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책연구

6-2.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1] 12·3 내란과 87년 헌법 체제

진보정책연구원 2025. 7. 25. 09:31

[정치적 내전상황 특집] 12·3 내란과 87년 헌법 체제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12ㆍ3 내란 상태의 지속 와중에서 자문(自問)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비상계엄이 선포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치 과거 3ㆍ15 부정 선거 내란, 5ㆍ16 군사 반란, ‘유신쿠데타’ 내란, 12ㆍ12 군사 반란과 5ㆍ17 내란을 얽은 듯한 12ㆍ3 내란이 일어났다. 87년 헌법 체제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그 유력한 대응법 중 하나로 개헌은 내란이 지속하는 중에 이미 곳곳에서 논의되고 있다. 다만, 87년 헌법 체제를 고치는 일은 공권력을 동원한 군사 반란 또는 내란이 어떻게 다시 한국 헌정사에 등장했는지를 돌아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87년에 개정 한 실정 헌법 자체의 문제인지, 그에 못지않게 독재의 잔재가 고착한 헌법 ‘체제’의 문제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헌법 체제의 어디를 손봐야 할지 대강의 밑그림이 나올 수 있다.

 

2. 12ㆍ3 내란 관련 헌정사의 반추

윤석열은 지금의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제21대ㆍ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다고 호도한다. 국회에서 야당이 다수파인 관계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자, 아무 문제가 없는 선거를 부정한 점에서 ‘3ㆍ15 부정 선거 내란’을 뒤 집었다. 그 이후 5ㆍ16 군사 반란, ‘유신쿠데타’, 12ㆍ12 군사 반란과 5ㆍ17 내란 등 실제 내란 범죄자는 지배 권력이었다.

12ㆍ3 내란은 한국 헌정사에서 군사 반란과 내란 중 박정희의 10월 유신 내란과 가장 닮았다. 먼저 내란의 유형을 개략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인 명목의 내란은 공권력을 향한 것이다. 한국 헌정사에서 지배 권력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배제하기 위해 내란의 죄를 덧씌운 사례가 적지 않다. 해방 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 세력의 우위 또는 참여를 배제한 경우나 독재정권이 유력한 정치적 반대자에게 내란죄를 적용한 경우다. 지배 질서를 위협할 물리력 또는 세력을 갖추지 않은 경우까지 무리하게 내란음모 또는 내란선전의 죄로 처벌한 경우를 포함한다.

다른 하나는 지배 권력을 강화하거나 독재 또는 권위주의 체제를 구축하려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내란을 일으키는 경우로서 흔히 ‘친위쿠데타’로 부른다. 박정희의 유신 내란은 당시 대통령의 직에 있었기에 윤석열의 12ㆍ3 내란과 외관상 유사하다. 물론 그 과정과 내란의 실행 이후 전개는 확연히 다르다. 그 대응 또한 달라야 하지 만, 12ㆍ3 내란이 어떻게 매듭이 지어질지 아직은 미지수다. 지배 권력의 군사 반란 또는 내란이 형사 처벌받은 것은 전두환ㆍ노태우 등 뿐이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과 내란의 우두머리 죄 처벌은 자명해 보이지만, 그 이후 대처는 쉽지 않다.

 

3. 헌법은 국가범죄의 단죄법

한국 헌정사를 되돌아보며, 헌법이 어떤 법이어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헌법은 형법과 다르다. 형법은 반(헌법)체제 세력의 내란 행위를 처벌하지만, 헌법은 형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체제)권력을 이용한 헌정 파괴행위를 단죄한다. 헌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더라도 국가적 불법과 부정의가 있다면 헌법은 민주주의 체제를 회복하기 위해 당연히 불법의 권력자를 단죄하는 ‘국가범죄 처벌법’의 성격을 지닌다. ‘실패한 쿠데타’는 내란 등의 죄로 형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지만, ‘일시적으로 성공한 쿠데타’는 쿠데타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 박정희의 5ㆍ16 군사 반란과 전두환ㆍ노태우의 12ㆍ12 군사 반란과 5ㆍ18 내란이 그랬다.

