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보는 정책] 숫자조차 없는 폭력: ‘친밀한 관계’의 젠더 폭력
김경내(연구원)
최근 유튜버 A씨가 전 연인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면서 연인 관계를 비롯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1 A씨가 피해자로 인정받는 과정은 험난했다. 발단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서 구제역 등 렉카유튜버들이 A씨의 과거사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수천만 원을 갈취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한 것이었다. 이에 A씨는 본인이 불법촬영, 성매매, 그리고 교제폭력2의 피해자임을 공개했으나 해당 영상에는 2차 가해 댓글이 게시되었고 일부 커뮤니티에는 피해자를 조롱하고 성희롱하는 글들이 확산되었다. 피해자는 2차, 3차로 해명 영상을 게시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올린 영상에는 성폭행과 폭행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음성과 대화 기록이 담겨있었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교제폭력의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끊임없이 입증해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흔히들 연인, 부부 관계와 같은 친밀한 관계일수록 안전하고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이런 관계속에서 더욱 ‘사소한 이유’로 폭력이 발생한다. 박복순 외(2019)에 따르면 가정폭력 범행 동기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생활양식 및 가치관’ 동기로 47.6%였다. 이들 중에서도 남성 가해자가 파트너의 불순종(말대꾸, 간섭 등)을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77.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성 파트너가 여성에게 부여된 성역할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한다는 이유로,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 구분 | 파트너 폭력 | 전체 | |
| 여성 | 남성 | ||
| 동거의무 관련 - 성관계 거부, 피해자 부정행위 등 |
63 (17.5) |
504 (22.8) |
567 (22.1) |
| 경제/부양 문제 관련 | 24 (6.7) |
239 (10.8) |
263 (10.2) |
| 가사협조 관련 - 자녀 양육 문제, 집안일 |
23 (6.4) |
195 (8.8) |
218 (8.5) |
| 생활양식 및 가치관 관련 - 가족갈등, 말다툼, 불순종 등 |
126 (35.0) |
1,096 (49.6) |
1222 (47.6) |
| 신고 관련 - 신고에 따른 양심/보복 등 |
3 (0.8) |
24 (1.1) |
27 (1.1) |
| 이혼 관련 - 이혼 요구, 이혼에 대한 불만 등 |
13 (3.6) |
97 (4.4) |
110 (4.3) |
| 기타 - 정신장애, 오해, 대항폭력3 |
108 (30.0) |
54 (2.4) |
162 (6.3) |
| 전체 | 360 (100.0) |
2,209 (100.0) |
2,569 (100.0) |
[표 1] 가정폭력 중 파트너 폭력의 범행동기 (박복순외, 2019의 표를 재구성)
| 구분 | 파트너 폭력 | 전체 | |
| 여성 | 남성 | ||
| 불순종 (말대꾸, 간섭) | 87 (69.0) |
845 (77.1) |
932 (76.3) |
| 말다툼/시비 | 23 (18.3) |
82 (7.5) |
105 (8.6) |
| 가족갈등 및 집안 문제 | 8 (6.3) |
87 (7.9) |
95 (7.8) |
| 종교 문제 | 0 (0.0) |
8 (0.7) |
8 (0.7) |
| 특별한 이유 없이 | 8 (6.3) |
74 (6.8) |
82 (6.7) |
| 생활양식 및 가치관(계) | 126 (100.0) |
1,096 (100.0) |
1,222 (100.0) |
[표 2] 생활양식 및 가치관 - 가정폭력 중 파트너 폭력의 범행 동기 (박복순외, 2019의 표를 재구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젠더폭력은 그 이유는 사소하지만 여성이 입게 되는 피해는 전혀 사소하지도, 가볍지도 않다. 언어폭력과 협박에서 폭행으로, 폭행에서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범죄이다. 2023년 발생한 살인·살인미수 4건 중 1건이 현재 또는 과거 배우자와 연인, 사실혼 관계의 파트너를 상대로 하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보도되기도 하였다(2024년 8월 20일, 『한겨레』). 많은 여성들이 교제 폭력 사실을 신고하고 가해자와 이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해서 ‘안전 이별’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현실이다. 본고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개념을 알아보고, 폭력을 겪은 여성 피해자들의 인식이 다른 여성 집단과 비교하여 어떠한지 살펴본 이후 관련 입법 과제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1.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란
젠더폭력은 젠더 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 즉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지거나,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미치는 폭력”을 의미한다(유럽평의회협약, 2014). 이 중에서도 친밀한 파트너 관계에서의 폭력 (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은 전세계적으로 젠더폭력의 대표적인 양상으로 자리 잡았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란 과거 또는 현재의 배우자, 연인 등 파트너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말한다. 이러한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거주지에 살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며 가정폭력과 교제 폭력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유럽성평등연구소(European Institute of Gender Equality, EIGE)와 국제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등 국제기구들은 친밀관계의 폭력이 가장 일반적이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여성폭력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친밀관계 폭력이 개인적인 문제, 사적인 연인 사이의 문제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이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지 못하였다.
