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관계] 트럼프시대, 한미동맹의 대가
박민정(진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한미동맹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마치 신줏단지 모시듯 하다. 조상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신줏단지는 조상에게 도리를 다한다는 효 사상을 넘어 조상숭배, 조상신으로 이어지며 종교화되었다. 한미동맹 역시 신줏단지처럼 절대적 가치로 자리매김하며 70년째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동맹은 위협적 적이 존재하고 지키기 위해 맺는 정치행위이다. 한미동맹은 “안보 패러다임의 시각으로 봤을 때 북한은 비합리적이고 알 수 없다는 의미에서 ‘Mad(예측할 수 없고)’하며, 정책의 동기와 추진면에서 ‘Bad(악당 국가)’로 묘사하며 이를 규범적으로 도저히 받아줄 수 없다1)”는 관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분단 체제의 위쪽에 자리 잡은 ‘적’ 북한이 미쳤거나 악당이기에 접경하고 있는 한국은 여전히 위험하다는 안보 패러다임이 한미 동맹의 근간인 셈이다.
그런데, 트럼프 2기에 들어서며 전 세계에서 유지되던 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에게 동맹국은 신뢰와 협력의 파트너가 아닌 강력한 미국의 안보에 무임승차하여 미국경제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하고 표현한다. 당선과 동시에 트럼프는 안보제공의 대가인 동맹청구서를 발송하기 시작했고, 한국에도 곧 도착할 듯 하다. 동맹청구서를 먼저 받아본 각국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게는 얼마를 요구할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제 한국도 계산기를 꺼내들 시간이다. 물건하나를 사더라도 가성비를 따져봐야 하는데 하물며 수조원의 비용을 따져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보제공의 비용에 합당한 청구서인지, 우리에게 손해는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자.
일단 트럼프가 한국에 요구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은,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무역 적자 해소 및 고율의 관세 인상, 대중국 첨단 기술 수출 규제 준수, FTA 재협상 추진 가능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미동맹의 주요한 의제인 한국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한다.
한미동맹, 군사동맹에서 가치동맹으로,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미동맹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반으로 한 군사동맹이다. 동맹은 친한 우방의 개념보다는 ‘공통의 적’이 있을 때, 패권 국가가 이른바 지역구 관리를 위해 거점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와 안보, 방위, 경제 등 상대 국가의 요구가 맞아떨어질 때 맺는다. 1953년은 한국전쟁의 정전협정 시기로 냉전의 초기 단계였기에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북한이라는 공통의 적이 존재하여 맺어진 관계가 바로 한미동맹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동맹국이 미국 하나지만 미국은 북미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하여 일본, 필리핀, 태국, 호주 등의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 등 중동 국가 등 20여 개가 넘는 동맹을 맺고 있다. 1945년 2차세계대전 이후 월등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기반한 미국이 냉전 시기 소련과의 체제경쟁 구도를 주도하며 패권국으로 등장한다. 이때 미국은 체제경쟁의 도구로 동맹을 활용하였으며, 한국과의 동맹 역시 한반도에서 체제경쟁 승리를 위해 군사 안보 동맹은 점차 경제적 지원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의 입장에서야 휴전 상태에서 미군 철수를 막기 위해 이승만 정부의 ‘벼랑끝 전술’로 종속적이고 비대칭인 조약을 이른바 생떼를 써서 체결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승만 정부에 마지못해 체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철저히 자국 이익, 패권 강화를 중심으로 맺은 동맹일 뿐이었다. 이는 1951년 9월 미국과 일본이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조약 체결 핵심은 일본을 미국의 대아시아 패권 전략의 교두보로 삼는 것에 있었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후 전후처리 방식에서 독일에 대해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인 다자기구를 통해 과거청산과 재무장 방지, 공산주의 확산의 공동 방어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포함한 동아시아에서는 과거는 묻어두고 일본은 기지 국가로의 역할을, 개별 국가와는 양자동맹을 통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중심 패권을 장악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하위개념으로 도입되었고, 그 구도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강대 동맹국과 약소 동맹국 간의 시혜와 순종의 관계에서 출발한 동등하지 못한 군사동맹으로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며 질적으로 전환되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은 베트남 참전, 이라크파병 등 동맹국으로의 임무를 다했고, 미국은 초기에는 원조로, 점차 경제협력이라는 당근을 제시하며 한국의 경제와 군사력 강화를 독려하며 동맹은 절대적 관계로 공고화되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서 군사동맹은 이른바 가치동맹으로 변화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동맹을 더 나아가 한미 핵 동맹으로 강화하며, 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표부 설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등 미국 중심의 군사동맹 확대와 진영대결에 적극 합류했다. 202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 동포간담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라며 “자유, 인권, 법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바탕 위에 세워진 가치동맹의 주춧돌 위에 안보 동맹, 산업 동맹, 첨단과학기술동맹, 문화 동맹, 정보 동맹이라는 다섯 개의 기둥을 세웠다”고 발언했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발생한다.