그러니 민주공화국 헌법 체제의 파괴 상황에서 주권자 인민이 등장할 가능성이 열린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기준 삼아 ‘지체되더라도 헌법적 심판’을 통해 민주공화국 헌법 체제를 회복함은 물론 개혁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해야 한다. 1979년 의 민주항쟁과 1980년의 광주항쟁에 바탕을 둔 1987년의 시민 항쟁이 주권자 인민의 헌법적 심판이다. 그 결과 새로운 헌법 체제를 구축하면서― 보통은 성문헌법 개 정을 수반하면서― ‘반민주적 집권 세력’을 심판한다. 검찰은 전두환ㆍ노태우를 기소유예처분으로 기소하지 않았지만, 주권자 인민은 김영삼 정부가 공소시효를 배제 하는 입법을 통해 전두환ㆍ노태우를 처벌하도록 했다. 그것은 통상 법률 차원의 접근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지만, ‘헌법적 해법으로서의 입법’을 통한 해법이었다. 다만 그것이 미완이었던 것은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에서 불법적 권력을 공유했던 자들에게 법적ㆍ정치적 책임을 묻지 못했고, 그 불법과 부정의의 제도적 근거를 전반적으로 혁신하지 못했으며, 그 원칙과 제도를 헌법에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87년 헌법 체제로의 그리고 87년 헌법 체제로부터의 이행기 정의는 지체되었고, 선행 헌법에서의 이행기 정의처럼 구체적인 제도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4. 이행기 정의 관점에서 87년 헌법 체제의 한계

해방 후 1948년 헌법 제101조에서는 국회가 1945년 해방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이승만 정권은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친일파를 대거 기용하는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4ㆍ19혁명 후 1960년 개정헌법 부칙에서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한 대통령ㆍ부통령 선거 관련 부정행위를 한 자와 그 부정행위에 항의하는 국민에 대하여 살상 기타의 부정 행위를 한 자를 처벌 또는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특정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현저한 반민주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으며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지위 또는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 한 자에 대한 행정상 또는 형사상의 처리를 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덧붙여 이러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하여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5ㆍ16 군사 반란으로 이행기 정의를 실현하지 못했다. 그 이후는 오히려 헌법적 또는 법률적 불법과 부정의의 시대였다.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상국무회의, 국가보위입법회의 같은 불법적 입법기구가 헌법의 개악을 이끌었다. 

87년 헌법 체제는 불법과 부정의를 바로잡는 이행기 정의의 헌법이어야 했다. 일찍이 국순옥은 노태우 정권이 떠받치고 있는 제6공화국의 헌정사적 위상을 유신체제 제3기로 규정했다. 전두환 정권이 유신체제의 유언집행인이라면, 그것을 승계한 노태우 정권은 유신체제의 유산관리인이라는 것이다. 5ㆍ16 군사 반란은 72년의 유신독재 체제로 수렴되고, 87년 민주화 이후 일정한 시기까지는 유신체제가 이어졌 다고 봐야 한다. 또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유신체제의 청산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이다. 

일제 식민 통치의 불법, 제주 4ㆍ3 항쟁, 한국 전쟁 또는 베트남 전쟁에서 민간인 학살 문제, 독재 또는 권위주의 시대의 인권침해 사안들은 어느 정도 이행기 정의 원칙에 따라 매듭이 지어졌을까.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비롯하여 각종 사건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고 그에 따른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위원회가 활동했거나 지금도 여럿 활동하고 있지만, 가해자에 대한 책임 추궁은 고사하고 피해자들에 구제조차 충분하지 않은 형편이다. 이재승이 주장하듯, 과거청산의 일괄입법은 악법을 무효로 하고 그 악법에 따라 내린 판결들도 동시에 무 효화해야 한다. 이행기 정의는 과거 국가폭력의 진상 규명과 당사자 처벌 그리고 원상회복과 손해 배상 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법ㆍ제도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군,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법원 등의 변화를 제도적 차원에서 뒷받침해야 한다.

1948년 정부수립 직후와 1960년 4ㆍ19혁명 직후를 제외하면 몇몇 정부를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민주공화국의 헌법 체제를 수립하여 운용한 시기가 있었을까. 그 이전부터 있었지만 12ㆍ3 내란 이후에는 ‘7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더 마뜩잖은 까닭이다. 12ㆍ3 내란은 윤석열 개인 또는 그의 추종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신 내란 체제를 청산하지 못한 ‘1987년 헌법’ 아닌 ‘87년 헌법 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1987년 헌법을 고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내란 범죄가 일어난 헌법 체제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5. ‘계엄 헌법’으로서 87년 헌법 체제

87년 헌법에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군사 반란 또는 내란 이후에 개악된, 군 또는 계엄 관련 조항이 청산되지 않은 채 여전히 헌법 조항으로 남았다. 헌법에서조차 군사쿠데타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군사통치의 가능성을 넓게 열어놓고 있다. 군인 아닌 국민이 평시에도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하는가 하면(헌법 제27 조 제2항), 비상계엄 아래에서는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게 하고(헌법 제77조 제3항), 사형 선고 외에는 단심으로 재판을 종결할 수 있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 제110조 제4항). 국민의 안전 보장을 위해 불가피한 예외 조항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한국의 헌정사를 반추하면 그렇게 쉽게 관념적으로 말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까지 분단 상황을 끌어들여 기본권 제한을 폭넓고 깊게 허용하고 있는 탓에 그렇다.

