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내전상황 특집] 분단체제, 정치내전, 그리고 12‧3 계엄 사태
서보혁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이 글에서는 분단체제가 한국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12‧3 비상계엄 사태1)를 통해 살펴보고, 한국형 평화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12‧3 계엄 사태를 계기로 현 한국의 정치 상태가 내전에 가깝다고 보고 관련 이론을 적용해 볼 것이다.
Ⅰ. 분단체제와 12‧3 비상계엄 사태
분단체제는 분단이 한반도와 남‧북한 주민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합 구조와 그것을 지지하는 의식 및 관행을 말한다.2) 여기서 분단체제는 단순히 분단의 장기화 현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이 그 성격과 양상, 그리고 분단의 형성 및 지속 원인 등에 걸쳐 복잡한 양상을 띠고 그 성격이 폭력적임을 말한다. 분단(과 분단을 고착화시킨 전쟁)이 민족 내부의 갈등과 국제정치적 차원의 갈등이 혼재되어 있고, 그 양상이 민족 분단, 영토 분단, 의식 분단 등을 띈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분단의 형성 및 지속 원인에 민족 내부적 차원과 외부적 차원이 결합 되어 있음도 인정되고 있다. 대체로 분단체제는 남‧북한, 남북관계, 한반도 관련 국제관계 등 크게 세 측면으로 구성되고, 다시 이들 세 측면은 정치‧이념, 경제, 군사, 문화 등의 영역에서 전개된다.
그렇다면 2025년 현재 분단체제는 어떤 위치에 있는가? 발전도상에 있는가 아니면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가? 오늘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다차원의 양극화나 12‧3 계엄 사태에 분단체제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분단체제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말했는데, 추가할 또 다른 성질로 동태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시기 분단체제의 성질은 그 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상대적 영향력, 그리고 전반적인 추세에 의해 판단할 수 있다. 분단 체제는 앞서 말한 복수의 요인들로 형성되고, 전쟁을 기폭제로 확립되고, 강대국 정치와 남북한 체제경쟁으로 지속되어 왔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요인은 무엇일까.
분단체제의 확립 이후는 기본적으로 국제정치와 남북관계, 그리고 남‧북한 국내적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해당 시기 분단체제의 양상과 성격이 규정되어 왔다. 세 요소 중 두 변수가 같은 방향으로 결합할 경우 그 둘이 해당 시기의 분단체제를 선도할 수 있다. 가령, 남‧북한 두 체제가 상대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완화하고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협력이 일어날 경우 분단체제는 이완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남북 대화기’, 혹은 ‘남북한 협력 시기’ 등으로 불러왔고, 지금은 그런 때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도 한반도 관련 국제정치가 순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 분단체체제의 이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남북대화의 중단, 2018년 평화 프로세스의 중단은 냉전의 격화와 미중관계의 악화가 큰 제약으로 작용하였다.
다른 한편, 분단체제의 전개과정에서 그 구성 영역들이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도 각 영역의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가령, 남북 당국 간 대화, 경제교류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도 군사 협력이나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 약화가 같은 수준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남북관계가 그런 양상을 보였다. 이렇게 남북관계 변화가 전반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부분 발전과 부분 정체의 부조화를 보일 때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갈등이 높아질 수 있다. 물론 국내정치적 갈등을 형성하는데 북한 변수의 영향력은 국내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일정하지 않고 진폭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있거나 그 위험이 높을 때, 그리고 정치적으로 북한을 공개적으로 압박할 때 분단체제의 영향력은 높아진다. 그 현상 중 하나가 혐오와 배제의 정치이다.
