기반위에 올려놓을 계획
 

● 주택공급개혁 및 인프라 법안

□ 주택과 인프라의 건설 방식에 대한 민주적 참여를 가능하게 함
 

● 아동복지법안

□ 모든 초등학교에 무상조식(아침식사) 제공
□ 세부 법안은 제출되지 않았으나 수요조사를 통해 아침식사제공이 필요한 모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보편적인 무상조식제공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설계되었음
 

● 성별 장애별 인종별 임금격차 해소

□ 기존 고용주의 성별 임금 격차 보고 및 임금 비율 보고에 하청(아웃소싱) 노동자도 포함시킴. 이는 동일가치노동 동일노동 원칙 이행을 회피하기 위해 아웃소싱을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함
□ 25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기업에는 성별 임금 격차 보고에 더해 인종별 임금 격차 공표 의무화


유의해야할 점과 정책적 시사점


영국사회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모든 사회갈등이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표출되고 있다. 변화를 위한 과감한 도전은 새로운 영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영국은 이제 변하지 않으면 세계 곳곳의 식민지를 잃고 수십년 동안 추락해온 지난 반세기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너져 버릴 위험 앞에 있다.  하지만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변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대체로 진보적 변화 앞에는 다양한 난관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노동당이 제기한 진보적 입법정책들이 실제 이행되지 못하거나 지연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실제로 1997년 하원의석 659석 중 418석을 획득하고 강력한 입법기반을 갖춘 상태에서 총리로 부임하게된 토니블레어의 노동공약인 최저임금법 제정안은, 그로부터 2년 여 뒤인 1999년에야 시행되었다. 당연하게도 2년동안 제정안을 두고 각계에서 진이 빠지도록 극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졌다. 재국유화 또는 노동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반대에 부딛쳐 좌초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것은 2024년 7월 총선에 버금가는 압도적 승리를 경험한 1997년의 영국 노동당은 첫번째 임기 동안 공약이행률이 무려  80%에 달했다는 사실이다.​8 논란이 되었던 최저임금법도 결국 도입하여 현재까지 시행중이다. 노동당의 공약이행을 위한 입법기반이 더 없이 강화되었다는 우리의 판단은 역사적으로 이러한 경험에서 길어올린 것이다.


공약 중 왕실자산법(The Crown Estate act)​9 개정안의 경우 겉으로 내세운 공공주도 녹색성장이라는 명분과 달리 실제로는 민간 대기업에 공공자산(왕실자산)을 퍼주고 민간자본을 모아주기 위해 그럴듯하게 포장한 ‘그린워싱’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주장을 펼치는 정치세력은 영국의 원외정당인 공산당 계열이지만 노동당 내 급진좌파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거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일이니 곳곳에 때가 묻을 수 있고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은 당연하다. 하지만 큰 방향을 보면 녹색성장을 위해 공공(왕실)자산을 동원하겠다는 발상 자체는 흥미롭다. 물론 일관된 방향 유지, 감시와 감독은 그나라 국민들의 몫이다. 


제시된 입법정책이 더 급진적 변화를 열망하는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듯 하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보건서비스(NHS)개혁을 통해 만연한 의료서비스 사유화와 공공서비스 질 악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코빈의 정책은 이번에 빠졌다. 대신 공공소유를 선언적으로 강조할 뿐이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는 코빈의 조세개혁안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심각한 사회주택 문제를 포함한 주택정책은 임차인 권리 보장 수준(우리의 임대차보호법)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우리가 영국노동당의 공약을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새삼스럽게 먼나라 공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변화발전에 도움이 될만한 아이디어는 없는지 상상해보기 위해서다. 한국은 영국과 달리 민주노총의 총파업 저항 등에 힘입어 민영화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예컨대 전기사업 중 지역재생에너지는 민간자본에 의해 누더기사업이 된지 오래고 공공복지의 상당한 영역이 민간위탁사업으로 변질되어 영국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구사회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국유화 또는 재공영화 주장은 좋게 말해줘도 용도 폐기되어 철 지난 케인지언, 나쁘게 말하면 꿈에서 덜 깬 맑스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아야했다. 하지만 유럽 각지 심지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민영화된 공공부문사업에 대한 재공영화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민영화의 본고장인 영국의 집권당이  국가적 과제로 재국유화를 추진하는 것은 시대 추세의 또 다른 변화로서 매우 의미있게 봐야한다. 


투기자본의 공세에 너덜너덜해진 노동복지정책에 맞서 교섭력을 확대하고 노동자들에게 역량을 키울 제도적 기초를 만들어주기 위한 노력들로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뉴딜정책’은 모든 조항을 통째로 받아들여도 될만큼 한국적 현실과 맞닿은 부분이 많다. 이와 관련해 별도 조사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모든 초등학생 아침조식제공은 고무적이다. 2019년 프랑스에서 먼저 도입한 정책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10 한국의 경우 ‘교육복지’의 영역으로서 취약계층 또는 위기가정 아이들에게 지자체가 제공하는 급식카드 또는 기부단체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아침급식 등으로 전국에서 약 28만 여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11 하지만 결식아동 낙인효과로 인해 신청이 저조하거나 부작용이 작지 않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인 교육복지사의 무임금 시간외 노동으로 처리되는 현실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초등학생 결식아동수는 2010년 4.8%대​12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주5일 이상 아침식사를 거르는 아이들이 30~40%대에 이른다.​13 경제적 문제라기 보다는 챙겨줄 이가 없기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대학생까지 시야를 넓힌다면 규모가 상당할 것이다. 도입 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수 있다.  


입법정책이 발표된지 일주일도 안되어 이 글을 썼다. 세부적인 법률안도 나오지 않은 조건에서 서투른 진단과 오역이 있을 수 있다. 성급한 분석글에서 부족한 점은 전문연구자들의 진지한 탐구로 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진보정책연구원 원장

​2 블레어 혁명 / 피터 만델슨

​3 Labour leadership: Jeremy Corbyn elected with huge mandate/ the Guardian 2015. 9.

​4 Woman who pulled out 12 teeth with pliers says government failing on NHS dentistry

 https://www.itv.com/news/calendar/2024-02-07/woman-unable-to-get-dentist-pulls-out-12-teeth-with-pliers

​5 https://www.politico.eu/article/britain-uk-election-keir-starmer-labour-party-conservative-party-british-politics-voter-disillusionment/

​6 https://www.theguardian.com/commentisfree/2023/nov/22/britain-money-bank-bailouts-state-failure

​7영국 총선서 노동당 승리...향후 예상되는 상황은?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4ngpw4yv27o

​8 http://news.bbc.co.uk/2/hi/uk_news/politics/1961522.stm

​9 영국 군주가 단독 법인 으로 소유한 영국 의 토지와 지분의 모음 으로 , 정부 재산도 아니고 군주의 사적 재산의 일부도 아닌 "군주의 공공 재산" /

​10 프랑스는 2019년부터 부모와 학생에게 학습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양질의 아침식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려는 목적으로『 무료 조식 제공 정책』을 추진해왔음 

​11 e-나라지표 아동급식지원 현황

​12 교육과학부(2010)

​13 질병관리청(2023), 청소년건강행태조사 ‘주5일 이상 아침식사 결식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