그러나, 설령 헌법이 그렇다 하더라도 관련 법률을 잘 정비하면 군사통치의 잔재를 걷어낼 수 있을 텐데, 입법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계엄법」은 비상계엄시 계엄 사령관이 계엄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하게 한다(법 제7조 제1항). 「군형법」은 일정한 범죄에 대하여 군인 아닌 일반 국민에게도 적용한다(법 제1조 제4항). 군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난 후 그 방지책으로 2021. 9. 24. 「군사법원법」 을 개정하긴 했지만, 즉자적으로 성폭력 관련 범죄에 한정하여 일반 법원에서 관할 하도록 할 뿐이다(법 제2조 제2항). 전시 아닌 평시임에도 불구하고 군은 권력분립 원칙을 위배하여 사법권을 관장한다. 사법권까지 틀어쥐고 있어야 군기를 확립할 수 있다는 군의 태도는 군의 지휘 역량이 취약함을 자백함과 아울러 세상의 민주주의적 변화에 적응할 용기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밖에 없다. 장병 전체보다는 소수의 고위 지휘관의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군사쿠데타의 잔재를 유지하고자 함이다.

시민과 다수의 국회의원 그리고 일부 군인 등 공직자들 덕에 조기에 비상계엄이 해제되고 12ㆍ3 내란이 끝났다고 말한다면, 의회민주주의를 저버린 소수의 여당 국회의원, 대통령 권한대행자들, 내란을 옹호하고 윤석열의 탄핵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내란과 무관하냐고 되물어야 한다. 이행기 정의는 개헌의 ‘한방주의’가 아니라 지속적인 변혁 과정이어야 한다. 이행기 정의는 헌법 먼저가 아니라 그 헌법을 무시하는 국가권력 담당자들이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바꾸는 이행기 정의여야 한다. 

 

6. 87년 헌법 체제 개혁의 방법론: 국가정보원의 사례를 들어

12ㆍ3 내란에서 군, 경찰 그리고 검찰과 장관 등 가시적인 국가기관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후 간간이 수면 위로 반헌법적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아직은 전모를 밝히지 못한 국가정보원이 문제다. 87년 헌법 체제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국정원 1차장 홍장원의 행동이 국가정보원의 문제점을 오히려 드러내지 않게 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정보원은 「형법」 중 내란의 죄에 관한 정보를 수집ㆍ작성ㆍ배포(「국가정보원법」 제4조 제1호 다목) 해야 할 법적 책무가 있다. 가장 먼저 윤석열의 내란 범죄를 인지하고 각 국가기관에 그 정보를 배포하여 대응했어야 한다. 불법이 확인되지 않은 대통령의 명령이기 때문에 쉽게 판단ㆍ행동할 수 없었다는 건 변명이 되지 못한다. 정보기관은 그 어떤 국가기관보다 국민의 안위를 위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비밀정보기관은 시민을 향해서만 작동하는 대통령의 수족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으며, 대통령의 불법을 묵인하거나 오히려 앞장설 우려가 있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군사 반란 및 내란으로 집권한 박정희 독재의 통치 수단으로 생긴 데서 초헌법적 국가기구가 낳은 비극의 역사가 시작했다. 그 전력을 따른 전두환·노태우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만 바꿨을 뿐이다.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보기관은 공안정국의 조성에서 공공연하게 이름을 걸고 전면에 나섰다. 비밀정보기관이야말로 칼 슈미트의 적과 동지 개념에 기대고 있는 존재다. 민주화에 따라 비밀정보기관에 대해서는 매우 세밀하고 복합적인 제도적 구성과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밀정보기관은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국정원 개혁 생색내기로 폐지했던 대공 수사권이 살아날 조짐마저 보인다.

민주화 이후 국가정보원이 저지른 불법이 나중에 그 일부를 드러냈다. 국가정보원이 2008년에서 2010년 사이에 4대강 사업에 반대한 시민사회계·종교계·학계·언론계 등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서에서 ‘청와대 요청’으로 정무·민정·국정기획·경제·교육문화수석, 대통령실장·국무총리실장 등에게 배포한 것이 드러났다. 이명박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 국가정보원, 고용노동부 등이 대대적인 노조파괴 공 작을 벌였다. 2010년 2월부터 12월까지, 11개월 동안 176건의 노조파괴 문건을 주고받았다. 청와대가 국정원에 자료를 보내면, 국정원이 이를 토대로 문건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하는 식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산하 공공기관 등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통해 전체주의적인 검열과 배제의 국가범죄를 저질렀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건은 청와대, 국가정보원, 교육부 그리고 산하 공공기관 등의 합작품이었다.