우선, 한국과 미국이 한미동맹의 목적이 다르다. 한국은 가치동맹이라 러브콜을 보내지만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익 중심에 기반하고 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미대사가 작성한 ‘보다 발전적이고 전략적인 한미동맹을 위한 2020 비전’2)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니, 한국에 대한 미국 군사력의 지속을 보다 효과적으로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기술한다. 특히 한미동맹을 동북아, 글로벌 차원으로의 확대해야 하는데 이는 미일동맹을 기반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함”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서로의 목적이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한미동맹이 만들어 내는 미국의 이익으로는 ① 중국의 힘이 성장하는데 아시아 대륙 유일한 존재인 주한미군철수는 어리석은 일(대 중국 견제)이며 ② 북한 위협에 대처할 수 있고 ③ 미국이 도전받을 때 한국의 군사적 지원(해외 파병)이 가능하다고 서술한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④ 한미간 무역마찰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며 ⑤ 중국이 미국을 배제하고 만들려는 아시아 경제협력체에 한미동맹이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고 ⑥ 미국산 무기 구매의 큰 고객이라고 미국의 이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요구 등을 보면 이 보고서는 2008년에 작성되었으나 미국의 정권교체 여부와 상관없이 기조와 원칙은 변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듯 자유, 인권, 법치,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 인식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가 보편적으로 사용해 왔던 의미와 상이함을 경험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가치의 해석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물며 미국과의 일치는 어불성설이다. 미국 기준의 가치에 한국이 수긍하고 동조하고 있으나 자국의 전략적 목적과 이익에 기반한 미국과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 그리고 국민이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 역시 일치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는 가치동맹, 포괄적 전략동맹은 분야가 확장됨에 따라 자국의 이익에 기반하여 시각 차이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국제정치학에서 동맹(alliance)은 매우 협의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국가들은 공동의 적이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을 체결하는데, 동맹국이 침공받으면 참전해 같이 싸우겠다는 ‘전쟁 공동체(war community)’의 관계, 한 동맹국이 적국으로부터 공격받으면 다른 동맹국이 함께 싸우겠다는 집단방어(collective defense) 기제가 동맹의 핵심 개념이다. 이 개념을 놓고 봤을 때 안보, 산업, 첨단과학기술, 문화, 정보로의 동맹 확장은 자국의 이익보다 강대국 동맹국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격 앞으로 할 수 밖에는 없다는 의미이며 종속성을 더욱 가속화 시킬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가치동맹의 모호성이 가진 문제는 한미동맹이라는 뒷덜미를 잡힌 채 분쟁지역에 뛰어들어야 하는 한국은 연루(Entrapment)3)의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즉,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에서 가치동맹·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변질됨에 따라 더 이상 한반도의 안보 중심이 아닌 아닌 미국 중심의 대중 전략을 포함한 이데올로기 전쟁에 참전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2기 한미동맹의 대가는?