더욱이 기존 법체계로는 부부관계와 더불어 가족 관계가 아닌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유형의 폭력과 강압적 통제 등에 대해서는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한 피해자지원법과 처벌 특례법이 1997년에 제정되었으나 교제폭력에 대해서는 처벌법이나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연인 사이에 발생한 범죄의 경우 폭행, 가정폭력, 성폭력 등 범죄 유형에 따라 가해자가 처벌되고,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 피해자 보호체계 안에서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김효정, 2024). 현황이 이렇다 보니 ‘파트너’ 관계 혹은 ‘교제’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유형의 폭력을 친밀관계의 폭력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며, 친밀관계 폭력의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2.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의 현황과 규모는?
한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별도로 집계하거나 통계를 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가정폭력과 교제폭력 신고 건수를 바탕으로 국내 IPV 규모를 가늠해 보려고 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2020년(221,824건)부터 2023년(230,830건)까지 꾸준히 매해 22~23만 건 내외로 신고 건수가 파악되고 있다. 교제폭력의 경우 2016년 이후 경찰청에서 교제폭력 신고를 받기 시작했는데, 2020년 4만9225건, 2021년 57,305건, 2022년 70,790건, 2023년 77,150건으로 신고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신고건수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가정폭력의 구속률은 0.8%, 교제폭력의 구속률은 1.9%에 불과하다. 교제폭력의 경우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어 폭행·협박죄 등으로 처벌해야 하는데 이런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하는 범죄를 말한다. 피해자는 특히 가해자가 복수할까 봐 걱정하거나 가해자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 역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또한 유의할 점은 가정폭력 피해자와 교제폭력 피해자의 상당수가 사회적 시선과 편견, 파트너와의 관계, 폭력의 반복성 등으로 인해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법원 혁신 센터에 따르면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피해자 중 거의 절반이 공식적으로 피해를 신고하거나 사법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2015년에 진행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신고자들은 경찰 신고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 보고 있었다(Packer, 2021). 더욱이 성소수자, 이민자, 유색인종 등 취약한 집단은 경찰 개입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 IPV 신고율이 더욱 낮은 경향이 있다(Brown & Herman, 2015; Decker et. al., 2019; Addington & Lauritsen, 2021에서 재인용). 이런 경향을 감안한다면 실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사건 수는 가정폭력 신고 건수(230,830건)와 교제폭력 신고 건수(77,150건)를 더한 307,980건(2023년 기준)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피해자의 인식
1) 활용 자료
본고에서는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의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하여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비율과 그들의 인식을 분석한다. 여성폭력 실태조사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하여 여성가족부 장관이 3년마다 실시하는 조사로 2021년에 최초로 시행되었다. 전국 17개 시도의 일반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하였고 전체표본의 경우 응답률은 39.0%, 사례 수는 7,000이다.