지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두고 압도적 과반수의 의석까지 더해진 여당 시절에도 국가정보원을 법적 또는 제도적으로 개혁하지 못했다. 두 번의 「국가정보원법」 개정이 있긴 했다. 그 수준이 문제다. 그 범죄는 헌정질서 문란 인데, 그 형벌은 벌금 수준이다. 국회에서 사후약방문일 뿐 별로 소용없는 알리바이용 형식적 해법밖에 내지 못하는 까닭은 입법의 필요성을 초래한 사건의 원인과 배 경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판단 없이 입법했기 때문이다. 병을 진단하지도 않고 처방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국회의 무책임 또는 무능력,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국정원의 권력 자체가 법치적 통제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비밀정보기관을 공공연히 동원하고 법치주의를 노골적으로 우회하며 멸시하는 대통령의 폭주에 누가 무엇으로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의 선의에 기댈 수 만은 없다. 법치주의와 입헌주의의 헌법 원칙, 대통령 탄핵, ‘촛불 대통령’의 선출, ‘한국 헌정사에 유례없는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진 여당’ 배출로써도 하지 못한 일이 다. 어쨌든 다른 길,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한두 개의 법률조항만으로 국정원 개혁을 말한다면, 가당찮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7. 이행기 정의를 향한 법률의 중요성 그리고 나서 개헌

비밀정보기관 입법 역사의 극히 일부분만 들여다보더라도 국회의 이행기 정의 과제에 따른 불법적 입법 청산의 의식과 의사 그리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거 입법부로서 치욕과 헌정사적 불법의 과거를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러니 국가정보원의 이름을 바꾸고,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는 것으로, 국가정보원의 개혁이 이뤄질 리 가 없다. 국가정보원의 직접 수사 폐지는 수사를 빌미로 한 정보의 과잉 수집을 금지하기 위함이다.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는 것은 국가정보원이 각종 정보를 수집하여 집적함으로써 정보 권력을 구축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 다. 보안 업무는 각 기관에 맡기면 될 일이다. 국가정보원의 사이버 공간의 장악과 ‘테러방지법’ 관여도 막아야 한다. 국가정보원의 인력 감축 없이, 예산 축소 없이, 정보 업무 범위 축감 없이, 국가정보원 개혁은 없다. 테러방지법 상 국가정보원의 조사권이나 사이버안보 및 우주 정보에 대한 업무 등 수사권 폐지를 전제로 새로 인정한 업무는 기존의 조직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니 생기는 일이다.

개헌 이전에 법률 차원에서 해야 할 구체적인 개혁 입법을 하지 못하면, 국회가 그 개혁 입법을 완성하도록 주권자 인민이 민주주의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주권자 인민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주권자 인민이 도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은 정치인을 비롯한 한국 사회 지배 세력의 권력 재배분에 불과하다. 주권자 인민은 직접 온몸을 드러내지 못하지만 ‘대표’라는 허울이 아니라 의회민주주의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입법을 통해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존재여야 한다. 

개헌은 헌법 문언의 수정을 통해 기본적 인권 보장의 강화와 입법ㆍ행정ㆍ사법 체계의 개선 근거와 추동력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그 이후 필수적인 매개체는 의회민주주의 바탕 위에 구체적 입법이다. 헌법의 문언 개정에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헌법의 문언이 곧바로 구체적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개헌은 이중의 문턱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행기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 주체는 국회인데, 독재 시대의 ‘국회 멸시’를 극복하는 입법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그게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민주주의 법치국가가 작동하는 헌법 체제 개혁은 우선 민주주의 입법이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삼권 중 국회에 법률의 제정ㆍ개정 독점권을 부여하되 국회의 한편으로 입법 자제를 하되, 다른 한편으로 적극적 입법이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그 훈련은 헌법 아닌 법률의 개정을 되풀이함으로써 헌법에 근거하면서도 주권자 인민의 의사를 일반화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시민들도 인권 규범 아래에서 민주주의 정치를 활성화하여 국회 의원회관 쪽방에서의 ‘로비스트 또는 청부 방식’이 아닌 ‘공론의 광장에서 인민의 의사 조성 방식’을 단련해야 한다. 그 전제조건은 이행기 정의의 입법 실현을 위한 불법과 부정의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나서야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지 그리고 각 인민 대표 권력의 배분과 작동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개헌의 밑그림이 실천적 이성을 바탕으로 그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