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정세특집3] 광장의 문을 연 2030 여성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위해!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정의기억연대 이사장)
12.3 ‘내란’은 아직 진압되지 않았다. 용감한 시민들의 저항과 기민한 국회 대응으로 자칫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봉건적 독재체제로 회귀할 뻔했던 절체절명의 순간은 넘겼지만 ‘내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수괴가 여전히 진지를 구축하고 농성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유지만 공범들과 광범위한 동조자들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주류세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수괴와 내란과 외환을 공모했거나 정당화하고, 수괴를 직·간접 비호하거나, 제2의 내란을 부추기고 있다. 내란과 외환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아 그 성격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입증도 미완이다. 한편으로 그들에 대항하고 있는 집단은 광장을 계속 열고 있고 다양한 주체위치들도 유동적인 상황이며 이들이 꿈꾸는 세상으로 변화할 가능성 또한 불확실하다.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발포와 해제 이후 여의도에서부터 진행된 광장정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태라 2017년 ‘촛불광장’과 현재 광장 간 차이는 물론, 광장의 위치와 상황에 따른 차이도 규명되지 않았다. 성실한 관찰과 심도있는 분석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2030 여성들이 광장에 나왔는가’라는 질문에 아직 섣부르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내란/내전에 대항해 ‘2030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광장에 나오는 ‘현실’에 대한 얄팍한 인상비평에 불과함을 미리 양해 구한다.
내란/내전의 성격
먼저 내란의 성격부터 살펴보자. 간단하게 말하자면 ‘12.3 사태’는 국민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누며 계엄령(martial law)을 통해 정치체제를 민주공화정에서 독재체제로 돌리려 한 친위쿠데타이다. 한편으로 윤석열이 자인했듯, 억압적 통치 권력에 저항해 온 시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인식함으로써 촉발된 것으로, 지금도(1월 12일 현재) 자신의 비호세력들을 동원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하며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내전(civil war)의 속성을 지닌다. 통상 ‘내전’은 ‘외부와의 전쟁인 국가 간 전쟁에 대비되는 내부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루 어지는 또 다른 형태의 내전은 정치와의 연관성 속에서 발생하는데 “정치가 극악한 폭력의 사용을 완벽하게 수용”해 법을 수단으로 전개하는 방식이다(다르도 외, 2024: 11p).
다르도 외(2024)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두 가지 양상의 내전을 설명한다. 하나는 칠레다. 2019년 10월 18일, ‘10월의 각성’이라 명명된 인민혁명이 시작되고 지하철 운임 인상에 항의하며 폭동이 발생하자 대통령은 ‘전쟁 상태’를 선포한다. 그는 “강력하고 무자비한 적과 전쟁 중”이라고 주장하며 군대를 동원해 질서유지에 나선다. 도심에는 장갑차가 등장했고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끔찍한 국가폭력이 자행 되었다. 이때 주목할 부분은 ‘권위주의적 내부 식민화’의 희생자들인 마푸체족과 가부장적 가족주의의 희생자 여성들의 페미니스트 구호가 섞여 나왔으며 사회의 모든 다양성이 공공 공간에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이들을 상대로 칠레 대통령은 ‘내부의 적’이라는 형상을 구축하며 ‘내전’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집단적 저항의 힘으로 내전을 막아내고 2020년 10월 국민투표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두 번째 사례는 미국이다. 주지하듯 트럼프는 미국 내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대립을 자신의 이해에 따라 재창조하면서 ‘자유’와 ‘사회주의’ 대립이라는 가치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유와 등치시키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평등’에 대항해 벌이는 내전의 상징으로 만들고, 지지자들을 집결시킴으로써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11-14p). 저자들은 계급적 원망을 자양분 삼아 부상한 이 극단적 대결은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전략적 면모이기도 하지만 소위 ‘좌파’의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민중을 대변하지도, 공공서비스를 보호 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현실주의’를 내세우며 민중계급을 더 빈곤하고 취약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15p).
윤석열 세력이 일으킨 ‘내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 양상을 포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적, 지정학적 특수성과 관련된 또 다른 측면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가 호명한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에는 사회 정의와 평등을 외치는 ‘전형적’ 진보주의자들뿐 아니라, 역사 정의와 평화를 추구해 온 식민지·냉전분단체제 하 국가폭력의 희생자/대항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내란/내전이 ‘지금’ ‘당장’ 손쉽게 해석되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다. 내란에 대한 성격 규명과 무관하게 집회의 공간적 성격을 ‘현 단계’에서 거칠게나마 진단해 보자.