트럼프 2기를 규정하는 표현은 ‘예측 불가능’, ‘예측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다.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음을 뜻하며 이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47대 대통령 취임사는 “미국의 황금기(Golden Age of America)”를 선언하며 에너지 패권 확보, 국경 안보 강화, 경제적 디커플링을 중심으로 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 노선을 구체화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향후 4년간 미중 전략경쟁 심화, 글로벌 협력 약화, 동맹 관계의 재조정, 그리고 국제적 불확실성 증대와 같은 국제외교안보 환경의 변화를 예고한다. 트럼프 1기 때부터 확인되어 온 안보 정책은 2기 들어서도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평화라는 기조로 평가된다. 미국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력과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하며 동맹국 여부에 상관없이 ‘실용적 거래주의(practical transactionalism)’에 기반하여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며 트럼프는 누가 얼마나 노력하고 비용을 지불하는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요구하고 있다. 당선 후 트럼프는 나토(NATO)에게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으면 동맹국을 방어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으며 후보시절 나토 회원국들은 GDP 대비 2% 이상의 국방비를 넘어 5%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NATO 회원국들은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핵보유국인 프랑스는 자국의 핵우산을 미국 없이 유럽 동맹국에게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고, 폴란드는 자체 핵무기 개발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의 공동방어 체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어보인다.
후보 시절 트럼프의 한국 관련 언급은 “한국은 잘 사는 나라이지만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 미군 주둔 비용 분담에 인색하다. 일부 내고 있다지만 다 내야 한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을 싫어한다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 그 이후 한국이 핵 무장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없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당선된 이후 한미 동맹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은 한국(일본 포함)의 핵무장을 말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기도 하지만, 미국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한미동맹의 주요한 의제인 한국 방위비 분담금을 살펴보자.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정식 조인된 이후 한국은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인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제5조에 따라 시설과 부지 등을 간접 지원했지만 1991년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pecial Measure Agreement : SMA)을 체결한 이후부터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을 대비하여 2024년 11월 제12차 SMA에 서명하며 2026년부터 5년간의 방위비 분담 비용을 확정했는데 2026년은 1조 5,192억원, 이후 매년 소비자 물가지수(CPI)를 반영하여 인상되는 방식이다. 2025년 현재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은 1조 4,000억원 정도로 61조 5,900억 원 규모인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에 달하는 규모다.

국내총생산(GDP) 기준(2023년 1.7조 달러)으로 따지면 약 0.06% 수준이며 특히 방위비분담금은 1991년 첫 지원 이후 지금까지 13배 정도 늘었는데, 같은 시기 국방비 증가폭(약 6배)의 두 배에 넘어 한국의 부담 비중이 가중되고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의 주둔 경비를 부담하는 항목은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뿐만 아니라, KATUSA와 경찰지원(기본급, 급식・피복비 등 운영유지비), 부동산지원(사유지 임대료, 보상・매입비), 기지주변 정비 및 민원 해소, 한국군 훈련장 사용 지원 등이 있으며, SOFA에 따라 주한미군이 부동산 임대료 면제, 각종 세금 면제, 공과금 혜택 등 간접적인 지원까지 합칠 경우 연간 2021년 한해만 약 3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동맹국이며 미군 주둔 국가인 일본, 독일과 비교해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경제 규모 지표인 GDP 대비 분담금 비중을 적용하면 한국은 가장 많다. 한국은 0.057%로, 일본의 0.037%, 독일의 0.027% 보다 높다. 경제력 대비 한국이 가장 높은 수준에서 미군의 주둔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제도 역시 독일, 일본에 비해서 한국이 훨씬 불평등하다. 특히, 필리핀과 일본이 맺은 동맹은 10년 단위로 재협상이 가능하지만 SOFA는 그런 조항이 없어 재협상의 근거마저 막힌 상태이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해마다 미군의 첨단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예산 중 국방력 강화를 위한 무기 확보 및 기타 사업에 전년 동기 대비 2.4% 증가한 18조 7,000억원 예산을 배정했다.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킬체인(Kill Chain) 선제타격플랫폼 자산에 3조 2,000억원으로 이미 2024년 12월 한국은 미국 정부와 F-35A 20대를 추가로 구매하기로 합의했고, 향후 추가 구매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가장 우려하며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무기 삼아 SMA 재협상과 이에 뒤따라오는 엄청난 양의 미국 군사 무기의 추가구매 요구일 듯하다.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여타 다른 동맹국, 미군 주둔국들에 비해 방위비 분담금은 충분히 많이 내고 있고, 무기 역시 넘칠 만큼 많이 구매하고 있다.