2) 여성 3명 중 1명은 여성폭력 경험, 그중 46%가 친밀관계
2021년 여성폭력 실태조사는 UN 등에서 제시하는 국제적 기준에 맞추어 젠더 폭력의 유형을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① 신체적 폭력 : 몸을 다치게 하려고 물건을 던지는 행위, 칼 등 흉기로 위협하는 행위, 밀치거나 힘껏 떠미는 행위 등
② 성적 폭력 :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하는 행위, 나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는 행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행위 등
③ 정서적 폭력 : 면박주거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 비하적인 표현이나 욕설, 폭언을 쏟아붓는 행위, 고함을 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겁주는 행위 등
④ 통제 : 친구를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행위, 가족, 친척 등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제하는 행위, 어디에 있는지를 지나치게 알려고 하는 행위 등
⑤ 경제적 폭력 : 내 몫이 있는 수입, 저축 등 금융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 위자료, 양육비, 생활비 지급 등의 책임을 회피하여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하는 행위 등
평생동안 위 다섯 가지의 폭력 유형 중 한 가지라도 과거 혹은 현재의 배우자, 또는 연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를 ‘친밀관계 여성폭력 경험’으로, 그리고 친밀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의 가해자로부터 여성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는 ‘친밀관계 외 여성폭력 피해 경험자’로 분류하였다. 참고로 후자의 경우, 가해자 유형은 배우자가 아닌 가족 구성원, 친척, 친구, 학교나 직장 구성원, 전혀 모르는 사람 등이 포함된다. 결과는 [표3]과 같다.
| 분류 | 사례수 | 비율 | ||
| IPV 피해자 | 1,124 | 2,446 | 16.1% | 34.9% |
| 그외 피해자 | 1,322 | 18.9% | ||
| 피해경험없음 | 4,554 | 65.1% | ||
| 계 | 7,000 | 100% | ||
[표3] 평생 친밀관계에서의 여성폭력 피해 경험 현황
주 : 표준화 가중치를 통하여 보정된 가중치 적용 결과(weighted analysis)
전체 7,000명의 응답자 중에서 평생동안 한 번 이상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2,44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34.9%였다. 그중 친밀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1,124명으로 16.1%, 그 외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1,322명으로 18.9%로 집계되었다.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 중 46%가 친밀관계에서의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이다.
3) 친밀관계에서 폭력 경험한 여성이 두려움도, 통념도 높아
젠더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많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들이 존재한다. 김중곤·추지현(2023)에 따르면 여성들이 성희롱, 온라인성범죄, 교제폭력 등의 피해경험은 여성이 느끼는 두려움을 증가시키고 있었으며 계층, 연령, 학력 등의 다른 효과보다 더 큰 효과를 미치고 있었다. 직접적 성폭력 경험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목격하는 등의 간접적 경험 역시 성범죄 두려움 증가와 행동적 반응 강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정승민, 2011; 김혜진·민휘경, 2020). 오늘날 청년 여성들의 성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지고, 이는 페미니즘 대중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이나영, 2016; 김중곤·추지현, 2023). 그러나 한편으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고립감, 우울 등 개인의 부정적인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이민아, 2020).
그렇다면 친밀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여성과, 그 외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두려움 인식에도 차이가 있을까? 여성폭력에 대한 두려움 정도를 묻는 문항을 활용하여 해당 문항에 대한 응답이 집단 간 유의미하게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 여성폭력에 대한 두려움 정도 | 두렵지 않다 | 보통이다 | 두렵다 | 총합계 | 2(p) | ||||
| IPV 피해자 | 296 | 26.,4% | 282 | 25.1% | 545 | 48.5% | 1,124 | 100% | 186.706 (0.000) |
| 그 외 피해자 | 371 | 28.1% | 350 | 26.5% | 600 | 45.4% | 1,322 | 100% | |
| 피해경험없음 | 1,751 | 38.5% | 1,403 | 30.8% | 1,400 | 30.7% | 4,554 | 100% | |
| 총합계 | 2,419 | 34.6% | 2,036 | 29.1% | 2,545 | 36.4% | 7,000 | 100% | |