광장이라는 현상
‘12.3 내란 사태’ 이후 매일 ‘윤석열 탄핵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렸다. 수많은 시민들이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들고 기발한 문구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광장을 열었다. 특히 ‘남태령대첩’1), ‘한강진대첩’2), 광화문 집회 등을 넘나들며 이어지고 있는 ‘열성적’ ‘2030 여성’들의 집회 참여는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12월 7일(토), 여의도 집회 참가자를 성별·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대 여성 비율이 18.9%로 가장 높았으며 30대 여성(10.8%)까지 합하면 전체 참여자 10명 중 3명꼴로 ‘2030 여성’이었다(경향신문, 2024년 12월 5일)3). ‘광장의 주역’이라는 언론의 호들갑이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 주목할 사실은 자유발언대에 오른 젊은 세대 상당수가 ‘페미니스트’ ‘퀴어’임을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윤석열 정부의 반인권적, 반여성적, 반민주적 정책과 반동적 사회 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 집단 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광장에 나왔을까.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동력은 또한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장시간에 걸친 경험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필자가 집회에 참가하면서 현장에서 관찰하고 듣고 확인했던 내용과 언론 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몇 가지 차원에서 스케치하고자 한다.
동기와 동력, 변화의 과정
첫째,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깊게 뿌리내린 여성혐오와 누적적 성/차별, 이에 기인한 일상 속 폭력의 경험으로 부정의(不正義)에 대한 감각이 체현된 사람들에게 비상계엄령은 부정의의 감각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퀴어라는 낙인 등으로 ‘이미’ 일상이 무너져 있었던 사람들에게(“우리는 이미 비상계엄령 상태였다.”) 계엄령 이후 ‘더 처참해질 뻔했던 일상’은 보다 구체적인 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성/폭력의 위협으로 불안했던 사람들에게는 무의식의 영역 안으로 밀쳐 두었던 기억까지 의식의 표면 위로 끌어올린 계기도 되었을 것이다. 일상이 ‘완전히’ 무너짐으로써 애초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비상계엄령이란 단추는 여성들의 민감한 부정의의 감각을 활성화시키며 집단적 저항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전기(轉機)가 되었다.
둘째, 불안하고 고립된 개인들이 느끼는 안전함과 연대감, 행복감은 지속적 집회 참가의 주요 동력이 된다.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제가 맞물린 사회에서 경쟁과 배제, 차별과 폭력의 경험들은 개개인을 무기력하고 고립된 존재로 조각내왔다. 집회 자유 발언에 나선 2030 여성들의 이야기들 중 많이 등장한 키워드가 우울함, 고립감, 무력감, 불안과 공포인 이유다. 이들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기력하고”, “무섭고”, “우울”하지만 광장에 나오니 보다 “안전”하고, “자신감”이 생기고 “연결”되어 있음에 “행복하다”고 한다. 감추고 있어야만 했던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내도 배척이 아니라 환대를 받고, 유사한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나 즐겁게 연대하는 경험은 자존감과 효능감 회복에도 큰 기여를 했으리라.
셋째, 또 다른 감정적 동기와 동력은 죄책감과 부채감, 책임감이다. 상당수의 참가자들은 ‘처음 비상계엄령이 발포된 날 국회에 나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에 애쓰는데 못 나가서 죄송한 마음’, ‘일상을 접고 전국에서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일상을 지내도 되나’하는 마음, ‘지금까지 나의 일상이 과거의 많은 사람들에게 진 빚’이라는 생각, ‘앞으로 살아갈 후배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책임감 등을 토로한다. 이러한 감정적 동기는 집회 참가 이외에도 자원봉사, 물품기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민주노총, 수도원 등 집회 관련 단체 금전적 기부(기부계좌 공유) 및 회원 가입, 소셜미디어를 통한 각종 소식과 뉴스 공유 및 반대측 집회(탄핵반대집회) 비판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넷째, 두 가지 차원에서 체현된 운동성이다. 상당수의 2030 여성들은 다양한 팬클럽 활동을 통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지원과 헌신의 경험이 있는 세대이자, 2016년 이후 재부상한 페미니즘 운동의 당사자/연루자4)들이다. 물론 광장을 열었던 대한민국 여성들의 저항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최근에만 해도 ‘2016 강남역 살인사건’5)과 #미투운동, ‘촛불혁명’을 겪으면서 여성들이 익힌 운동감각(운동근육)과 연대감은 #스쿨미투, #탈코르셋, #불법촬영· 편파수사 반대 시위(소위, 혜화역 시위), #반성착취, #낙태죄폐지, #4B(비연애, 비섹스, 비혼인, 비출산),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시위6) 등으로 이어지는 동력을 제공 한 바 있다. 엄청난 물량의 페미니즘 도서 출간과 높은 판매율, 페미니즘 수업과 강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의 확산 또한 이러한 배경과 연관된다. 