그렇다면 12‧3 계엄 사태에서 분단체제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24년 12월 3일 밤 10시경,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그 이유로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12‧3 계엄은 남북관계상의 일방인 ‘북한’과 한국사회 내 ‘종북세력’, 즉 분단체제의 두 구성 요소가 직접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윤 대통령은 국회(주로 야당)가 행정부의 국정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도 밝혀 계엄의 명분을 추가하였다. 그럼에도 12‧3 계엄 전후로 북한을 호명하여 정치적 지지세력을 규합하는 한편, 경쟁세력을 제압하려는 현상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또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야당 일각에서는 계엄세력이 군을 동원해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시키고 서해 일대에서 대대적인 포사격 훈련을 하는 등 군사적 위기를 조장해 계엄에 이용하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사실 한국 현대사에서 북한의 공산화 위협 운운하며 안보를 정치에 이용(하려)한 선례는 계속 이어져왔다. 12‧3 계엄 사태 역시 분단체제의 자장 속에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북한 변수가 명백히 작용하였다. 그러므로 정부의 통치행태는 남북한 정치체제와 무방하게 남북의 정치에 분단체제가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엄이 반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현실에 출현한 것에서 분단체제의 건재함을 알 수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정치 체제와 경제력에서 대북 우월의식이 뚜렷한 상태에서도 대북 적대의식을 정치적 수단으로 동원하는 현상에서는 정치의식이 정치행태를 규정할 정도의 위력을 목도하게 된다. 그러나 반북의식을 정치적으로 반복해서 호명할 경우 실제 북한의 위협에 둔감할 수 있음은 물론,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다양한 대내적 갈등을 은폐하고 누적시켜 결국 분단체제와 대내적 갈등이 악순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만, 국민들과 야당의 즉각적인 계엄 반대 움직임과 군의 소극적 계엄 지지 등은 민주화 공고화 단계에 있는 한국의 정치적 수준을 웅변해준다.
Ⅱ. 정치내전으로서 12‧3 계엄 사태
12‧3 계엄으로 빚어진 작금의 정치적 혼란을 계기로 관심을 끄는 책이 하나 있어 읽어보았다. 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바버라 F. 월터 교수가 쓴 『내전은 어떻 게 일어나는가』(2025)가 그것이다. 저자는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아노크라시(Anocracy)’ 개념을 제안한다. 월터는 아노크라시를 “민주주의도, 독재도 아닌 중간구간을 통과하는 나라”로 정의하는데 어떤 학자는 이를 ‘부분적 민주주의’ 국가로 부르기도 한다.
내전 연구자들은 아노크라시를 판단하기 위해 정치체 점수를 매긴다. -10점(최악 의 독재)~+10점(가장 높은 민주주의) 범위에서 –6~+6점 사이를 아노크라시로 규정하고 이때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독재적 특징보다 민주적 특징이 더 높은 나라가 독재정부보다 2배, 민주정부보다 3배 더 내전 발생가능성이 높다. 달리 말해서 쇠퇴하는 민주주의에서 내전의 징후가 나타나는데, 그 요인으로 ‘독재자 지망자’의 등장과 나쁜 거버넌스, 민주제도를 약화시키는 조치들이 꼽힌다. 그는 “미국은 특별한 나라지만, 미국이라고 해서 내전에 면역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2020년 대선 패배 이후 트럼프를 지지한 극우집단의 의사당 난입 폭동사태를 지목한다. 이쯤되면 월터의 내전 이론을 오늘 한국에 적용해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에 힘겹게 승리하였다. 그럼에도 집권 이후 그는 국회와 협치, 특히 제1야당과 대화와 설득에 나서기보다는 소위 ‘시행령 정치’를 전개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공 이슈들에 관해 이해당사자 집단과 대화보다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한편, 국민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시대착오적 태도를 보였다. 국제사회로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이 퇴보한다는 우려가 나올 정도였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은 고립되고 그만큼 반민주적인 방식, 그중에서 극단적인 권력 행사의 유혹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국민을 지지와 배제의 이분법으로 가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위헌적인 계엄을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아노크라시가 상태가 아니라 실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월터는 내전이 일어나는데 필요한 변수로 ① 아노크라시 외에도, ② 파벌 싸움의 격화, ③ 지위 상실, ④ 희망의 소멸, ⑤ 촉매를 제시하고 그 예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한국에서 정치 파벌 싸움은 적어도 87년 이후에 보수 대 진보로 견고하게 형성되었다. 특히 여소야대 국회 분포에서는 대통령 중심제가 작동하기 어려워지는데, 이 때 대통령의 태도가 관건이다. 협치냐 대결이냐? 월터는 파벌 싸움이 반대세력을 비난하는 동시에 지지세력을 규합하고, 그를 위해 정체성을 호소하고 약탈적 정책이 나타날 정도면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계엄 준비에 나서며 윤 대통령은 국민과 여론을 편가르는데 힘썼다. 지지세력은 애국집단, 반대세력은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는 식으로 나누면 경쟁 상대를 적대시하는 혐오와 배제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소추 의결 하 기 이틀 전인 작년 12월 12일 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제1야당을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국가안보와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한편, “국민 여러분”(사실은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에 모두 하나가 되어주시길 간곡한 마음으로 호소드립니다”고 했다. 전형적인 혐오와 선동의 언사이다. 편가르기의 최선두에 대통령이 서있지만,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하는 정치 사업가들이 나타난다. 여당 의원들 외에도 시민단체와 여론지도층 인사들에서도 사업가들이 나선다. 파벌 싸움을 넘어 정치내전으로 진입하는 일부 조건 이 성립된 것이다.