[표4] 여성폭력 피해 경험에 따른 ‘여성폭력에 대한 두려움 정도’ 응답 현황
주: 표준화 가중치를 통하여 보정된 가중치 적용 결과(weighted analysis)
[표4]의 결과를 보면, 친밀관계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48.5%가 ‘두렵다’로 응답한 반면, 친밀관계 외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45.4%가 ‘두렵다’고 응답하고, 피해경험이 없는 여성은 30.7%가 ‘두렵다’고 응답했다. 여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경우, 그중에서도 친밀관계에서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피해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더 두려움을 느낀다고 응답했다(p<0.001). 다만 피해경험이 없는 여성들도 상당수가 여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미디어의 재현을 통해서 성폭력 사건 소식을 접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본인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과 두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젠더폭력의 정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폭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이 많은 여성들이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끼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권인숙·이건정(2013)의 연구는 직접적인 성폭력 경험보다는 피해의식과 언론보도, 그리고 성폭력 통념에 의해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의롬(2022)에 따르면 20대부터 60대까지 대부분 연령대에서 여성들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은 범죄소식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볼 인식은 젠더폭력에 대한 통념이다. 젠더폭력에 대한 통념은 초기 ‘강간통념’을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강간통념은 강간 범죄와 피해자에 대해 사회에 일반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사고와 편견을 일컫는다(Buddie & Miller, 2001). 예컨대 강간을 당한 사람이 술에 취해있었다거나, 옷차림이 문제가 있어 피해를 당했다는 식으로 피해자에게 책임을 부여하고 비난하는 인식 등이다. 그러나 강간통념의 개념이 성기 삽입을 중심으로 성폭력을 구성하고 통념을 측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이뤄졌으며, 이후 성폭력, 젠더폭력 전반에 대한 통념과 이 통념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본고에서는 여성폭력의 피해자인 자신에게도 폭력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를 묻는 문항을 활용하여,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 인식에 집단 간 차이가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결과는 [표5]와 같다.
|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 동의하지 않는다 | 동의한다 | 총합계 | 2(p) | |||
| IPV 피해자 | 839 | 74.7% | 284 | 25.3% | 1,124 | 100% | 23.918 (0.000) |
| 그외 피해자 | 1,064 | 80.4% | 259 | 19.6% | 1,322 | 100% | |
| 피해경험없음 | 3,698 | 81.2% | 856 | 18.8% | 4,554 | 100% | |
| 총합계 | 5,601 | 80.0% | 1,299 | 20.0% | 7,000 | 100% | |
[표5] 여성폭력 피해 경험에 따른 ‘연인의 폭력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응답 현황
주: 표준화 가중치를 통하여 보정된 가중치 적용 결과(weighted analysis)
친밀관계에서 여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은 전체의 25.3%가 통념에 대해 ‘동의한다’로 응답하였고, 친밀관계 외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19.6%가 ‘동의한다’고 응답하였다. 피해경험이 없는 여성의 경우 ‘동의한다’에 대한 응답 비율이 18.8%로 확인되었다. 응답을 확인한 결과 친밀관계가 아닌 관계에서 여성폭력을 경험한 여성과 피해경험이 없는 여성보다 친밀관계 여성폭력 피해 여성이 ‘나에게도 폭력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p<0.001).
젠더폭력의 피해자, 그중에서도 친밀한 관계에서 피해를 경험한 여성이 젠더폭력에 대한 통념을 내재화한다는 결과는 여러 선행연구에서도 다뤄진다. 김보화 외(2017)는 친밀한 관계에서 젠더 폭력을 겪은 피해자가 주변으로부터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거나 피해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등의 통념을 경험하기 쉽다고 설명한다. 이런 경험은 피해자가 통념을 수용하고 내면화하게끔 만드는 요인이 되며 그 결과 피해자의 회복력을 낮추고 성폭력 후유증을 높일 수 있다(김민정, 2009; 김보화 외, 2017). 직접적이고 1차적인 가해뿐만 아니라 간접적이고 이차적인 가해가 피해자의 고통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우리 사회와 주변인들이 더 많은 지지를 보내주어야 함을 시사한다.