특히 2018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 개설된 <불편한 용기>라는 카페(cafe.daum.net/Hongdaenam)는 1년 동안 약 30만 명의 여성들이 참여한 6차례 시위를7) 조직·개최하면서 불법 촬영의 심각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박영민·이나영, 2019). 이와 같은 여성들의 집합적 운동은 2020년 이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깐 주춤한 것처럼 보였지만 최근 ‘동덕여대 사건’이나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저항세력을 형성하며 운동성을 ‘재가동’시키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성주도형’ 광장은 그 동안 축적된 비/가시적 여성 대항 동력들이 이번 비상계엄령 사태로 한 지점에 모이면서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과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요한 변화는 정체성과 세계관의 확장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부정의한 현실에서 개별적 문제와 외롭게 싸우고 있던 개인들이 광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차이들을 횡단하며 연대를 확장하는 방식과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집회 현장은 성별과 연령, 지역 등 다양한 차이를 가로 질러 상호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는 소녀시대의 <다만세(다시만난 세계)>를 배우고 또 다른 이들은 <광야에서>를 배운다. 누군가는 “선조들이 피로 쓴 역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투쟁”을 외치고, 다른 이들은 비장함이 아니라 발랄함이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주요한 자원임을 깨닫는다. 이들은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성소수자, 퀴어, 이성애자, 얼라이, 트랜스 페미니스트, 비수술트랜스젠더, 집단따돌림 생존자, 육군현역 제대 시민, 오타쿠, 뮤지컬 팬클럽, 아이돌그룹 팬, 아이 어머니, 두 아이 아빠, □□동네 아저씨,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온 70대, 윤석열 찍어 미안한 20대 남성, 특전사 출신 택배노동자, 대구의 딸,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딸, 90년대 운동권, 제빵노동자,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이주민 등 당당하게 다층 적/다면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통해 어떤 정체성도 자명하거나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는 사실도 배운다. 불평등한 구조들이 교차하여 또 다른 형태의 편견과 차 별이 창출된다는 사실을, ‘교차성’이라는 이론이 아니라 광장에서 만난 다양한 형태의 주변화된 존재와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하기도 한다. 뜻밖의 커밍아웃이 당황함보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의 무지를 깨닫게 하며 귀 기울이게 한다. 이제 시민들은 그동안의 ‘색안경을 던져 버리고’ “한걸음 더 내디뎌” 마침내 “혐오를 넘어”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오라고 권하고 있다. ‘남태령 대첩’은 그 과정의 분수령이었다. 광화문 집회를 마친 후 남태령 ‘농민’ 집회에 대거 합류한 여성들은 전태일의료센터 후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 참여 및 후원 등 전통적인 개념의 집단정체성이나 조직, 의제와 무관하게 연대를 확산 하고 있다.
나가며
희망적 진단에도 불구하고 경계할 점들은 무수하다. 서두에서 지적했듯, 이 내란/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정의구현’이 지체될수록 극우집단의 결집 또한 강화되고 있다. 장기전이 되면서 내적 분화/분열의 조짐도 보인다. 집단 간 긴장과 갈등 또한 감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참가자들의 경험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거나 찬양해 서도 안 되거니와 동질화해서도 안 된다. 2017년 ‘촛불혁명’이 ‘혁명’하지 못한 것 들은 여전히 산재하며, 소위 진보세력이 ‘반동의 역풍’을 막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극우세력 확산에 적극 참여한 후과는 가장 강력한 사회 분열의 요소가 되고 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민주공화정 복원의 긴 여정 앞에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화해 불 가능한 두 전통이자 기본 원리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간 협상의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로선 답안지를 채우기 어려운 상황이라, 이 사태가 일어나기 한참 전인 2022년 필자가 쓴 글의 마지막 부분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반동의 역풍’은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적 요소로 성차별의 현실이 여전히 인식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탈각되지 않은 식민지 지배체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 봉건적 남성권력 카르텔의 권위주의적 착종에 기인한다. 이는 반(反)페미니즘 정서의 확산뿐 아니라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와 ‘갈등’을 증폭시키는 심층적 원인이다 … (중략) … 집단적 증오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할 책임, 희망, 사랑, 협력을 위해 노력할 책임, 권력과 위계질서, 이에 기인한 차별구조를 변화시킬 적극적 정의(定義) 추구의 책임이 우리 모두에 있음을 다시 상기하며, ‘젊은’ 여성들이 새롭게 만들 세상을 함께 꿈꾸고 지지하자”(이나영, 2022: 142-143p).