내전을 발생시킬 또 다른 변수로 월터는 “지위 상실이 가져올 암울한 결과”를 든다. 가령, 토박이가 상실감을 가질 때 불만감이 높아지고 저항을 조직할 역량도 대단히 커진다. 여기서 토박이는 기성 사회에서 기득권을 상실당할 위험을 느끼는 주류 집단으로 간주되는데, 이들이 정치화되면 ‘초파벌’이 된다. 월터는 “초파벌은 안정 된 민주사회에서도 위협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 말에는 정치적 도전으로 기득권이 상실된다고 판단할 경우 법과 거버넌스를 무시하고 내전에 돌입할 수도 있다는 경계가 담겨있다. 분단체제 하의 남한에서 토박이는 누구이고, 이들을 배경 삼아 초파벌로 행세해 온 집단이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한국에서 토박이는 권위주의 시기에는 정치적 동원의 대상으로 남아있지만, 민주화를 거치면서 정치참여에 초청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지도자의 지위가 상실될 위기에 처하자, 그의 초청에 힘입어 광장으로 나온다. 토박이들은 정치내전에 반(半)자발적 주체로 진화한 것이다.
12‧3 계엄 사태는 한국사회 내 초파벌 중에서도 윤 대통령과 소수의 지지세력이 정권이 상실될 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해 취한 최후의 조치였다. 월터가 말한 “희망이 사라질 때”에 가깝다. 그는 희망 상실의 경우를 몇 가지로 들고 있는데, 계엄 사태는 “패배하는 쪽이 다시는 권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와 관련 있다. 국회 의석 분포가 권력자에 불리하고 잘못된 거버넌스로 국민의 지지가 추락한 가운데, 뜻한 바대로 정국을 운용할 가능성이 낮아지자, 계엄 카드를 뽑기로 한 것이다. 국회에서의 계엄 해제 결의를 시작으로 국회와 법원이 취한 법치를 부정하는 극우세력과 이를 선동하는 대통령과 일부 정치인들의 선동은 초파벌의 기득권 상실의 위기감이 극명하게 표출한 것이었다. 특히, 대통령에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부지방 법원에 대한 극우세력의 난입 폭동은 근래 한국 정치내전의 정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 월터가 말한 변수들이 모인다고 해도 내전이 곧바로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 촉매가 작용해야 한다. 과거에는 군부의 지지라면, 근래 들어서는 소셜미디어가 내전의 촉매제이다. 월터는 소셜미디어가 분노와 원한을 동원하는데 값싸고 신속한 도구라고 말하며, 유튜브를 “급진화 송유관”이라고 부른다. 유튜버는 가짜 뉴스나 자극적인 주장으로 대중을 선동해 조회수를 늘려 금전적 이익을 획득하는데, 이를 정치세력이 부추기고 온라인 알고리즘이 도움을 준다. 소셜미디어에 참여하는 대중은 이제 소외된 군중에서 정치의 주체로 올라서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 광장에서, 온라인에서 행사하는 유무형의 폭력을 정치행위의 일부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독재자 지망생을 지지하면서 권력자와의 동일시 체험을 하면서 소외감을 일소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12‧3 계엄 사태는 소셜미디어에 의해, 혹은 그를 통해 혐오, 배제, 그리고 실제 물리적 폭력 등 폭력적 정치행위가 두드러진 전형적인 사례로 기록할 만하다. 심리적 차원의 내전이 행동으로 옮겨진 것에는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및 구속 등 일련의 사태 진전과 함께 소셜미디어를 통한 폭력 선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
Ⅲ. 내전 예방과 한국형 평화
이상 내전 발생 이론을 적용해 잠정적이나마 12‧3 계엄 사태를 일종의 정치내전으로 평가해보았다. 이 사례를 반추하면서 귀납적으로 정치내전을 정의해보면, 그것은 한 국가 내 정치적 갈등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폭력적으로 전개되는 양상과 그 메커니즘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정치내전은 정치세력 간 극단적인 정치폭력이다. 그것이 국가 차원으로 전개되는데 그 특징과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내전은 심리적‧물리적 갈등을 동반하고, 국가 전체가 내편과 적으로 나뉜다. 정치내전은 정치집단의 갈등에 의해 우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 요소들이 충족되고 다른 한편, 오랜 배경 속에서 잠재적 축적된 가운데서 촉매에 의해 내전이 발생한다.
