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사] 발호하는 극우 파시즘을 극복하려면
2025년 1월19일 새벽,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도들의 행위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국민 저항권’에서 찾았다. 저항권이라니. 1789년 프랑스혁명 승리 후 <인간 및 시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할 때 명시한 저항권(droit de résistance)은, 국민이 정부가 부당한 억압을 가할 때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그 정신이 녹아있다. 그런데 극우 사이비 개신교 집단의 우두머리인 전광훈목사 등이 내란옹호 폭동을 일으킨 명분으로 ‘저항권’을 들먹였다. 서부지법에 난입한 폭 도들은 ‘헌법 위에 저항권이야, 전쟁이다~’라고 소리치며 법원 유리창을 깨고 방화를 시도하였고, 닥치는대로 집기를 부수고 일부는 쇠파이프를 들고 법원청사 안을 이리저리 다니며 담당판사를 색출하러 다녔다.
국민의 기본권과 민주주의가 억압될 때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되는 권리인 ‘저항권’을 윤석열의 친위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는 폭동의 명분으로 둔갑시킨 일은 가증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가 오늘의 한국 또는 전광훈 집단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독창적’이지 않으며 당연히 ‘최신작’도 아니다. 과거 나치독일 의 히틀러는 자신의 군사반란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해 ‘독일민족의 자기방어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웠고,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은 ‘혁명투쟁’이라고 묘사했으며, 스페인의 프랑코는 ‘애국적 반란’이자 ‘국민저항’이라고 떠들었다.
그 폭도들 중에 2030 청년들이 유독 많은 것도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나찌의 유겐트는 10대 20대 남성이 주축이었다. 1934년 프랑스 민주주의를 뒤엎으려한 폭동(의사당 점거) 주범인 청년애국단도 주로 20대 남성들이었다.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 폭동 당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을 공격하는 데 참여했던 폭도들도 대부분 20~40대 남성이었고 그중 프라우드보이즈라는 백인인종주의 단체도 절반 가까이 20대 남성이었다. 해방직후 이승만의 사병이자 정치깡패로서 민간인학살을 주도한 서북청년단도 2030 남성들이었다. 여러 나라 역사적 사례를 되짚어보면 젊은 남성의 끓어오르는 신체 에너지를 집단광기로 바꾸는 외부적 선동이 원인이라고 해석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정확하게는 무지성에 기반한 오도된 확신, 숭배의 대상인 악질적인 독재자의 존재, 그리고 그의 신봉자들을 혐오와 증오로 무장시키는 선동가, 이 세가지 요소를 자양분으로 한 광란극에 동원된 청년군중이다.
공교롭게도 이 집단적 광기가 분출되는 똑같은 시간 즉 2025년 1월19일 오후 워싱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취임식을 하루 앞두고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승리집회를 열고 “우리가 이겼다”는 연설을 하고 있었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의 열성지지자들의 광적인 환호 속에서 트럼프는 “우리나라를 되찾을 것”이라고 외쳤다. 외부의 ‘침공’과 ‘반역자’들로부터 자신들이 나라를 구했다는 서사다. 2021년 1월 6일 미 국회의사당 폭동사태 피고인을 “1.6사태 인질”이 라고 말하며 대대적 사면을 공언했다. 서부지법 폭동과 워싱턴 승리 집회는 같은 날 같은 시간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벌어진 일이다. 한쪽은 이겼고 한쪽은 뒤엎으려 할 뿐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와 사실왜곡, 위헌위법적 발상과 파시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것은 똑같다. 체포 구금된 서부지법의 폭도들은 마가(MAGA)처럼 자신들도 곧 구원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 나아가 강한 신앙이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오랜 동맹국가인 두 나라, 한국과 미국은 급기야 정치적 내전상태에 이른 것 마저 동조화됐다. 국민은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적과 아로 나뉘었다. 윤석열과 극우세력은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민의힘과 내란잔당들은 그 행위를 동조하며 힘을 키운다. 내란은 윤석열이라는 괴이한 인간에 의해 발생한 우연적 사건이지만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의 집결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서부지법 폭동도 일회적 사건이 아니다. 스스로를 ‘백골단’이라고 명명한 반공청년단은 이 폭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심지어 ‘5.18정신’까지 언급했다. 무장투쟁의 필요성을 역설하기 위해서 끌어다 붙인 억지다. 이들은 탄핵이 인용된다면 제2의 건국전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헌법재판소 폭동을 모의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경 찰 방어를 뚫을 구체적 방법과 수단도 게재됐다. 한 고교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 의 제자인 고교 남학생들이 “윤대통령이 이겨서 돌아오면 서부지법 난동은 민주화 운동 아닌가요?”라고 묻는다고 했다.