그것만이 빛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좁은 회랑인 것만 같다.
각주
1) 2024년 12월 17일부터 시작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대행진이 21일 경찰의 차벽으로 서울 남태령역에서 멈췄다. 이러한 사실을 소셜 미디어 등을 보고 몰려든 3만여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이 “차 빼라” 등을 연호하며 혹한에 트랙터 곁을 지켰고, 무박 2일(약 29시간)의 대치 끝에 경찰이 길을 열었다. 전봉준투쟁단과 시민들은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한성을 탈환하려 했던 전봉준의 꿈이 130년 만에 이뤄졌다며 이날 농성을 ‘남태령 대첩’이라 칭했다.
2) 2025년 1월 3일부터 6일까지 윤석열의 체포를 촉구하는 3박 4일 집회와 농성이 윤석열 관저 근처에서 진행되었다. 애초에 민주노총의 1박 2일 농성 기획으로 시작되었으나 체포가 미뤄지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세하고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 측이 결합하면서 3박 4일 농성이 진행되었다. 해당 기간 동안 폭설과 비가 내리는 악천후가 지속되어 참가자들이 보온용 은박지를 둘러싸고 밤을 새는 모습이 ‘키세스 초콜릿’ 같다고 해 ‘키세스 시위대’, ‘키세스 전사’ 등의 별명이 붙었다.
3) 경향신문, 2025. 12. 5. “‘2030 여성’의 힘.”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51815001
4) 이들의 상세한 세대적 특징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2022)을 참고할 것.
5) 20대 여성이 강남역 부근 건물의 남녀공용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휘두른 칼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자, 여성들은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에 기반한 여성살인,’ ‘페미사이드’라 명명하기 시작했다. 사건 직후부터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 메시지를 통해 “강남역 10번 출구, 국화꽃 한 송이와 쪽지 한 장”, “살女 주세요, 살아 男았다” 등 몇 가지 문구가 급격히 번지기 시작했고, 강남역 지하철 10번 출구는 꽃과 인형들, 각종 추모 물품들, 그리고 벽을 온통 뒤덮은 수많은 포스트잇들로 장관을 이루었다. 이후 새롭게 각성한 ‘젊은’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며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을 주도하기 시작했다(이나영, 2019).
6) 2018년 12월, 승리가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클럽 ‘버닝썬’에서 성추행을 막으려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남성의 글이 온라인 내에서 화제가 된 이후, 해당 사건은 ‘버닝썬’ 내의 마약, 약물 유통, 약물 강간, 집단 강간, 승리의 ‘성접대’ 의혹 등으로 확대되었다. ‘클럽과 유명 연예인의 몰카’라는 가십거리나 개인의 일탈적 사건이 아니라, 남성중심적 강간문화와 이를 지탱하는 ‘남성(약물)카르텔’이라는 구조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주장은 해시태그 “#남성약물카르텔” 운동과 2019년 3월 2일 개최된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시위”로 이어졌다.
7) 5월 19일 1차 시위를 시작으로 6월 9일 2차, 7월 7일 3차, 8월 4일 4차, 10월 6일 5차, 12월 22일 6차 시위를 개최했다. 관련해서는 박영민·이나영(2019) 참고할 것.
참고문헌
•다르도, 피에르, 크리스티앙 라발, 피에르 소베트르, 오 게강 저, 정기현·장석준 역. 2024. 『내전, 대중혐오, 법치: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서울: 원더박스.
•무페, 샹탈 저, 이승원 역. 2019.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서울: 문학세계사.
•박영민·이나영. 2019. “‘새로운’ 페미니스트 운동의 등장? <불편한 용기> 참여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시민과사회』 34, 135-191쪽.
•이나영. 2016. “여성혐오와 젠더차별, 페미니즘: ‘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문화와사회』 22권, 147-186.
• -----. 2022. “한국 여성운동의 ‘새로운 물결’과 ‘혐오’의 백래시: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가?” 『문화다양성과 아시아, 그리고 접점의 현상과 갈등』. 서울: 글로벌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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