12‧3 계엄 사태는 월터의 내전이론을 유감스럽게도 증명해주는 듯하다. 또 이 사태는 분단체제의 영향 하에서 전개된 정치내전이다. 북한, 종북, 반국가세력의 등식은 분단체제의 지속성을 말해주는 동시에 분단체제의 지양 없이 한국형 평화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시사해준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병행 추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전을 예방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평화를 꽃 피우는데 우선 중요한 과제이다. 내전을 예방하는 방안으로 월터는 먼저 동료 학자가 언급한 법치, 발언권과 책임성, 유능한 정부를 제시한다. 이어 그는 지도자의 태도를 거론한다. 법제도적 차원에서는 정치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과 소셜미디어에 대한 규제도 언급한다. 여기에 필자가 주목한 두 가지 방안이 더 있는데, 하나는 “외부자에 대한 위협인식이 커서” 혹은 “심리적 편향 때문에 내부의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외부위협을 내부 적을 규정하는데 연계시켜온 불행한 관행이 있는데, 월터가 알면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킬 놀라운 사례로 간주할지 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안보기관에 침투한 극우세력”, “백인민족주의가 경찰에 미치는 영향”이 말하는 바이다. 이는 21세기 정치내전의 특징과 문제점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 오늘날 정치내전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그리고 지도자와 대중이 결합해 중첩되어 작동한다. 12‧3 계엄 사태도 여기에 알맞은 사례이다.
마지막으로, 분단체제의 간고함을 감안할 때 한국형 평화는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할까? 모두에서 분단체제의 역동성을 언급하였지만, 그 추세를 구체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12‧3 계엄 사태가 계엄세력의 계획대로 이행되지 않고 조기에 진화된 것에는 시민과 국회는 물론 계엄군에게까지 민주의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단체제와 민주주의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가짐을 말해준다. 이것이 분단체제의 한 추세이다. 분단체제를 지양하고 통일평화체제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제도와 의식, 정치사회와 시민 사회를 막론한다.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이 복합 구도를 벗어난 편향된 접근은 분단 체제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 분단체제는 자연스럽게 쇠퇴하는지는 의문이다. 분단체제의 역동성보다는 복합성이 더 큰 요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두에 분단 체제의 성격과 특징을 언급하였지만, 거기에는 일국 차원의 민주주의가 통제하기 어려운 국제정치 동학과 안보 심리가 작동한다. 그래서 한국형 평화는 민주주의의 공고화와 함께 평화체제를 대비하는 노력을 국내적 민주역량과 국내외적 평화역량이 연합할 때 가능하다. 한국형 평화는 한반도 평화를 준비하고 그 과정 및 내용에서 세계평화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보편-특수성을 갖는다. 한반도 평화가 세계평화와 상통하는 것이 보편성의 발로라면, 남북통일에 평화,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 보편가치들을 융해시킨다는 비전은 분단체제의 특수성을 반영한 귀결이다. 한국형 평화가 한반도발 평화로 나아가야 할 이유이다. 그런데 아직 12‧3 계엄 사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데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1) 정치적, 법적으로 종료되지 않는 12‧3 계엄 사태를 언급하기가 곤혹스럽다. 이 사태에 관해 혹자는 단시간의 계엄, 혹자는 아직 종료되지 않은 내란으로 규정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극단적 시각의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위와 같은 표현을 쓰며 객관적 태도를 취하고자 한다.
2) 물론 분단된 한반도와 남북한 주민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분단체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라 주장할 이유는 적지 않 다. 그런 후보로는 한국의 정치체제 혹은 정치문화, 경제력, 국제적 위상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분단체제의 영향을 무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논의 주제상 여기서는 분단체제의 영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진보정책연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6-5.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4] 보수는 왜 민주공화정을 거부하게 되었나?: 한국 극우 세력의 특성과 지지 기반 (1) | 2025.08.04 |
|---|---|
| 6-4.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3] 혐중은 어떻게 극우의 무기가 되었는가? (0) | 2025.08.04 |
| 6-2.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1] 12·3 내란과 87년 헌법 체제 (0) | 2025.07.25 |
| 6-1. [발간사] 발호하는 극우 파시즘을 극복하려면 (3) | 2025.07.25 |
| 『진보정책연구』 Vol.6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 (0) | 2025.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