이들의 과감성은 현실권력으로부터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체포 직전인 1월15 일 영상편지에서 “이나라의 모든 법이 무너졌다”며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고 공권력과 사법질서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 주의 청년들에게서 희망을 본다’고 추켜세웠다. 서부지법 폭동 직후 국민의힘 권성 동 원내대표는 “현장 폭력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경찰의 과잉대응과 폭력행위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김용원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은 “대통령을 탄핵하면 헌법재판소를 두들겨 부숴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보수유튜버들과 폭도들에게 설명절 선물을 보냈다. 홍준표 시장의 부인은 탄핵반대집회를 찾아 전한길 강사와 인증샷을 찍어 홍시장의 지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헌법재판관이 역적”이라고 반복해서 외쳐진 동대구역 집회에는 이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과 경북지사까지 모두 달려가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를 되새겼다. 나경원 의원 등 국민의힘 중진의원들은 윤석열 면회 후 그의 내란옹호 메신저를 자처했다. 친위쿠데타세력과 극우광신집단 그리고 내란옹호세력이 결집하여 민주공화국의 헌정질서를 파괴하려하고 그에 맞서 야당과 진보민중진영이 연대하여 의연히 투쟁해야한다면 그 상황이 곧 정치적 내전상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진단부터 정확해야한다. 원인도 해법도 한두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헌법체제, 분단체제, 반중혐오, 그리고 보수정당. 일단 크게 4가지로 정리한 뒤 이번 호 연구지를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호’로 기획했다. 오동석(아주대 법학 전문대학원)교수는 12‧3 내란과 87년 헌법 체제의 관계를 분석하는 글을 보냈다. 저자는 87년 헌법과 87년 헌법체제를 구별하여 각각의 문제점을 설명한 뒤 ‘공론의 광장에서 인민의 의사 조성 방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서보혁(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은 12‧3 계엄 사태를 정치내전에 가깝다고 분석한 뒤 분단체제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우리에게 <짱깨주의의 탄생> 저자로 알려진 김희교(광운대 동북아문화산 업학부)교수는 혐중정서가 어떻게 극우의 무기가 되었는지를 살피고 친미냐 친중이냐 하는 시대착오적 식민주의를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병근(조선대학교 정치 외교학과)교수는 ‘보수는 왜 민주공화정을 거부하게 되었나’는 화두를 던진 뒤 ‘한국 극우세력의 특성과 지지기반’을 분석하는 글을 썼다. “한국적 극우란 누구이며, 어떤 기원에서 비롯되었는가? 이들의 결집 상황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들로부터 한국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해당하는 글이다.
네 개의 원고를 모두 읽고 독자들은 또 다른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저 비이성적 집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상식적 답변은 내란종식과 대선승리를 전후해 소수화시켜 고립시키고 주모자들은 법과 제도로 엄정하게 규율한 뒤 다수는 서서히 교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빠르게 진보시키지 못하고, 평화를 진척시키지 않고, 불평등과 혐오를 방치한다면 파시즘은 언제든 독버섯처럼 피어난다. 언제까지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세월을 보내야하는가. 사회대개혁은 우리 안의 파시즘을 가 장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와 관련한 글은 다음 기획에서 다루기로 한다.
2025년 2월 15일
신석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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