이와 함께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정책으로 인해 무역 적자 해소 및 고율의 관세 인상, 대중국 첨단 기술 수출 규제 준수, FTA 재협상 추진 가능성까지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러·우전쟁 3년 UN결의안에 미국은 러시아, 북한, 시리아와 함께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취임과 동시에 동맹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중국에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이 요구한 불법 이민과 일명 좀비 마약(펜타닐) 유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합의 후에야 캐나다와 멕시코는 30일간 관세 부과를 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동맹국 한국은 미국 에너지부에서 중국·러시아·북한과 같은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되었다.(중앙일보, 2025.03.15.)5) 트럼프의 미국은 동맹국도 예외 없는 관세와 동맹청구서의 대상이며 정책결정 우선 순위에서 더 이상 동맹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이 한미동맹 재정립의 적기
시대는 변했다. 미국은 더 이상 흔들림 없는 경제 초강대국이 아니다. 국가부채만 해도 35조달러(약 4경 8천조 원)에 이른다. 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 성장률을 크게 앞지르고 있고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22%를 넘어섰다. 트럼프가 청구서를 흔드는 데에는 이런 미국경제의 위기감, 미국부터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깔려 있다. 2차 세계대전이후 형성된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 세계질서는 무너졌고 중국의 부상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경제 지위는 가라앉고 있다. 그렇다 보니 미국은 군사 초강대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미국이 자임하여 추진한 각종 군사 네트워크의 비용을 동맹들에게 청구서를 들이밀고, 미국이 지켜주는 대가로 미국산 무기 강매를 종용하고 있다.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이 현상은 3월 12일 부과가 시작된 트럼프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에 대한 동맹국들의 반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캐나다는 미국의 25% 관세 폭탄에 대응하여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제품 등에 298억 캐나다달러(약30조원) 규모의 미국 상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했다. EU 집행위원회는 4월부터 두 단계에 걸쳐 총 260억 유로(약 41조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보복 관세 대상 품목을 99쪽에 걸쳐 발표했다. 영국, 호주, 멕시코, 브라질 등 주요 대미 수출국들은 즉각적은 보복은 일단 보류했으나 국익의 최선이 무엇인지 모색하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제 한국도 트럼프 2기를 어떻게 대응할지 모색해 봐야할 시기라고 모두가 말하는데, 3월 13일 ‘한미동맹지지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결의안은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의 기반이자 세계 평화와 번영의 핵심축임을 재확인하고,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한미 양국의 노력을 적극 지원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맞아 한미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경제안보, 에너지, AI, 우주, 원자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하겠다는 내용이다. 자국의 이익을 따지는 캐나다, EU와는 정반대의 행보이다. 협상을 해보기도 전에 백기 투항하는 꼴이니 여야를 막론하고 ’한미동맹‘은 지켜야 할 절대선 임을 다시 한번 선포한 격이다. 하긴 지금은 중도보수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또한 민주·진보를 표방했던 시절에도 ‘한미동맹 강화’는 절대 원칙이었다. 한미동맹에 문제점이 있다거나, 한미동맹을 재정립하자는 발언만 해도 “우방인 미국에 대한 결례”, “한미관계를 균열 시키기 위한 의도”, “북에 동조”라는 맹비난이 쏟아졌기에6) 종북이 아님을 입증하는 방식이 한미동맹지지, 한미동맹강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트럼프와 동맹과 한국이 결의한 한미동맹은 어딘지 핀트가 안 맞아 보인다. 트럼프에게 동맹국은 신뢰와 협력의 대상이 아닌 미국경제를 착취하는 거머리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은 70년의 끈끈한 동맹관계이니 거머리에서 제외될 수 있는가? 국회의 ‘한미동맹지지 결의안’의 취지 역시 이 관계를 확증하기 위한 선조치일텐데, 과연 트럼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에 매달려야만 하는 상황인가 경제, 군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파이어파워(GFP: Global Fire Power)가 발표한 2025년 세계 군사력 국가 순위(Military Strength Ranking)에 의하면, 1위는 미국(0.0744) 2위는 러시아, 중국(0.0788), 한국(0.1656)은 5위, 북한은 34위(0.6016)이다. 이러한 군사력 지수는 0.0에 가까울수록 일국의 군사력이 강한 것을 나타내 핵무기 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재래식 전쟁 수행 능력만 측정한 것으로 한국은 북한의 핵을 제외하면 압도적 군사력 우위에 있다. 2021년 군사비 지출(IISS, 국제전략연구소와 SIPRI,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에서 발표한 국방비 통계 기준)에서도 한국은 8위이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세계 IMF 자료 2021년 명목 GDP 기준)은 1위 미국(22조 9,395억 달러), 2위 중국(16조 8,629억 달러), 한국(1조 8,238억 달러)은 10위이다. 