4. 가까워서 더 위험한 친밀관계 폭력, 제대로 처벌해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대한 정의도, 국가적 통계도, 처벌법도, 피해자에 대한 지원법도 없는 것은 국가가 여성 폭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사적인 남녀관계에서 발생하는 ‘다툼’ 정도에 공권력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의지라도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친밀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먼저 미국에서는 1990년대 가정폭력과 교제폭력 문제가 대두되면서 1994년에 연방법으로 「여성폭력방지법」(VAWA)이 제정되었다. 「여성폭력방지법」은 2013년 개정되었는데 모든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에 대하여 피해자 보호 범위를 크게 확대하고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강화하였다(김효정, 2022). 이 「여성폭력방지법」에 따라 피해자는 성별,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가정폭력 사건이 발생할 시 가해자에 대한 의무체포 및 의무기소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주도 여럿 있다. 영국은 2021년부터 시행되는 가정폭력법에 따라 가정폭력을 ‘개인적으로 연결된 16세 이상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적 행동’으로 정의하고 처벌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고, 일상을 규제하거나 다른 지인들로부터 고립시키는 등의 강압적 통제(coercive or controlling behavior)까지 가정폭력으로 간주하고 있다(김효정, 2022).
한국에서는 어떻게 친밀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을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여러 국가에서 가정폭력처벌법에 교제 폭력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친밀관계 폭력에 대응하고 있다. 미국, 영국과 일본은 배우자폭력방지법 및 스토커규제법 등 법률에 적용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가정폭력과 교제 폭력에 대응하고 있다(장미혜, 2021). 22대 국회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가정폭력법의 명칭을 비롯한 내용을 개정하여 가정폭력의 정의에 교제 관계를 포함하려는 시도들이 존재한다(의안번호 2201685, 의안번호 2201584). 다만 이러한 가정폭력 개념의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지 등에 대하여 고려와 논의가 필요하다(김한균, 2023). 최근 개원한 22대 국회에서는 교제폭력을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의안번호 2201445).
한국여성의전화의 발표에 따르면 언론보도를 취합한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 살인 미수 등을 포함하면 449명에 달한다. 언론에 보도된 최소한의 수치가 이 정도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단 며칠 사이에도 부산에서 교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2024년 9월 3일, 『경향신문』). 이별하자는 얘기를 들은 남성이 재결합을 요구했으나 여성이 받아들이지 않자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배달음식을 가지러 나온 틈을 타서 여성을 살해했다. 사건 이전에도 여러 번 폭력이 있었고 피해자는 경찰에 세 차례 신고했으나 끝내 끔찍한 사건을 막지 못하였다.
19시간마다 1명의 여성이 파트너에게 살해당할 위협을 겪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이 없다는 말은 너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껏 친밀한 관계의 폭력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여성들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우리사회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사적이고 사소한 일로 바라보지 않아야,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지원 및 보호 체계가 바로 서야지만 비로소 친밀관계 폭력으로 살해당한 수많은 여성들을 추모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물론 해당 유튜버가 공론화한 사안은 성착취와 성매매, 불법촬영과 디지털 성폭력, 친밀한 관계에서의 교제폭력, 여성의 임신중절 등 다양한 폭력이 교차되어 있는 복잡한 사건이므로 단순 ‘교제폭력’ 사건이라고 명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2 교제폭력은 연인, 파트너 관계에서의 폭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과거 ‘데이트 폭력’으로 명명되기도 하였으나, 그 심각성이 축소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현재는 ‘교제 폭력’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3 대항폭력이란 상대방의 폭력에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성이 가해자의 28.9%가 대항폭력을 이유로 가정폭력을 행사했다.
[참고문헌]
- 권인숙, 이건정. (2013). 여성의 성폭력 두려움에 대한 연구. 한국여성학, 29(3), 181-218.
- 김민정. (2015). 지각된 성폭력 고정관념이 성폭력 후유증에 미치는 영향– 피해자 자기비하의 매개 효과를 중심으로–. 피해자학연구, 23(3), 17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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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및 기타 자료]
- [한겨레] “[단독] 살인·미수 4건 중 1건은…배우자나 애인 노렸다” 2024년 8월 20일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49577.html
- [경향신문] “부산서 또 ‘교제 살인’…30대 남성 전 연인 찾아가 살해” 2024년 9월 3일
https://m.khan.co.kr/local/local-general/article/202409032140001#c2b
- EIGE. Intimate Partner Violence (출처: https://eige.europa.eu/thesaurus/terms/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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