무역규모(세계무역기구 자료 2021년 무역규모에 따른 세계 순위)에서 또한 1위 중국(6조 471억 달러), 2위 미국(4조 5,990억 달러), 6위 한국(1조 2.596억 달러)으로 집계되었다. 이 숫치만 보아도 한국은 군사, 경제적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가다. 더 이상 동맹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트럼프 2기에 대한 알렉스 영거(전 MI6 국장)의 BBC와의 인터뷰에서 “1945년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모여 강대국이 작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던 얄타 회담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국제 관계가 규칙과 다자간 기구에 의해 조정 되는 시대에서 벗어나 강한 자들과 거래에 의해 결정되는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는 발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7) 1945년 얄타회담은 일본 패전 후 조선은 독립되었으나 한반도는 38선으로 분단되었고 신탁통치 등 약소국의 운명이 강대국들이 결정한 대표적 사례이다. 그 시기 우리는 독립도, 국가 건설도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건설할 아무런 권한도 힘도 없었다. 이 인터뷰에서 시사하듯 트럼프 2기 시대는 2차 세계대전 전후 만큼의 질적 변화를 예고한다. 힘이 없어 아무 것도 못했던 그때와 달리 한국은 세계군사력 국가 순위 5위, 군사비 지출 8위, 경제 강국 10위, 무역규모 6위의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뒤바뀐 세계판도 속에서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기로에 서있다. 또다시 미국의 뒤에 숨어 강대국들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작은 국가는 더이상 아니지 않을까. 이제 주판알을 튕기며 한미동맹을 재정립할 시점에 왔다.
신줏단지를 한 번에 깨기 어렵다면 조금씩 조금씩 중요도를 낮추면 될 일이다. 한미동맹 파기가 정 그렇게 불안하고 부담스럽다면 장기적 과제로 두고 전시작전권 환수를 위한 협의회의 시작, 전쟁 양상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 지상군 일부 철수 수용, 일본·독일·필리핀 수준으로 SOFA 협정 개정, 방위비 분담금 등 공평한 분담 협상 추진 등,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한미동맹의 재정립, 지금이 적기다!
1) Hazel Smith, ‘Bad, mad, sad or rational actor? Why the ’securitization‘ paradigm makes for poor policy analysis of north korea’ International Affairs, Vol. 76, issue 1(2000),
2) 노무현·이명박 정부 주한미국대사로 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보고서로 2008년 1월 제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마이뉴스, ‘한미 가치동맹? 윤석열 대통령의 착각’.(2023.04.25.기사)
3) 제임스 모로 교수에 의하면 대칭적인 동맹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으로부터 안보 보장을 받는 대신 정책의 자율권을 침해받는 ‘상충 관계(tradeoff)’에 직면하게 되어 이는 확실한 안보 보장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하고, 하고 싶은 정책도 멈춰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이 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다는 ‘방기(放棄)’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방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강한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다 보면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連累)’될 수 있는 위험이 증가하게 된다. James Morrow, “Alliances and Asymmetry: An Alternative to the Capability Aggregation Model of Alliances,”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Vol. 35, No. 4 (Nov., 1991), pp. 904-933.
4) 김열수, “한·일·독의 방위비분담 실태 비교와 한국의 개선방향”, 국방정책연구 2021년 겨울(37-4) 통권 134호 p. 135.
5) 미국 에너지부는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 정책적 이유로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국가를 민감국가로 지정한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0815
6) “한미동맹이 깨진다 하더라도 전쟁은 안된다”는 당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 문재인정부의 대외정책 관점에 문제가 있다며, 보수 언론과 야당인 당시 자유한국당에서 ‘외교폭탄’, ‘북에 인공호흡기 달아주는 형국’, ‘미국이 불쾌했을 것’ 등의 거친 언사를 사용하며 맹비난했다. SBS 뉴스 2017.09.27. 기사(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415610)
7) ‘적응하지 않으면 죽는다’ 전 MI6 국장의 경고(https://www.defenceconnec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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